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연숙칼럼] ‘가족’ 해체를 생각한다

[신연숙칼럼] ‘가족’ 해체를 생각한다

입력 2005-02-03 00:00
수정 2005-02-03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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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숙 수석논설위원
신연숙 수석논설위원 신연숙 수석논설위원
호주제 폐지에 대비한 새로운 신분등록제도안으로 정부가 ‘본인을 기준으로 한 가족기록부’ 방식을 마련했다. 그동안 대안들로는 개인별로 편제하는 1인1적제, 부부와 미성년 자녀의 가족단위로 편제하는 가족부제와 함께 혼인 등 증명 목적에 따라 편제하는 목적부제, 주민등록과의 일원화 등이 제시돼 왔다. 정부가 최종적으로 본인기준 가족부제를 채택한 것은 ‘호주제 폐지의 취지와 양성평등 원칙을 구현’하면서 ‘신분공시 방식의 급격한 변화가 가족해체를 촉발할 수 있다는 국민정서를 반영’한 것이라 한다.

사실 정부가 작년 호주제 폐지방침을 결정한 후 잠정적으로 예시했던 호적제 대안과 올해 대법원이 공개한 혼합형 1인1적 가족부 편제 방안을 놓고 가장 두드러지게 일었던 비판이 가족해체 담론이었다. 기왕에 부모와 본인·배우자, 자녀의 3대가족 관계를 나타내면서 본인 형제자매의 인적사항은 왜 기록을 안 하는가, 결혼한 여성의 등록부에 시부모가 표시되지 않으니 이게 가족해체를 촉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지적까지 나왔다고 한다. 결국 이런 지적이 수용돼 정부의 최종안은 배우자 부모의 인적사항, 형제 자매의 인적사항까지 기재하게 되었고 부부와 미혼자녀는 원칙적으로 동일본적을 유지하도록 되었다.

이 과정에서 ‘가족’이란 과연 무엇이고 신분등록제도를 가족부제로 하기로 했다고 해서 ‘가족’해체는 완화될 것인가란 의문이 남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런 제도에 관계 없이 ‘가족’해체론자들이 말하는 ‘가족’은 이미 해체되었거나 해체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가족부제가 그리고 있는 가족은 3대 직계가족과 형제자매를 포함하고 있어 전통적인 대가족제 개념과 가깝다. 전국 가족조사결과에 따르면 3세대가 사는 대가족 가구는 전체 가구수의 5.9%에 불과하다. 이런 기준의 가족은 이미 대부분 ‘해체’되었다고 할 수 있다.

조금 범위를 좁혀서 부부와 미혼자녀로 구성되는 핵가족 개념을 적용해도 추세는 마찬가지다. 전통적인 핵가족은 남편은 직장에 나가 돈을 벌고 아내는 출산과 육아, 가사를 도맡는 성별분업을 바탕으로 한다. 그러나 이혼율 증가와 맞벌이, 민주화에 따른 성역할 변화로 핵가족 역시도 ‘해체’ 과정에 있다. 전국 가구 중 부부·자녀로 구성된 가족은 51.2%에 머문다. 절반은 되지만 대다수는 아니다. 부부의 역할 면에서 봐도 변화는 확연하다. 우리나라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2002년 49.7%를 기록했다. 취업 여성 중 기혼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64.4%에 이른다. 남편은 벌고 아내는 가족을 돌보는 전통적 핵가족의 모습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추세는 우리 통계를 보나 서구 사례를 봐도 멈출 것 같지 않다. 따라서 결혼기피, 이혼율증가, 저출산, 빈곤, 청소년문제, 노인문제 등 사회문제를 염려한 나머지 전통적인 가족해체만을 걱정하고 있는 것은 현명한 자세가 아니다. 가족부에 아름다운 가족의 모습을 그려놓는 것은 정신적 위안이 될지언정, 가족을 재건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다. 전통적 모델에 특혜적 지원을 한다고 해도 대세를 바꾸긴 어려울 것이다. 필요한 것은 늘어나는 맞벌이가구, 한부모가구, 미혼가구, 노인가구 등을 포함해 다양한 가족의 존재를 인정하고 각각의 상황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파악해 해결책을 찾는 일이다.

여성부가 곧 여성·가족부로 다시 태어난다. 노무현 대통령은 “가정의 복구, 가정과 유사분위기를 이뤄냄으로써 가정을 받쳐 달라.”는 당부를 했다. 장하진 여성부 장관은 취임직후 성균관장을 방문하여 ‘시대가 바뀌었고 가족이 변화하고 있으니 새 가족문화를 창출할 수 있도록 하자.’는 데 합의했다고 한다. 여성부의 새 가족 정책이 관념적 가족이 아닌 현실적 인식에서 출발하는 실질적인 내용이 되어 나오길 기대한다.

수석논설위원 yshin@seoul.co.kr
2005-02-03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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