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든 몸이라 문밖을 나가지 못하다가 덕분에 어제는 마침내 뵙고 싶었던 바람을 이룰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요. 감사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아울러 깊어져 비할 데가 없습니다. 내일 남쪽으로 가신다니 추위와 먼 길에 먼저 몸조심하십시오. 덕을 높이고 생각을 깊이 하여 학업을 추구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만 줄이며 이황이 삼가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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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와 고봉사이에 오간 100여 통이 넘는 편지 중 첫 번째인 퇴계의 편지는 이처럼 단순히 문안 인사만을 나눈 엽서(葉書)형식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 격렬한 ‘사단칠정논변’의 발단은 해가 바뀐 기미년(1559년) 정월 5일, 퇴계가 고봉에게 두 번째의 편지를 쓴 것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아마도 퇴계는 직접 찾아온 고봉으로부터 이의를 제기받고 해가 바뀌는 세밑에 두문불출하며 이 문제에 대해 골똘하여 심사숙고하였던 것처럼 보인다.
두 번째의 편지 내용은 다음과 같다.“기정자(正子:교서관, 홍문관, 승문원 등의 하급 관리인 정9품의 벼슬을 가리킨다. 이 용어로 보아 고봉은 최초로 권지승문원부정자란 벼슬의 길에 들어선 것처럼 보인다.)의 안부를 묻습니다. 헤어진 뒤로 한동안 소식을 듣지 못했는데, 어느덧 해가 바뀌었습니다.
어제 박화숙(朴和叔)을 만나 다행히 그대가 부탁한 편지를 전해 받았습니다. 애타게 기다리던 마음에 매우 위안이 되었습니다. 영예롭게 돌아온 뒤로(과거에 급제한 뒤 부모를 만나러 다녀온 사실) 몸가짐과 마음가짐이 나날이 더욱 귀하고 풍성해졌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겉으로 처지가 바뀔수록 안으로 더욱 반성하고 보존함은 모두가 덕에 나아가고 어짐(仁)을 익히는 경지이니 그 즐거움에 끝이 있겠습니까.
저는 언제나 갈 곳을 몰라서 부딪치는 일마다 잘못되고 병은 깊어져 고질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임금의 은혜는 거듭 더해졌습니다. 정성을 다해 벼슬에서 벗어나기를 빌었습니다만 모두 쓸데없었습니다.
공조(工曹)가 비록 일이 없다고는 하지만 어찌 병을 다스리는 곳이겠습니까(퇴계는 1558년 12월에 공조참판이 되었다.) 그래서 물러갈 것을 꾀하지 않을 수 없으나 이처럼 소득이 없습니다. 게다가 주변에서는 오히려 물러나지 않는 것이 옳다고 여깁니다. 처세의 어려움이 이에 이르렀으니 어찌하겠습니까.”
이처럼 일상적인 다정한 안부와 올바른 처신에 대한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은 퇴계는 마침내 편지를 보낸 중요한 이유인 ‘사단칠정론’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해명하기 시작한다.
“…지난번에 비록 만나고 싶었던 바람을 이루기는 했어도 한순간의 꿈과 같이 짧아서 의견을 깊이 물을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오히려 기쁘게 들어맞는 것이 있었습니다.
또 선비들 사이에서 그대가 논한 ‘사단칠정’의 설을 전해 들었습니다. 저는 이에 대해 스스로 전에 말한 것이 온당하지 못함을 근심하고 있었습니다만, 그대의 논박을 듣고 나서 더욱 잘못되었음을 알았습니다.…”
2006-09-05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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