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도는 예수의 ‘내 왕국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다.’라는 난해한 대답에 일체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빌라도는 로마제국의 황제를 모시는 유대의 총독. 그러므로 빌라도는 이 소용돌이의 주인공인 예수가 왕이냐, 아니냐 라는 현세적인 관심에만 몰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예수는 대답한다.
“나는 오직 진리를 증언하러 왔으며 그 때문에 세상에 왔다. 진리편에 선 사람은 내 말을 귀담아 듣는다.”
예수의 이 말은 자신이 이 지상의 왕이 아니며, 진리와 하늘나라의 왕임을 명백히 하고 있음이다. 실제로 미천한 집안에서 태어나 보잘것없이 구유에 눕혀졌던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남으로써 목수 예수는 구세주, 즉 그리스도로 부활한다.
그뿐인가.
석가모니의 경우는 이 지상의 왕이 아님을 더욱 극명하게 드러낸다. 석가모니는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예수나 하찮은 포의의 신분인 공자와는 달리 히말라야 남쪽기슭의 카필라라는 왕국에서 왕자의 신분으로 태어난다. 태자시절에 아버지 슛도다나왕은 이름난 점성가를 불러 석가모니의 미래를 점쳐보았다. 이때 점성가는 ‘태자는 뛰어난 위인의 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왕위에 오르면 무력을 쓰지 않고 온 세상을 다스리는 제왕이 될 것이고, 출가하여 수행하면 반드시 부처님이 되어 모든 중생을 구제해줄 것입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왕자 싯다르타는 온 세상을 다스리는 제왕의 길을 포기하고 왕궁을 떠나 출가함으로써 제왕의 길에서 전륜성왕(轉輪聖王)의 길로 나아가 부처가 되었던 것이다.
만약 예수가 악마의 유혹대로 높은 산으로 올라가서 발아래 절을 하였다면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화려한 권세와 영광을 물려받는 왕’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부처가 진리의 길을 포기하였더라면 점성가가 예언하였던 대로 온 세상을 다스리는 위대한 정복왕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수는 악마의 유혹을 거부하고 진리의 편에 서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바오로의 표현대로 어리석은 행동을 함으로써 왕 중의 왕으로 부활할 수 있었던 것이며, 석가모니 역시 화려한 왕궁을 포기하고 출가함으로써 왕 중의 왕인 전륜성왕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공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공자가 만약 13년 동안의 주유천하 중에서 눈 밝은 군주의 눈에 들어 본격적으로 왕도정치를 펼쳤더라면 아마도 공자가 다스리는 국가는 유토피아의 이상 국가를 이뤄 마침내 전국시대를 통일하는 강력한 제국을 이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공자에게는 그런 기회는 결코 찾아오지 않았다. 초라하게 상갓집의 개처럼 아무런 소득 없이 돌아온 공자에게 있어 그 절망은 오히려 예수의 경우처럼 십자가에 못 박혀 죽거나 부처의 경우처럼 왕궁을 떠나는 출가행위였던 것이다.
2006-12-27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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