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칼럼] 자주에 대한 생각

[송두율칼럼] 자주에 대한 생각

입력 2005-08-31 00:00
수정 2005-08-31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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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으로 보이는 코스모스의 흰빛과 분홍빛이 가을바람에 흔들린다. 원산지가 남미이지만 스페인 정복자들이 유럽으로 가져온 코스모스는 그후 온 세계에 퍼져 한국의 가을정취도 한껏 살려주는 꽃이다. 그러나 독일의 코스모스는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키는 작고 꽃은 커서 한국에서 온 지인들은 가끔 코스모스가 맞는가 하고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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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교수
송두율 교수
20년 전쯤 오스트리아의 한 농가에서 처음으로 본 코스모스가 지펴준 고향생각 때문에 씨를 받아 키웠지만 키가 너무 커서 강한 바람이 불면 굵은 꽃대가 부러지기 일쑤였다. 그 후 개량종 코스모스를 심어 그의 활짝 핀 꽃송이를 보며 고향의 가을을 생각하게 된다. 독일과 한국의 서로 다른 환경에 적응하면서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이는 꽃들을 볼 때마다 나는 식물세계와 인간사회의 존재양식을 자연히 비교하게 된다.

식물의 존재양식을 통해 인간사회를 바라보려는 발상은 꽤나 오래다. 가령 힌두교의 경전 바가바드기타는 뿌리를 하늘에 두고 가지를 땅으로 뻗는 아수밧타 나무를 아는 자를 영원불멸의 진리를 터득한 자로 묘사하고 있다. 종교나 설화만이 아니라 동식물 세계로부터 인간세계의 존재양식을 도출하려는 ‘사회형태론’이나 ‘사회생태학’등도 있으며, 유기체의 생멸(生滅)처럼 문화의 성쇠(盛衰)도 유추(類推)해 보려는 철학적 시도도 꾸준히 있어 왔는데 이의 한 예가 슈펭글러(O.Spengler)의 ‘서구의 몰락’이다.

그동안 유전자과학의 비약적 발달은 정보인지과학과 결합되어 인간사회의 구조와 동학을 새롭게 밝히려는 여러 가지 사회과학적 이론도 낳았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사회체계이론’이다. 이 이론은 지금까지의 사회과학적 사고가 주로 그의 기반을 두었던 개인과 전체, 주체와 객체의 관계 대신 체계와 환경의 상호관계로부터 시작한다. 먼저 설정된 행위주체가 그의 대상을 자기 안으로 통합하는 식으로 사회를 볼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사회체계는 자신을 제약하는 환경과 항상 구별하면서 그의 한계 안에서 자신을 유지하고 또 재생산하는 식으로 사회를 보아야 한다고 사회체계이론의 대가 루만(N Luhmann)은 주장한다.

어렵게 들리는 이러한 사회과학적 이론이지만 이의 본질적 문제는 실은 6·15공동선언의 첫 항목의 이해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통일을 자주적 원칙 위에서 이룬다고 합의했지만 북쪽은 ‘주체’와 ‘외세’라는 주객관계를 전제한 자주개념을 염두에 두고 있었고, 남쪽은 ‘세계화’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자신의 주체를 강화한다는 의미에서 자주를 이해했다고 볼 수 있다. 요즈음은 주변나라들과도 잘 지내는 것이 자주의 새로운 의미라고 지적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각이 이같은 이해양식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하여튼 한편에서는 주체를 강화해서 통일을 방해하는 외세를 극복하는 ‘민족공조’의 원칙을 주장하고, 다른 편에서는 ‘한-미-일’이라는 이미 주어진 ‘환경’을 전제하는 자주를 강조하고 있다. 또 다른 중요한 차이점은 전자가 주체와 객체를 가르는 민족국가 사이의 ‘경계선’의 의미를 여전히 강조하는 반면에 후자는 이미 하나가 된 ‘세계사회’ 안에서는 경계선처럼 보이나 실은 경계선이 아닌 ‘지평선’이나 ‘수평선’이 체제와 환경을 구별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주체를 먼저 강화해서 통일에 유리한 국제환경을 적극적으로 조성하느냐, 아니면 주어진 국제환경에 먼저 순응하면서 이를 통해 주체를 강화, 통일을 이루는가라는 질문은 흡사 코스모스가 남미, 유럽, 한국 등의 서로 다른 생태환경에 적응하면서도 자신의 존재를 어떻게 유지해 왔는가 하는 물음에서도 많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남북의 서로 다른 자주에 대한 생각이 이제는 상호보완해서 자주에 대한 지금까지의 일면적 이해를 극복, 세계 어디에서든지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코스모스처럼 보편적 가치를 인류에게 보여줄 수 있는 통일된 아름다운 나라의 모습을 초가을의 코스모스를 통해서 그려본다.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2005-08-31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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