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부정과 타락과 부패는 이런 타협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정치가는 자신의 통치술이 오직 국민을 위한 정도(正道)에 충실하면 그만인 것이다. 여론은 인기에 불과한 하나의 유행인 것. 이는 예술가도 마찬가지다. 예술가는 그가 창조하는 작품이, 그림이, 음악이 좋은 씨앗의 역할만 하면 그만인 것이다. 그것이 좋은 열매를 맺고 못 맺음은 작가의 몫이 아닌 것이다. 씨앗을 뿌리는 사람이 씨앗의 수확까지 책임지려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탐욕이며 여론을 조작하는 독재인 것이다. 그것이 누구이든 정치가든 기업이든 예술가이든 그들이 목표로 해야 할 일은 가라지가 아닌 좋은 씨앗을 뿌리는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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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적으로 말해 좋은 씨앗을 뿌리면 반드시 좋은 열매를 맺게 되어 있으며, 마찬가지로 좋은 도를 행하면 반드시 그 결과는 좋게 되어 있는 것이다. 만약 공자가 자공의 말처럼 도를 낮추어 현실과 타협하였더라면 공자는 천하를 제패하는 재상은 되었을지는 모르나 2500년 동안 내려오는 동양사상의 정수인 유가사상을 탄생시키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예수가 말하였던 ‘하늘나라는 어떤 사람이 밭에 좋은 씨를 뿌리는 것에 비할 수 있다.’라는 비유와 공자가 자로에게 말하였던 ‘훌륭한 농부는 씨를 잘 뿌릴 줄은 아나 반드시 수확을 잘 거둔다는 보장은 없다.’라는 비유는 결국 같은 하나의 진리인 것이다.
두 제자에게 실망한 공자는 마지막으로 안회를 불러들인다. 그리고 두 제자에게 했던 질문을 여전히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던진다.
“시경에 보면 ‘외뿔소도 아니고 호랑이도 아니거늘 어째서 광야를 헤매고 있는가.’하고 읊고 있다. 그렇다면 나의 도가 그릇된 것일까. 우리가 어찌하여 그런 지경에 빠졌는가.”
이에 안회는 대답한다.
“선생님의 도가 지극히 위대하기 때문에 세상에서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선생님은 그 도를 계속 밀고 나가셔야 합니다.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받아들이지 않는 다음에야 참된 군자가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도가 닦여지지 않았다는 것은 우리의 결함이요, 도가 이미 크게 닦여졌는데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군주들의 치욕일 뿐입니다. 그러니 차라리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을 자랑으로 여기십시오. 받아들여지지 않은 다음에야 참된 군자가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안회의 대답을 들은 공자의 모습은 어떠하였을까. 사기는 그 모습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처음으로 공자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렇다면 공자는 어째서 처음으로 얼굴에 미소를 떠올렸을까. 안회의 대답이 자신의 비위를 맞춘 위로의 말이었기 때문이었을까. 그것이 아니라 안회의 대답이 옳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안회의 말이 단지 옳았기 때문에 미소를 떠올린 것일까. 아마도 아니었을 것이다. 공자는 그토록 곤경에 있으면서도 올바른 분별력과 올바른 지혜를 갖춘 안회가 평소의 가르침과 일치하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여겼기 때문에 미소를 띠어 올렸을 것이다.
안회가 공자의 으뜸제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안회가 스승을 ‘있는 모습 그대로의 공자’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마치 석가가 자신의 수제자로 초라하고 어리석은 가섭(迦葉)을 지정하였듯이.
일찍이 석가가 영산(靈山)에서 제자들과 함께 있을 때였다. 그때 허공에서 연꽃이 떨어져 내리자 석가는 말없이 연꽃 한 송이를 집어 들어 제자들에게 이를 보였다. 제자들이 모두 그 뜻을 몰라 침묵하고 있었는데, 오직 가섭만이 얼굴을 환하게 펴서 미소를 지었던 것이다. 염화미소(拈華微笑)란 말은 여기에서 나온 것. 석가의 마음을 가섭의 마음이 순간 꿰뚫어 보았던 것이다.
2004-11-26 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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