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00년 DMZ 51년 생태계-그 빛과 그림자](15) 민통선 주민의 애환

[창간 100년 DMZ 51년 생태계-그 빛과 그림자](15) 민통선 주민의 애환

입력 2004-08-24 00:00
수정 2004-08-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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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인근 민간인통제구역에 삶의 터전을 잡은 이들은 요즘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여실히 느낀다.군사정권 당시 엄혹했던 ‘안보통제’ 일화들도 이제는 부담없는 추억담처럼 웃으며 들려줄 정도다.시아버지가 야밤에 출산한 며느리에게 미역국을 끓여주다 등화관제 위반으로 군부대에서 정신교육을 받았던 이야기,‘사상 불건전’이라는 꼬투리를 잡혀 인근 부대 화장실 청소를 해야 했던 이야기 등등….서슬 퍼렇던 시절의 일화들은 손자 세대들에겐 먼 나라 일처럼 신기하게 들릴 뿐이다.과거 민통선 주민들을 옥죄었던 불합리한 안보통제가 대부분 사라졌다는 방증일 게다.

“안보등쌀보다 ‘환경등쌀’이 더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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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의 출입이 제한되는 DMZ 인근 남방한계선 일대도 이처럼 농경지 등 주민들의 생계 터전으로 활용되고 있다.예전과 달리 ‘군사적 목적’의 통제는 완화됐지만 주민들에겐 환경보호 차원의 여러 규제장치가 큰 고충이다.지난 6월 경기도 강화의 한 농민이 철책선 바로 옆의 논에 들어가 작물을 살피고 있다.
 강화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민간인의 출입이 제한되는 DMZ 인근 남방한계선 일대도 이처럼 농경지 등 주민들의 생계 터전으로 활용되고 있다.예전과 달리 ‘군사적 목적’의 통제는 완화됐지만 주민들에겐 환경보호 차원의 여러 규제장치가 큰 고충이다.지난 6월 경기도 강화의 한 농민이 철책선 바로 옆의 논에 들어가 작물을 살피고 있다.
강화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하지만 민통선 주민들은 또 다른 고충을 호소하고 있다.안보 통제보다 이제는 ‘환경통제’가 더 괴롭다고 한다.이들은 “주민들의 이해와 공감을 구하지 않는,정부의 일방적인 환경보호 협조 요청이 군사정권의 그것과 무엇이 다르냐.”면서 “지역주민들의 피해보상 등 실질적인 생계보장부터 하고 나서 환경을 보호하라.”고 항변했다.

취재팀은 이번 생태탐사일정 틈틈이 짬을 내 ‘DMZ 생태계 보전’과 관련한 민통선 주민들의 입장과 애환을 직접 들어보았다.DMZ 인근을 삶의 터전으로 삼은 이곳 주민들을 빼놓고 DMZ 생태계의 바람직한 보전방안을 말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결론부터 말하면,이곳 주민들은 이구동성으로 “생계보장이 우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당장 내 농작물 망쳐버리는데 어떤 농사꾼이 야생동물 보호하고 싶겠습니까? 솔직한 심정대로라면 당장 올무 놓아 잡아버리고 싶지….” 철원군 대마리 김동일(42) 이장은 불만을 격하게 털어놓았다.

“사냥금지와 겨울철 먹이주기 등 계속된 환경보호 조치로 야생동물들이 지나치게 번식했습니다.그러다 보니 주민피해도 점점 커지고 있지요.기러기 등 일부 철새들은 아예 텃새화해 6월초까지도 떠날 생각을 않아요.모내기 피해 등 농작물 피해가 막심합니다.대마리에서만 연간 최소 5억원 정도 피해가 납니다.” 그의 말대로라면 주민들의 고통을 대가로 생태계의 보전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김 이장은 “정부당국의 보상이 지금처럼 생색내기 정도에 그쳐선 주민지원도,환경보전도 제대로 이뤄지기 어려울 겁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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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같이 농사를 지으러 민간인통제선을 넘나들지만 그때마다 주민들은 일일이 ‘영농민’이라는 신분확인증을 제시해야 한다.지역 농민들이 민통지역에 머물 수 있는 시간도 지역과 계절 등에 따라 서로 달리 운용되고 있다.
 
 철원 이종원기자 jongwon@seoul.co.kr
매일 같이 농사를 지으러 민간인통제선을 넘나들지만 그때마다 주민들은 일일이 ‘영농민’이라는 신분확인증을 제시해야 한다.지역 농민들이 민통지역에 머물 수 있는 시간도 지역과 계절 등에 따라 서로 달리 운용되고 있다.

철원 이종원기자 jongwon@seoul.co.kr
두루미중앙회 철원군지회장인 양지리의 백종한(52) 이장도 마찬가지 주장이다.“탐조관광 등 환경프로그램 개발도 좋지만,그보다 먼저 주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수익성 사업을 고민해 주었으면 합니다.” 매년 철원에서 벌어지는 철새 탐조관광과 관련,▲농산물 특판장 마련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음식점 시설 투자 등 주민수익으로 연결시키는 정책개발이 필요하다고 백 이장은 말했다.

주민 협조와 공감대 형성 우선돼야

생태 전문가들의 진단도 비슷하다.장기적인 안목의 생태계 보호를 위해서는 주민 협조와 공감을 구하는 일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한다.

신준환 국립산림과학원 환경생태부장은 “DMZ처럼 특수한 역사·사회적 배경 속에 만들어진 생태계를 논할 때 인간이 직·간접적으로 끼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DMZ 생태계 보호를 위해 지역주민들의 공감과 이해를 구하는 일은 필수적”이라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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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뺨검둥오리 한 마리가 꼬불꼬불 긴 족적을 남기며 경기도 강화갯벌에서 부지런히 먹이를 찾고 있다.민통선 주민이 ‘환경 등쌀’에 시달린다고 하지만 녀석은 사람의 간섭이 생존의 큰 위협요소일 것이다.사람과 자연이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공존의 해법’을 찾아야 할 때다.
 강화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흰뺨검둥오리 한 마리가 꼬불꼬불 긴 족적을 남기며 경기도 강화갯벌에서 부지런히 먹이를 찾고 있다.민통선 주민이 ‘환경 등쌀’에 시달린다고 하지만 녀석은 사람의 간섭이 생존의 큰 위협요소일 것이다.사람과 자연이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공존의 해법’을 찾아야 할 때다.
강화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최승호 전북대 연구교수도 “공사로 인한 하천 파괴 등 DMZ 생태계 교란의 가장 큰 원인은 인간들의 영향인데,이를 뒤집어보면 하천복구 등 생태계 회복에서도 인간의 역할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DMZ 생태계와 지역주민들이 서로 상생하며 공존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철원 채수범기자 lokavid@seoul.co.kr

전문가 칼럼-‘야생과의 공존’ 생태관광서 찾자

DMZ의 생태는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많은 환경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한다.다양한 야생 동·식물과 곤충은 생명공학의 소재가 되고 동굴·암석·주상절리와 같은 지질학적 특징물들은 과학적 지식을 향상시켜 준다.DMZ 자연의 다양한 문화적·심미적 질은 영감의 원천으로,사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DMZ의 색채와 소리는 인간의 정서와 웰빙에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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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곤  서울대 환경생태계획학 교수
김귀곤 서울대 환경생태계획학 교수
1년 간의 바이오매스(Biomass),즉 생체량의 관점에서 DMZ의 생산성은 아직 계산된 바 없지만,엄청난 양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탄소의 흡수·저장을 통해 기후변화 방지에 기여하는 효과 또한 클 것이다.홍수조절이나 물공급 효과 등 인간을 위한 환경의 질 개선 효과는 엄청나다.역사성까지 고려할 경우,그 가치는 더욱 클 수밖에 없다.

DMZ는 고요하다.이 고요함은 DMZ의 자연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지만,한편으로는 남북간의 긴장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하지만 최근 남북간 긴장이 완화되면서 불도저 등 각종 기계소리가 민간인통제 지역의 곳곳에서 들리고 있다.DMZ의 고요함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갖가지 명목의 개발압력이 DMZ 생태안보의 새로운 위협요소로 이미 자리를 잡았다.

이제는 건강하고 다양한 DMZ 자연을 유지·관리함으로써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때이다.그동안 유럽의 농업정책은 농촌지역의 환경가치를 파괴하는 결과를 부르는 인센티브를 농부들에게 제공해 왔다는 지적이 있었다.그러나 최근 들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상품보조금을 농부들에게 직접 지불하는 대신 농부들이 제공하는 공공혜택에 대해 보상해 주는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이같은 농업환경 정책은 사회 전체를 위해 좋을 뿐만 아니라 경제에도 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미국도 농부들로 하여금 생물 다양성과 매력적인 서식처를 안전하게 유지해 나갈 수 있도록 돕는 투자를 늘려나가고 있다.최근 미국의 야생생물과 관련된 레크리에이션 산업이 1080억달러의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는 보고서가 나왔다.사냥,낚시 그리고 야생동물 관찰은 농촌관광과 관련기업의 성장을 촉진시키기 때문이다.미국의 경우,이와 같은 생태관광은 토지가격의 상승을 가져와 토지로부터 얻는 이익도 증대시키고 있다.

DMZ의 자연에 대한 새로운 기회와 희망을 야생성이 풍부한 DMZ의 강·산림·습지,그리고 초지를 대상으로 한 생태관광에서 찾아보도록 하자.

김귀곤 서울대 환경생태계획학 교수
2004-08-24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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