儒林(116)-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儒林(116)-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입력 2004-06-16 00:00
수정 2004-06-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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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노랑나비였다.

이른 봄에 노랑나비를 보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데,노랑나비를 한 마리 잡기까지 했으니,이것은 길조인가.나는 소리를 내어 춘향전의 판소리 한 구절을 흥얼거려 보았다.

“그러면 너 죽어 될 것이 있다/너는 죽어 명사십리 해당화 되고/나는 죽어 나비 되어/나는 네 꽃송이 물고/너는 내 수염물고/춘풍 선듯 불거든/너울너울 춤을 추며 놀아보자.”

나는 손가락을 펼쳤다.그러자 잠시 멈칫거리던 나비는 너울너울 날갯짓하며 춤을 추며 사라졌다.

그래 조광조는 이곳에 묻혀 있다.

공자의 유교사상으로 정치개혁을 꿈꾸다가 실패하고 죽임을 당해 이곳에 묻혀 있는 것이다.

순간 내 머릿속으로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양팽손에게 했던 조광조의 유언이 떠올랐다.

조광조는 양팽손의 손을 잡고 ‘양공,안녕히 계십시오.신이 먼저 갑니다.’라고 위로한 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야사는 전하고 있지 아니한가.

“부탁이 있소이다.양공,나 죽은 후에 반드시 걸망 속에 들어 있는 태사혜를 신겨 주시오.내 두 발에 신발을 신긴 채 매장시켜 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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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조가 남긴 수수께끼의 유언은 그대로 지켜졌을 것이다.양팽손은 손수레에 조광조의 시신을 실어 자신의 고향인 쌍봉계곡에 가매장하였으며,이때 가죽으로 만든 태사혜를 조광조의 두 발에 신겨 주었을 것이다.이듬해 봄 조광조의 시신이 이곳으로 반장될 때에도 조광조의 시신은 아직 썩지 아니하고 그대로 남아 있었을 것이고,또한 그 짝짝이 가죽신도 남아 있었을 것이다.그러나 500년이 흐르는 동안 무덤 속 조광조의 백골도 진토되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니,하물며 그 가죽신이야 일러 무엇하겠는가.그러나 조광조의 육신이 썩어 진토가 되었을지언정 갖바치가 남기고 간 참위만큼은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으니.

“천년 세월도 검은 신을 희게 하지는 못하는구나.”

수수께끼의 갖바치가 직접 만든 가죽신과 더불어 바쳐 올린 조광조의 운명을 암시하는 수수께끼의 참언.이 참언의 비밀은 500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50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여전히 한 짝은 검고,한 짝은 흰 짝짝이 가죽신을 족쇄처럼 신고 있는 조광조.

그때였다.

문득 내 머릿속으로 등소평의 목소리가 천둥소리가 되어 들려왔다.죽의 장막 중국이 개방정책을 실시하려 하였을 때 위대한 개혁가 등소평은 이렇게 말하였다.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어느 고양이든 상관없다.쥐를 잘 잡는 고양이야말로 좋은 고양이인 것이다.”

중국이 정부 주도 체제에서 시장경제체제로 바뀔 무렵 등소평은 ‘부유할 수 있는 사람부터 먼저 부유해져라.’라는 선부론(先富論)을 주창한 후 ‘공산주의든 자본주의든 간에 돈을 잘 벌 수 있는 체제가 좋은 체제인 것이다.’라는 뜻으로 그 유명한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것이다.

등소평의 개혁정신에 의해서 중국의 개방은 급속도로 진전된다.그 어떤 이념이나 그 어떤 이데올로기에 구애되는 것은 마치 고양이의 색깔을 구분 짓는 무의미한 일이다.오직 필요한 것은 고양이의 빛깔이 아니라 쥐를 잘 잡느냐 못 잡느냐의 실용주의인 것이다.

그렇다면 조광조는 어떠한가.

개혁가 조광조는 여전히 죽은 지 500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한 짝은 검은 신을,한 짝은 흰 신을 신고 있지 아니한가.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자신의 이념에 의해 조광조가 검은 신을 신은 검은 사람이라고 단정짓는가 하면 조광조가 흰 신을 신은 흰 사람이라고 평가하고 있지 않은가.

분명히 말해서 흰 빛깔과 검은 빛깔은 쥐를 잘 잡는 고양이와는 전혀 상관이 없고,흰 가죽신과 검은 가죽신은 조광조와 전혀 상관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조광조의 짝짝이 신발,그 빛깔만을 문제 삼고 있지 않은가.
2004-06-16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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