[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Out] 이회창과 앨 고어

[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Out] 이회창과 앨 고어

입력 2007-10-26 00:00
수정 2007-10-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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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시 나서면 미래로 나가야 할 선거가 과거로 다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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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미국 대선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패배한 앨 고어가 2003년 10월 주변의 강력한 재출마 요구에 단호하게 불출마를 선언했다. 예상 밖이었다.

고어는 현직 대통령인 부시의 실정으로 나서기만 하면 당선될 공산이 컸었다. 더구나 그는 총 투표수에서 이기고 미국 특유의 선거제도 때문에 진, 그야말로 석패(惜敗)를 경험하지 않았던가. 아쉬움도 컸고 재도전하고픈 마음이 굴뚝 같았을 텐데, 그는 과감히 벗어던졌다. 그러면서 자신의 전공인 환경문제에 천착했고 올해 노벨 평화상까지 받았다. 물론 그의 이후 행적에 대한 비판론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대선 후보로서의 정치인 고어는 맺고 끊는 게 분명한 이성적 판단의 소유자라고 할 만하다.

대선 정국에 ‘이회창 재출마설’이 뜨거운 감자로 부상 중이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로서는 대세론이 흔들릴까봐 곤혹스럽고, 대통합민주신당 등 범여권은 이 후보의 고공행진에 제동을 걸 호재로 판단, 군불때기를 하고 있다.

만약 이 전 한나라당 총재가 출마를 강행한다면 범여권의 후보 단일화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다.

당사자인 이 전 총재는 대중 집회에 잇따라 참석하고 발언 수위를 높이는 등 고도의 정치행위를 계속하고 있다.

출마 여부에는 시인도 부인도 않는 NCND 전략으로 임한다. 핵심 측근들에게 출마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준비를 시켰다는 소문이나, 집회에 청중 동원을 지시했다는 얘기까지 나돈다.

한나라당 의원들을 만나서는 남북관계를 비롯한 이명박 후보의 정책 좌표 설정에 강한 불만을 표출하고 이 후보 캠프내에 운동권이 많다는 언급도 했다고 한다. 양쪽을 잘 아는 김우석 한나라당 디지털정당위원장은 “사전 양해 없이 측근들을 이 후보 캠프로 데려가는 등 최근 이 후보 진영의 일련의 행위로 이 전 총재가 언짢아한다.”면서 “이 후보가 남북관계 등 민감한 현안에 관해 오락가락한다는 판단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른바 당과 후보의 정체성을 문제 삼는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네 번 출마했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세 번째 도전 끝에 대권을 거머쥐었다.

민주당 이인제 후보도 세 번째 대권 도전인데 ‘이회창도 그러면 안 되는가.’라고 반문할지 모른다. 두 번 모두 대세론을 구가하다 막판 실수로 정권을 넘겨줬다고 생각하는 만큼 아쉬움이 클 것이다.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앨 고어보다 진한 아쉬움이 남을까.

이번 대선만큼 전직 대통령들이 현실 정치에 깊숙이 개입한 적이 없다. 국민 다수의 존경을 받는 국가원로가 없다는 것은 국가적 불행이다.

이 전 총재의 출마가 보수세력의 분열을 가져온다는 등의 정파적 분석을 언급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자기 시대가 아니면 나서지 않는 게 국가원로로서의 올바른 자세가 아닐까. 이 전 총재도 국가원로이기에 하는 말이다.

최근의 정치 행보가 내년 총선에서 지분 챙기기와 연결돼 있다는 얘기 자체가 그에겐 흠결이다.

5년 전 서울시장 공천을 받기 위해 자신에게 머리를 조아리던 이 후보의 모습을 자꾸 떠올려봤자 좋을 게 있겠는가. 명지대 김형준(정치학) 교수는 “추한 모습을 보이지 말고 국가원로로서의 길을 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퇴임 후나 대선 실패 뒤 현실정치와는 거리를 두고 자기 관심분야나 전공에 더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앨 고어나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은 좋은 본보기가 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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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han@seoul.co.kr
2007-10-26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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