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위로부터 김준(金準)·김두진(金頭辰)·진성만(陳成萬)·양영일(揚泳一)
사진 위로부터 김준(金準)·김두진(金頭辰)·진성만(陳成萬)·양영일(揚泳一)
자칫 사라져 버릴 것 같았던 「자니·브러더즈」란 이름이 다시 소생되는 순간의 기쁜 표정들.
이들이 「보컬·팀」 해체를 선언한게 68년 8월. TBC-TV 의 『쇼·쇼·쇼』무대에서 「팀」해체를 선언하고 고별공연을 가졌었다. 해산 이유는 당시 수입으로는 현상유지가 불가능 하다는게 골자.
대중의 기호, 풍조는 단조로운 「솔로」보다 「보컬·그룹」의 「하모니」에 더 매력을 느끼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연예 풍토에서는 「보컬·그룹」의 유지가 퍽 어려운 것으로 돼 있다. 활동무대가 좁기도 하지만 「솔로·싱어」정도의 「개런티」가지고 3,4명이 나눠 가져야 하는게 아직까지의 실정.
「팀」이력 7년인 「자니」 는 그래도 국내 「보컬·팀」중에서는 가장 탄탄한 기반을 갖고 있었다. 「예그린」악단의 창단「멤버」였던 이들은 52년 1월의 「예그린」해산과 함께 「팀」을 만든 뒤 수 많은 「히트·송」을 내놓았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빨간 마후라』 『네가 잘 나 일색이냐』 『마포 사는 황부자』 『감자바위』등. 다분히 풍자적인 노래를 능청스런 창법으로 불렀고 이런 「팀·컬러」는 곧 「예그린」조(調)의 계승으로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이들의 해산은 연예계에 더 큰 충격을 주었었다. 해산 후 15개월동안 이들은 독자적인 사업과 활동을 벌였다.
우선 「리더」격인 김두진(金頭辰·31)은 4명이 다시 모일 날을 위해 「살롱」을 만들었다. 신촌(新村)에 12월 중 개업 예정인 「자니·살롱」이 그것.
그 다음 양영일은 S「피아노」 사(社)에 취직, 판매과장이란 직함을 가졌다. 틈 나는대로 TV에 나가 그의 장기인 「코메디」를 보여주기도 했고.
제일먼저 「팀」을 이탈했던 김준(金準·29)은 「솔로·싱어」로 활동하면서 「디스크」독집 『비정의 사나이』를 냈다. 그리고 막내둥이격인 진성만(陳成萬·29)은 잡지사를 차려 출판업에 손을 댔다. 이런 개인활동은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다. 개인생활이 안정돼야 좋은「그룹」도 될 수 있고 좋은 「그룹」이어야 개인 생활도 안정될 수 있다는-.
연예인이 연예활동만으로 살 수 없다는 서글픈 현상을 이들은 가장 합리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셈. 그래서 「당분간」이란 전제하에 이들은 한달에 꼭 한번만 TV에 출연한다.
「자니·브러더즈」란 「보컬·그룹」으로는 한달에 1회만 나타나고 그 밖은 각자의 이름으로 행동한다. 까닭에 이들이 MBC-TV의 「자니·브러더즈·쇼」(PD 전우중, 편곡 최창권·여대영)에 쏟는 정성은 보통 이상인 것 같다. 1시간 동안의 「와이드·프로」에서 이들은 새로 발굴된 한국민요를 현대적으로 「어레인지」해서 발표하고 2~3개월에 1회꼴은 「뮤지컬」을 해보겠단다. 한국 고유의 가락을 현대화 한다든가 서구의 「뮤지컬」을 국산화 한다든가 하는 것은 당초 「예그린」악단이 내세웠던 지표와 같다. 「예그린」이 본격적인 재기(再起)를 앞두고 잠시 쉬고 있는터에 이들의 포부는 그런대로 대견할 수 밖에.
『다시 모이기로 결심한 이상 품위있고 즐거운 「레퍼터리」로 이바지 하겠습니다』
「리더」 김두진(金頭辰)의 다짐.
[선데이서울 69년 12/14 제2권 50호 통권 제 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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