儒林(370)-제3부 君子有終 제3장 慕古之心

儒林(370)-제3부 君子有終 제3장 慕古之心

입력 2005-06-20 00:00
수정 2005-06-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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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 君子有終

제3장 慕古之心

눈보라 치는 한겨울에 죽령고개를 넘으면서 병든 퇴계는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눈 덮인 죽령고개 하늘높이 솟았는데/소 떼가 달려가듯 세찬 바람 불어 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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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 임의 명령 언제나 내릴는지/온갖 병든 외로운 신하 간절히 바라노라(雪嶺截半空 陰風如逐萬牛雄 九天恩何時下 百病孤臣正渴衷).”

퇴계가 이 시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있었던가는 이 시에 퇴계 스스로 ‘꼭 집어넣어라(此首當考入)’는 부전지가 붙어 있었던 것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이 시를 통해 퇴계가 죽령고개를 자신의 일주문(一柱門)으로 삼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일주문은 속계(俗界)와 진계(眞界)를 구별하는 사찰입구에 기둥을 하나씩만 세워짓는다는 문. 기둥을 하나씩만 세운다는 것은 오직 일심(一心)으로 부처에 귀의한다는 의미를 지닌 것으로 퇴계는 죽령고개를 최후의 보루로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즉 죽령고개 저편은 소 떼가 달려가듯 세찬 바람이 불어오는 권력과 세속이 흘러넘치는 화류항(花柳巷). 죽령고개 이편의 도산서당은 학문의 도량으로 퇴계는 죽령을 산문(山門)의 경계선으로 삼고 있었던 것이다.

추노지향(鄒魯之鄕).

가파른 죽령 고갯길을 올라와 마루 위에서 펼쳐진 새로운 지평을 바라보면서 퇴계는 문득 추노지향이란 단어를 떠올렸다. 추노지향은 맹자가 추나라 사람이고 공자가 노나라 사람이라는 것을 뜻하는 말. 여기서부터 성현을 존경하며 도덕을 가지고 학문을 숭상하며 예의를 지키는 고장을 추노지향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또한 고학군자와 홍유석학(鴻儒碩學)이 많이 배출되는 고장을 일컬어 말함이었던 것이다.

추노지향의 단어가 떠오른 순간 퇴계는 종자가 떠온 차가운 냉수로도 풀리지 않았던 갈증이 씻은 듯이 사라지고 가슴속에 환희심이 발분하는 것을 느꼈다.

순간 퇴계의 머릿속으로 공자의 고향 추노에서 전해오는 다음과 같은 말이 떠올랐다.

“자손에게 큰 상자 가득하게 황금을 남겨 주는 것은 일경(一經)을 가르쳐 주는 것보다 못하다.”

퇴계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염화시중(拈華示衆)의 미소였다.

-마찬가지로.

퇴계는 중얼거리며 말하였다.

-내가 벼슬길에 나서서 백성들에게 큰 상자 가득하게 황금을 가득 남겨준다 하더라도 이는 은둔하여 제자들에게 일경을 가르쳐주는 일보다 못한 것이다.

“어디 있느냐.”

퇴계는 고개를 들어 주위를 돌아보며 말하였다.

“예 있습니다. 나으리.”

멀찌감치 물러앉아 나무그늘 아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마부와 종자가 동시에 나는 듯 달려왔다.

“말에게 물은 먹였느냐.”

“먹였나이다. 나으리.”

“모두들 충분히 쉬었느냐.”

“쉬었나이다.”

마부가 대답하자 퇴계가 몸을 천천히 일으키면서 말하였다.

“그럼 이제 가자.”
2005-06-2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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