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주리_ 강렬한 색채와 유쾌한 상상력으로 독특한 회화세계를 구축한 화가입니다. 석남미술상, 선미술상을 수상했으며, 지은 책으로 <날씨가 너무 좋아요> <세월> 등이 있습니다.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라고 말했던 시인을 생각합니다.
‘자화상’이라는 제목의 그 시를 읽은 이후 나는 오래도록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고독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진주조개처럼 알 품은 고독, 그보다 맑고 깨끗한 마음의 상태가 또 있을지요? 조금쯤 덜 고독한 지금의 나는 서른 살 그 고독한 날들의 풍경이 그립습니다.
어머니는 젊은 내게 늘 말씀하셨습니다. 무는 개가 되라고. 그래야 돌아본다고. 아프면 아프다고 틀리면 틀렸다고 똑 부러지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 되라는 말씀이겠지요. 착한 내 어머니는 평생 무는 개가 되지 못한 채 일흔여섯 살이 되셨습니다. 그런 분이 제게 무는 개가 되라 하십니다.
이 험한 세상에 그저 묵묵히 제 할 일만 하면서, 기분이 나쁘거나 조금 손해를 보아도 그냥 눈 딱 감고 침묵하는 사람이 되지 말라는 뜻이겠지요. 문득 제 땅을 모두 빼앗기고도 조용히 살아가는 아메리칸 인디언을 생각합니다. 비폭력 무저항을 말하던 마하트마 간디를 떠올립니다.
어머니를 그대로 빼닮은 제가 물기는 커녕 물리지만 않아도 다행이라는 건 누구보다 당신이 제일 잘 아십니다. 제가 누구랑 싸워서 이기는 걸 보셨어요? 아니면 꿔준 돈을 제대로 받는 꼴을 보셨어요? 무는 개가 되라는 어머니 말씀은 순한 개가 될 것이 틀림없는 딸에게 보내는 우려 깃든 가훈이었음을 압니다.
착한 사람들이 가득한 세상, 그곳이 바로 천국이겠지요. 이 세상의 똑똑한 무는 개들은 그냥 물라고 하세요. 다시 찾아온 선선한 가을이 우리를 너그럽게 합니다.
그래도 어머니, 조금쯤은 무는 개가 될래요. 까짓 조금쯤 서운하고 억울한 일은 그냥 눈감을지라도,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악과 불평등과 옳지 않음에 대하여 쩡쩡 울리는 소리로 컹컹 짖어대는 무는 개가 될래요. 무는 개가 되라, 어머니 그 말이 맞아요.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라고 말했던 시인을 생각합니다.
‘자화상’이라는 제목의 그 시를 읽은 이후 나는 오래도록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고독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진주조개처럼 알 품은 고독, 그보다 맑고 깨끗한 마음의 상태가 또 있을지요? 조금쯤 덜 고독한 지금의 나는 서른 살 그 고독한 날들의 풍경이 그립습니다.
어머니는 젊은 내게 늘 말씀하셨습니다. 무는 개가 되라고. 그래야 돌아본다고. 아프면 아프다고 틀리면 틀렸다고 똑 부러지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 되라는 말씀이겠지요. 착한 내 어머니는 평생 무는 개가 되지 못한 채 일흔여섯 살이 되셨습니다. 그런 분이 제게 무는 개가 되라 하십니다.
이 험한 세상에 그저 묵묵히 제 할 일만 하면서, 기분이 나쁘거나 조금 손해를 보아도 그냥 눈 딱 감고 침묵하는 사람이 되지 말라는 뜻이겠지요. 문득 제 땅을 모두 빼앗기고도 조용히 살아가는 아메리칸 인디언을 생각합니다. 비폭력 무저항을 말하던 마하트마 간디를 떠올립니다.
어머니를 그대로 빼닮은 제가 물기는 커녕 물리지만 않아도 다행이라는 건 누구보다 당신이 제일 잘 아십니다. 제가 누구랑 싸워서 이기는 걸 보셨어요? 아니면 꿔준 돈을 제대로 받는 꼴을 보셨어요? 무는 개가 되라는 어머니 말씀은 순한 개가 될 것이 틀림없는 딸에게 보내는 우려 깃든 가훈이었음을 압니다.
착한 사람들이 가득한 세상, 그곳이 바로 천국이겠지요. 이 세상의 똑똑한 무는 개들은 그냥 물라고 하세요. 다시 찾아온 선선한 가을이 우리를 너그럽게 합니다.
그래도 어머니, 조금쯤은 무는 개가 될래요. 까짓 조금쯤 서운하고 억울한 일은 그냥 눈감을지라도,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악과 불평등과 옳지 않음에 대하여 쩡쩡 울리는 소리로 컹컹 짖어대는 무는 개가 될래요. 무는 개가 되라, 어머니 그 말이 맞아요.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월간<샘터>2006.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