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백성을 부유케 하고,그 다음에는 가르치겠다.’는 공자의 말은 노나라에서 뛰어난 정치활동으로 황금 시절을 누렸던 공자가 새로운 미지의 나라에서도 그 나라의 백성들을 부유하고 도덕적인 사람들로 만들겠다는 정치적 의지를 가졌음을 엿보게 하는 것이다.
공자는 위나라에 도착한 후 자로의 손위 처남인 안탁추(顔濁鄒) 집에 몸을 의탁하였다.안탁추의 처와 자로의 처는 형제였는데,안탁추가 자로에게 말하였다.
“공자가 우리 집에 와서 머물기만 하더라도 위나라에서 경(卿)벼슬은 얻을 수 있을 것이오.”
이 말을 들은 자로가 공자에게 전하자 단숨에 거절하며 말하였다.
“천명(天命)이란 것이 있어.”
그렇다면 공자는 어째서 주유천하의 첫 번째 대상국으로 위나라를 선택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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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위나라는 노나라와 국경을 맞댄 가까운 인접국이긴 하지만 그런 지리적 여건보다도 위나라는 공자가 마음속으로 존경하고 있던 주나라 무왕의 이복동생인 강숙(康叔)을 제후로 봉하였던 은나라의 옛 땅으로 전대의 문화 중심지였던 것이다.뿐만 아니라 위나라의 임금 영공은 그 자신이 뛰어난 임금이 아니면서도 수많은 현명한 신하들을 등용하고 있다는 이유가 공자의 마음을 움직였을 것이다.
실제로 공자는 논어에서 영공을 무능하지만 위나라가 망하지 않는 이유는 영공의 신하로서 외교에 능숙한 중숙어(仲叔)가 있고,종묘의 일에 밝은 축타(祝駝)가 있으며,군사가 뛰어난 왕손가(王孫賈)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을 정도인 것이다.
실제로 공자는 논어의 위령공(衛靈公)에서 위나라의 대부 사어(史魚)와 거백옥(伯玉)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칭찬하고 있다.
“사어는 진정 정직한 사람이다.국정이 청명할 때는 화살 같은 정직함으로 충심을 다했고,국정이 혼란할 때에는 바른말을 함에 있어 마치 화살처럼 곧았다.또한 거백옥은 참 군자이다.국정이 청명할 때는 나와 벼슬을 지내고,국정이 혼란할 때에는 자기 재능을 걸머지고 은퇴하였다.”
위나라는 이처럼 현명한 신하들이 많이 보필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공이 무도하지만 위나라는 번성할 것이라고 본 공자는 그러한 인재를 발탁하는 능력을 가진 영공이 설마 자신을 모른 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공자가 위나라에 왔다는 말을 들은 왕손가가 공자를 찾아온다.왕손가는 공자가 칭찬한 군사의 뛰어난 무장.한마디로 위나라의 군권을 장악하고 있던 실세 중의 실세였다.
왕손가가 공자에게 건넨 첫 번째 말은 2500년이 지난 오늘에도 자주 인용되는,정치의 한 단면을 엿보게 하는 명문답 중의 하나이다.
여기서 왕손가가 말한 ‘방 아랫목에 아첨하느니보다는 차라리 부뚜막에 아첨하라.’라는 속담은 다음과 같은 깊은 뜻을 가지고 있다.
방 아랫목은 집안의 주인이 앉는 높은 곳이다.그러나 생활에 있어서는 천한 장소인 부엌의 부뚜막이 더 따뜻한 불과 밀접한 장소로 이 속담을 통해 왕손가는 ‘방 아랫목과 같은 임금에게 잘 보일 생각 말고 실권을 가진 나를 더 가까이하는 것이 어떻겠는가.’라는 뜻을 내비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를 거절하여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게 된다.’는 공자의 말은 하늘의 정도를 따르는 것이 올바른 신하의 도리라고 말함으로써 권신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꿋꿋한 신념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2004-10-13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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