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 폭력의 다양한 실체

일상적 폭력의 다양한 실체

심재억 기자
입력 2007-09-08 00:00
수정 2007-09-08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혹시 2003년 2월15일을 기억하시는지. 이 날은 세계 곳곳에서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반대하는 대규모 반전 시위가 벌어진 날이다. 그렇지만 그런 일이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기억해야 하는 역사의 일부로는 각인돼 있지 않다. 따라서 대다수는 이 물음에 “무슨 날이지?”하고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첫사랑, 마지막 의식’(1975)으로 영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서머셋 몸 상을,‘암스테르담’(1998)으로 부커 상을 수상한 영국의 중견작가 이언 매큐언에게 이 날은 매우 불확실하고 위험한 날이었다. 스스로가 현재 진행중인 세계사, 이를테면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나 이 전쟁에 영국이 참전한 일 따위와는 무관하다고 믿는 한 시민이 어떻게 일상의 폭력에 노출되며, 그 폭력이 자신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위협인지를 그는 소설 ‘토요일’(문학동네 펴냄)을 통해 고발한다.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현대인은 일상적 폭력에 갇혀 산다. 그것이 배후에 권력을 업은 거대한 폭력이든, 가정이나 마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소한 폭력이든, 폭력은 항상 우리의 생활과 의식 속에서 생존의 기제로 작동하도록 구조화되어 있다. 매큐언은 바로 이 폭력성에 주목한다. 그는 작품에서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라는 거대한 폭력과 개인의 사적인 폭력을 통해 일상적인 폭력의 다양한 실체를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자신의 일에 열정적이고 건강하며 정직한 신경외과 의사 헨리 퍼론은 이라크 전쟁을 규탄하는 대규모 반전시위가 벌어진 날 저녁, 집에서 뒷골목 건달의 끔찍한 폭력과 마주한다. 사소한 자동차 접촉사고로 빚어진 일이 급기야 건달의 주먹에 장인의 코뼈가 내려앉고, 아내의 목에 섬뜩한 칼이 겨눠지는가 하면, 다 자란 딸이 알몸을 드러내야 하는 사태로 발전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에게 이라크 전쟁은 타자의 문제였다. 학정을 일삼는 후세인 정권을 힘 센 미국이 거세하러 나섰다는 정도의 인식이 고작일 정도다. 그런 그의 일상이 연쇄적 상관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폭력에 고스란히 노출되고, 덩달아 그의 의식 속에 잠재해 있던 ‘폭력의 공포’는 현실, 즉 ‘나의 일’로 환치된다.

그러나 폭력에 의해 더 불확실해지고, 또 훨씬 더 위험해진 일상의 시비에 대해 ‘모든 갈등이 해결된 평화와 비무장의 세계를 위해, 언제든 죽고 죽일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들의 세계’라는, 등가적 의미를 부여한 작가의 현실인식에 한계가 있다는 아쉬움이 없지 않다. 예컨대, 폭력은 그 자체가 악이면서 동시에 항상 가해와 피해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라크 문제와 관련, 미국은 가해국인가 피해국인가. 또 그의 인식처럼 사담 후세인의 제국이 독재와 학정을 거듭해 미국으로 대표되는 ‘선의 축’에 의해 징벌을 받았다면 아주 강한 나라인 미국이나 영국의 악행은 누가 징벌할 것인가.

작가는 작품에서 9·11테러와 알 카에다, 홀로코스트 등 거대한 폭력의 기층에 주먹돌처럼 쌓여 하나의 인과적 유기체를 이루는 사적 폭력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한 개인에게 공허한 이미지이거나 따분한 거대담론일 뿐인 비일상적이고 거대한 폭력이 어떻게 ‘나의 일’로 구체화될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그러면서 작가는 독자들에게 이렇게 되묻는다.“당신의 토요일 밤은 과연 얼마나 안전한가?”라고.1만 3000원.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2007-09-08 23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