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춘 '기념촬영-포세이돈 신전'(한지에 수…
박병춘 '기념촬영-포세이돈 신전'(한지에 수묵, 사진 콜라주 위에 채색, 71x400).수니온 곶을 외롭게 지키고 있는 포세이돈 신전.도리아식의 하얀 대리석 기둥이 뙤약 볕에 달아올라 뜨거운 열을 내뿜고 있다.
황혼 무렵의 포세이돈 신전.
황혼 무렵의 포세이돈 신전.
그리스 조각들은 기원전 7,8세기의 것들로 정교하기가 이를 데 없다.옷의 주름이나 근육 곡선을 그토록 섬세하게 표현한 것을 보면 몇천년 전에 이미 로댕을 능가하는 조각가들이 적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순간 나의 뇌리엔 파르테논 신전과 불국사 석굴암은 어느 것이 더 우월할까 하는 짓궂은 생각이 스쳤다.단단한 화강암을 많이 사용하는 우리 조각과 그리스의 그것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물론 어리석은 일이지만….아무튼 파르테논 신전 기둥의 배흘림 양식이 바다 건너,까마득한 세월의 강을 뛰어넘어 한국의 부석사 무량수전 건축 양식에까지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은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리스의 아름다움은 역시 지중해를 끼고 형성된 싱그러운 해변 풍광에서 찾을 수 있다.자그마한 어촌으로 이뤄진 아담한 에기나 섬을 빠져나와 포세이돈 신전으로 가는 바닷길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그림 같은 별장들이 점점이 박혀 있고 세계 최고(最古)의 누드 비치가 있어 휴가철이면 전세계의 관광객들이 떼지어 몰려온단다.
드디어 마주친 포세이돈 신전.아테나 여신과의 내기에 져 광분한 바다의 신 포세이돈을 달래기 위해 세워진 이 신전은 아테네 남단 수니온 곶의 천애절벽 위에 자리잡고 있다.마치 바다와 대적하려는 듯 우뚝 선 우람한 기둥들이 나를 압도했다.
기기묘묘한 주변의 산과 언덕,그리고 바다의 풍광은 차라리 포세이돈을 위해 존재하는 완벽한 ‘소품’ 같았다.하늘과 바다와 땅을 함께 떠받들고 있는 포세이돈의 위용은 스케치 여행 내내 머릿속에 지워지지 않는 잔상을 남겼다.
올리브의 나라 그리스.그리스의 산은 큰 나무가 없고 하얀 석회석과 작달막한 나무들로 이뤄져 그다지 볼품이 없다.내가 잠시 스케치한 산 풍경을 보고 일행 중 한 분은 “박 선생의 흐린 산수”를 보는 것 같다고 평했다.강원도 정선 지방을 여행한 사람이라면 대번에 그 이유를 알 수 있다.나는 해마다 석회석이 많아 속살을 훤히 드러내는 정선의 절벽산으로 스케치 여행을 다녔던 터.그러니 나의 그림이 그런 경향을 띠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지중해를 둘러싼 아름다운 해변과 옥색 바다,끝없이 펼쳐진 올리브 숲,그 사이로 흐드러지게 핀 붉은 개양귀비 꽃,유적지를 지키는 외로운 기둥과 돌무더기….찬란한 고대문명을 이룩한 그리스는 오랜 세월 침입자들에게 짓밟히며 몰락의 길을 걷기도 했다.나른한 한여름 오후,형해뿐인 유적들이 그날의 영욕을 말없이 증언해주고 있다.신들의 고향 그리스.그리스는 지금 아테네 올림픽을 앞두고 ‘영광이여 다시 한번!’을 외치고 있다.
화가·덕성여대 동양화과 교수
2004-07-01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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