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 수녀 ‘해인글방’
여러분이 함께 기도해 주신 덕분에 저는 연중피정을 아주 잘 하였습니다.
지도해 주신 조규만 주교님께서 신학생이던 시절엔 편지도 몇 번 주고 받았는데,
그분이 14번에 걸쳐 해 주신 강론들은 새삼 우리를 행복하고 긍정적인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마력이 있는 듯...참 좋았답니다.
언제나 그러하듯...피정은 늘 좋은 것이지만 말입니다.다
구정 설 명절은 잘 보내셨는지요? 우리는 황철수 주교님을 모시고 신년하례식을 하였고 새로 나온 돈으로 세배값도 받았답니다. 물론.... 거액은 아니지만 지극히 소박한 그 액수는 비밀(?)이고요. 다들 어찌나 좋아하는지! 상상하실 수 있나요? 예비수녀,수련수녀,서원수녀.. 수도원의 밥그릇 수에 따라 액수가 조금 차이가 난답니다. | ||
이번 설 연휴기간에 저는 이것 저것 옷장 책상 서랍 정리를 하고 나니 마음이 후련하고 좋아요.식물 키우기를 좋아하는 분은 난간에 화분을 갖다 두고 빨래하기 좋아하는 어떤 분은 침방에도 빨래걸이를 갖다 놓는 등....사람마다 방을 꾸미는 기호가 다른데요.저는 주로 책이나 종이 종류가 남들보다 많고 이것만 있으면 늘 든든하지요. 치우면서 보니 종류가 하도 많아 욕심에 대하여 반성도 좀 하였습니다. 종이나라의 원더우먼 클라우디아.. ..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르지 뭐에요. | 조그만 쪽지 하나도 버리지 못하는 습성으로 다 치우고나도 거기서 거기...라고 수녀님들이 저를 놀리긴 하지만 그래도 저는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다 알고 있고요. 하옇든 흐뭇한 마음으로 새봄맞이를 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번 글방 소식은 그동안 쓴 해인의 시와 산문들 중에서 봄과 관련 된 글귀들을 찾아서 나누어 드리니 ‘봄비를 기다리며 첫 러브레터 |
를 쓰는 달’이라고 제가 이름 지은 3월에 시인의 마음 되어 한 번 읽어 보시고 봄 편지를 써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요즘은 아침마다 새 소리에 잠을 깨면서 ‘그래 봄이 왔다 이거지?’하며 더욱 밝은 미소를 짓게 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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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 샘터사에서 나온 책<대화>도 한 번 보시라고 권면하고 싶답니다.
박완서.이해인/방혜자.이인호님의 대담집인데 내용을 먼저 본 우리 수녀님들이 좋다고 하니 저도 반가웠습니다. 그 밖에 지금 제 곁에 둔 책들은-- <하느님 나라>(조규만/가톨릭대학교 출판부), <내 영혼을 울린 이야기/존 포엘.강우식 역/가톨릭 출판사), <하루를 살아도 행복하게>(안셀름 그륀.이미옥 역/의즈덤 하우스), <삼라만상을 열치다:한시해설/푸르메>, <김풍기사람에게서 구하라>(구본형/을유문화사), <손 끝에 남은 향기:한시해설>(손종섭/마음산책), <호미>(박완서/열림원), <나무처럼 사랑하라>(웬디 쿨링 엮음.김용택 글.마음숲), <10분 이야기 명상>(김테광 글.김상아그림/영림카디널), <자고 깨어나면 늘 아침>(이철수의 나뭇잎 편지/삼인), <북한강 이야기>(윤희경/신세림)등입니다. | ||
♡ 저의 모친을 위한 정성 어린 여러분의 공동의 기도에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정말 기적처럼 다시 일어나시어 한동안 잊고 계시던 가스불까지 켜서 전과 다름없이 김치만두를 끓여 드시기도 하신다니 놀라운 일입니다. 어쩌다 전화를 하게 되면 ‘작은 수녀야? 언제 서울 와?’하시곤 금방 동생을 바꾸어주시고 전과 같이 긴 대화는 잘 이어지질 않는 상황이지만 이것만 해도 반갑고 감사할 뿐입니다. 앞으로도 계속적인 기도를 부탁드리면서 사랑을 전합니다. 3월의 실버소녀수녀가 천리향 향기 속에 천리향 미소와 사랑을 담아드리면서 안녕히! | ||
이 외에도 “봄에 대한 해인의 詩”는 3월 동안 수녀원 홈페이지 영상시 코너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 ||
-이해인 수녀-
긴 겨울이 끝나고 안으로 지쳐 있던 나 봄 햇살 속으로 깊이 깊이 걸어간다 내 마음에도 싹을 틔우고 다시 웃음을 찾으려고 나도 한 그루 나무가 되어 눈을 감고 들어가고 또 들어간 끝자리에는 지금껏 보았지만 비로소 처음 본 푸른 하늘이 집 한 채로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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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해인 수녀 -
단발머리 소녀가 웃으며 건네 준 한 장의 꽃봉투 새 봄의 봉투를 열면 그애의 눈빛처럼 가슴으로 쏟아져오는 소망의 씨앗들
가을에 만날 한 송이 꽃과의 약속을 위해 따뜻한 두 손으로 흙을 만지는 3월
나는 누군가를 흔드는 새벽바람이고 싶다 시들지 않는 언어를 그의 가슴에 꽃는 연두색 바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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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해인 수녀 -
하얀 민들레 꽃씨 속에 바람으로 숨어서 오렴
이름없는 풀섶에서 잔기침하는 들꽃으로 오렴
눈 덮인 강 밑을 흐르는 물로 오렴
부리 고운 연두빛 산새의 노래와 함께 오렴
해마다 내 가슴에 보이지 않게 살아 오는 봄
진달래 꽃망울처럼 아프게 부어오른 그리움
말없이 터뜨리며 나에게 오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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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해인 수녀 -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모두 풀빛으로 노래로 물드는 봄
겨우내 아팠던 싹들이 웃으며 웃으며 올라오는 봄
봄에는 슬퍼도 울지 마십시오
신발도 신지 않고 뛰어내려 오는 저 푸른 산이 보이시나요?
그 설레임의 산으로 어서 풀물 든 가슴으로 올라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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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해인 수녀-
어디선지 몰래 들어 온 근심 걱정 때문에 겨우내 몸살이 심했습니다
흰 눈이 채 녹지 않은 내 마음의 산기슭에도 꽃 한송이 피워내려고 바람은 이토록 오래 부는 것입니까
3월의 바람 속에 보이지 않게 꽃을 피우는 당신이 계시기에 아직은 시린 햇빛으로 희망을 짜는 나의 오늘
당신을 만나는 길엔 늘상 바람이 많이 불었습니다 살아있기에 바람이 좋고 바람이 좋아 살아있는 세상
혼자서 길을 가다 보면 보이지 않게 나를 흔드는 당신이 계시기에 나는 먼데서도 잠들수 없는 3월의 바람 어둠의 벼랑 끝에서도 노래로 일어서는 3월의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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