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가 가정 일을 잊어버리고 안심하며 조정에 머물러 있게 하기 위해서 이조판서가 아들 준을 취직시키려 하자 이때도 퇴계는 아들에게 벼슬을 말리며 다음과 같이 훈계하고 있다.
“홍판서가 내가 안심하고 서울에 머물게 하느라고 급히 너에게 벼슬자리를 준 것뿐이다. 이제 너는 벼슬이 바뀌었고 나도 서울에 머물 생각이 없으니 너의 벼슬자리를 도모하는 일을 어찌 홍판서의 뜻에 맡기겠느냐.”
이처럼 철저하게 아들의 벼슬을 말렸던 퇴계의 심정은 그 자신이 젊었을 때부터 벼슬에 무심하였던 데서 비롯된다. 퇴계 자신은 ‘어려서부터 성현의 학문을 기리는 모고지심(慕古之心)이 있었을 뿐’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이러한 마음은 제자 기고봉(奇高峰)에 준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면 더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어려서부터 바로 산림 속에서 늙어 죽을 계획을 세워 조용한 곳에 띠집이나 얽어놓고 독서와 양지(養志)의 미진한 점을 더 구하여 나가는데, 삼십 수년의 공을 더하였더라면 병도 틀림없이 나았을 것이고, 학문도 틀림없이 성취되어 천하 만물을 내가 다 즐기는 바가 되었을 터인데, 어찌하다 이런 것을 깨닫지 못하고 과거나 보고 관직에나 눈을 팔고 육신만을 취하였는지.…”
퇴계의 이러한 탄식은 자신이 과거를 보아 벼슬살이를 하였던 과거에 대한 후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퇴계가 죽령을 처음으로 넘은 것도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갔기 때문이었다. 이때 퇴계의 나이는 34세이었는데 과거를 보아 벼슬살이를 하기에는 늦은 나이였다.
이미 경상도에서 실시하는 향시에 응시하여 두 번이나 합격하였고, 진사시에도 합격하긴 하였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성균관에 들어가 공부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 것일 뿐 관리가 될 수 있는 등용문은 아니었던 것이다.
탄탄대로의 관직이 보장되는 과거시험은 임금 앞에서 친히 보는 전시(殿試)에 급제해야만 했던 것이다. 이미 복시(覆試)를 통과한 퇴계는 전시를 볼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이 있었으나 이처럼 학문에만 정진하고픈 학구열만 있었을 뿐 이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미 퇴계는 청년시절 세 번이나 과거시험에 낙방한 경험이 있었다. 퇴계는 연달아 과거시험에 낙방하여도 태연할 만큼 학문에 대한 입지가 굳어 벼슬에 대한 관심이 없었는데 이러한 심정은 퇴계의 다음과 같은 말을 통해 짐작할 수 있음이다.
“내가 24세 때에 세번이나 과거시험에 낙방하여 뜻을 펴지 못하였으나 실의하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하루는 누가 찾아와 ‘이서방’하고 불렀다. 나를 부르는 것 같아 조용히 살펴보았더니 찾아온 사람은 늙은 하인이었다. 곧 나는 ‘이름을 얻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욕을 당하는구나.’하고 탄식하였다.”
향시에만 합격되어도 사람들은 ‘생원님’혹은 ‘진사님’이라고 불렀는데, 늙은 하인이 퇴계를 ‘이서방’이라고 부른 것은 퇴계가 세 번이나 과거에 낙방하여 달리 부를 마땅한 호칭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퇴계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늙은 어머니의 간곡한 권유 때문이었다.
퇴계 자신도 연보에서 자신이 학문을 버리고 벼슬길에 나선 것은 ‘집안의 궁핍과 늙은 어머니와 친구의 강권 때문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2005-04-29 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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