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에 들어서도 다인종 국가 브라질은 많은 격변을 겪었다. 그러나 칠레나 아르헨티나처럼 쿠데타와 대량 학살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미 1880년대에 노예제도와 왕실제도를 폐지한 브라질은 20세기 들어 예술가와 축구선수들이 놀라운 상상력을 보여줬다. 스페인계 아버지의 영향으로 유럽의 음악을 터득, 이를 기초로 브라질 음악을 재해석한 빌라 로보스가 있는가 하면, 유럽인들이 전해준 ‘공차는 놀이’를 축구로 승화시킨 펠레도 있다. 문화적, 인종적인 혼란 속에서 그들이 깨우친 건 자신들의 체질에 맞게 그들을 융합시킨 재창조의 능력이었다.
축구를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를 분해하면 결국 핵심은 개인기다. 체력과 조직력은 월드컵 본선무대에 오른 팀 모두에 기본적인 조건이지만 탁월한 개인기는 그것을 가질 만한 팀만이 가질 뿐이다. 바로 브라질이 그 팀이다.
지난 2002년 대회에서 독일이 강한 체력과 조직력에도 불구하고 일단 수비에 치중하면서 좌우 크로스를 올리는 단조로운 플레이로 준우승에 머문 것도 그 상대가 풋풋한 상상력과 능란한 기예를 가진 선수가 수천 명이나 되는 브라질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심판에게 공을 줄 때도 발끝으로 차 올려 무릎으로 트래핑한 후 공손히 머리를 숙이며 헤딩으로 넘겨준다.
더욱이 중요한 것은 브라질 선수들이 함부로 욕설을 퍼붓거나 심판을 향해 눈을 부라리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 지난 대회에서도 브라질 선수들은 상대 팀들의 고약한 반칙에 번번이 쓰러졌는데 그럴 때마다 호나우두와 히바우두는 오로지 땅을 보며 얼굴을 찡그릴 뿐 가해자를 향해 언성을 높이는 일이 없었다. 지난 대회 우승 직후 스콜라리는 이런 말을 남겼다.“우리에게 준우승은 최하위와 같다. 그러므로 나와 선수들은 성실하게 노력해야 했다. 그러나 즐기면서 이기라고 주문했다. 우리 선수들이 즐겁게 공을 차고 우승까지 했다는 점, 이 이미지를 영원히 기억해 주기 바란다.”
독일월드컵에서 어떤 팀이 우승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바라건대 브라질 선수들의 낙천성과 상상력을 다른 모든 팀들에서도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특히 ‘애국심’의 과잉 열풍 속에서 마치 독립운동이라도 하러 떠난 듯한 우리 대표팀의 젊은 선수들이 그 해맑은 미소를 끝까지 잃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축구평론가 prague@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