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숙 주필
임영숙 주필
지난 주말 경기도 용인 이영미술관에서 ‘박생광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의 개막식이 열렸다.서해안 배연신 굿 및 대동굿의 인간문화재 김금화씨의 진혼굿도 함께 펼쳐졌다.인가도 드문,시골 좁은 골짜기에 100여대가 넘는 자동차가 전국에서 몰려들었다.화가의 고향 진주에서는 천리길을 멀다 않고 대절한 버스가 올라왔다.
전시작품은 화가 스스로 피카소의 걸작 ‘게르니카’에 견주었던 ‘명성황후’,동학농민운동의 순결한 넋을 힘있게 형상화한 ‘전봉준’,친구였음에도 부처님처럼 존경했던 청담 스님의 열반기와 고행기를 통해 불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청담 대종사’ 등 박생광을 말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대표작들과 만신 김금화를 소재로 한 여러점의 ‘무속’시리즈,소품 등 100여점이었다.이영미술관과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들이다.
이날 이영미술관은 ‘민족혼의 화가’로 꼽히는 박생광의 작품에 행복하게 젖어들게 했지만 예술가의 삶과 정신,그것을 꽃피게 하는 토양에 대해 생각하게 한 자리이기도 했다.박생광이 한국화단에서 주목 받기 시작한 것은 그의 나이 일흔일곱에 가졌던 백상기념관 전시회 이후다.20년이 넘는 일본생활과 진주 지방에 묻혀 중앙화단에서는 소외됐던 그는 여든 한살에 타계하기까지 몇년 동안의 폭발적인 작품활동으로 ‘한국화의 전설’이 됐다.
여든살 무렵 그는 인도의 정신과 프랑스의 예술을 순례하는 여행을 하고 경주 남산전을 열기 위해 산을 오르고 색채 도자기 공부를 하겠다며 일본을 찾는다.그리고 필생의 대작인 ‘명성황후’와 ‘전봉준’ 등이 발표된 문예진흥원 개인전을 갖고 이듬해 파리 그랑팔레의 르살롱전에 초대 받는다.
작품이 팔리지 않는 가난한 화가의 해외여행과 전시회 경비 등을 지원한 사람이 바로 김이환(70) 이영미술관장이다.그의 그림을 좋아했던 고향 후배로서 만년의 화가가 그림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도운 그는 팔순의 화가를 등에 업고 경주 남산을 오를 만큼 헌신적이었다.미술관을 세워 고인의 작품을 사회에 환원한 그는 미술관을 더욱 잘 운영하기 위해 예순의 나이에 와세다대학에서 미학을 공부하며 고인의 발자취를 더듬었다.지난해에는 고인이 염원했던 ‘명성황후’의 스페인 전시회를 열었고 탄생 100주년을 맞아 전시회와 함께 고인과의 인연을 담은수필집 ‘수유리 가는 길’도 발간했다.
이 아름다운 인연을 김금화(72) 만신의 천도굿은 더욱 빛나게 했다.지켜보기만도 힘든 굿을 작두타기까지 하며 주재한 칠순의 인간문화재는 고인과의 인연을 풀어내며 관객을 웃기고 울렸다.25년째 그의 굿을 보아왔다는 한 퇴직 교사는 김씨가 그토록 우는 모습은 처음이라고 했다.
칠순·팔순이 되도록 자신의 길을 꾸준히 걸어 가며 감동적인 예술과 인간관계를 이어간 세 사람의 만남-그런 만남이 계속 이어진다면 우리 문화는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김이환 관장 같은 예술후원자들이 또 나타나 제2,제3의 박생광이 빛을 볼 수 있게 하고 그들에게 영감을 주는 또 다른 예술가가 계속 함께 가는 길을 꿈꾸어 본다.
주필 ysi@seoul.co.kr
2004-09-23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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