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탱고] 동물원의 ‘혜화동’

[서울탱고] 동물원의 ‘혜화동’

입력 2004-04-02 00:00
수정 2004-04-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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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면 실향민들은 임진각에서 망향제를 올린다.못 견디게 가고픈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이런 식으로나마 달랜다.하지만 이들보다 사정이 더 딱한 사람들도 있다.아예 고향이 사라져 망향 대상조차 없어진 불쌍한 도시인들이 그들이다.이들은 집값이나 교육여건에 따라 유목민들처럼 도시 여기저기를 떠돈다.재개발 물결로 유년시절의 놀이터는 온데간데 없다.고향이란 단어가 등장하면 ‘심정적인 고아’가 된다.

그러나 간혹 이들이 고향의 흔적을 느낄 때도 있다.놀이터에서 구슬치기와 딱지 따먹기를 함께 하며 뒹굴던 친구들을 만나면 그렇다.뿔뿔이 흩어져 제각각 살다가 오랜만에 가까스로 연락이 닿았을 때다.모처럼 깊은 얘기를 털어놓고 지난 시절을 추억한다.그러다 누군가가 유학을 간다며 한마디 툭 던지면 회자정리(會者定離)란 사자성어가 그렇게 얄미울 수 없다.‘언젠가 돌아오는 날 활짝 웃으며 만나자 하네.내일이면 아주 멀리 간다고’

초등학교 동창들의 어렴풋한 기억



‘투잡스’의 전형인 동물원(www.ezoo.or.kr)은 정신과 의사 김창기씨를 비롯,5명이 멤버다.평소에는 서로 다른 본업에 열중하다 틈을 내서 음반을 한 장씩 낸다.‘주경야음’(晝耕夜音)하는 이들은 1987년 ‘거리에서’로 첫선을 보인 뒤 9집까지 낸 장수그룹이다.고(故) 김광석씨도 동물원 출신이다.

“87년인가,친구 하나가 갑자기 유학을 떠난다고 하더군요.가장 순수했을 때가 초등학교 시절이라 그때의 감정을 섞어 아쉬운 마음을 노래로 표현했죠.”

‘혜화동’을 직접 쓰고 부른 김창기씨는 혜화초등학교를 졸업했다.아버지 직장을 따라 호주로 떠나기 전인 초등학교 6학년까지 혜화동에서 살았다.눈이 내리면 혜화동 언덕에서 썰매를 타거나 형제들과 함께 언덕 위에서 퇴근하는 엄마를 기다리곤 했다.

“그때 함께 놀던 친구들은 인터넷 덕분에 40줄 가까이 돼서야 만났어요.세월 탓인지 다들 많이 변했더라고요.치맛바람을 타고 공부깨나 하던 애들은 별볼일 없어지고,오히려 가난했던 친구들은 근사하게 바뀌고….”

그는 혜화동에서 나온 뒤 연극이나 술 마시려고 동숭동에는 가봤지만 웬일인지 혜화동 쪽으로는 발길이 닿지 않았다.지하철4호선 혜화역 덕에 일반인들은 동숭동까지 포함,혜화동의 범위를 실제보다 넓게 보지만 그의 눈에는 어린 시절의 혜화동이 동숭동과는 구별된다.

“초등학교 졸업하고 한참 세월이 흐른 뒤에 다시 찾으면 크게 느껴졌던 운동장이 별로라는 걸 알게 되잖아요.변한 혜화동을 찾으면 마음의 고향이 깨질 것 같아서요….”

세 빛깔 어우러진 혜화동

지하철4호선 덕분에 동숭동 일부를 포함해서 생각되는 혜화동에는 세 가지가 엉켜있다.성직자와 수사들의 궤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가톨릭대 성심교정과 1958년 근대 교회건물을 처음 드러낸 혜화동성당.이제는 의대만 남았지만 방송통신대에 일부 존재하는 서울대 문리대의 발자국.런던의 웨스트 엔드처럼 연극을 골라 즐길 수 있는 소극장들의 천국도 문화동네 혜화동을 상징한다.굳이 파리의 몽마르트르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혜화동로터리에서 이화동사거리에 이르는 1.1㎞의 대학로는 젊은이들의 해방구다.주말에는 차량통행을 막아 ‘차 없는 거리’에서 젊은이들의 공연이 넘쳐난다.마로니에공원 한 가운데는 1929년 4월5일 서울대의 전신인 경성제대 당시 심은 마로니에나무가 서있다.1975년 서울대가 관악캠퍼스로 옮겨가기 전까지 경성제대 터는 상아탑의 낭만이 서려 있었다.

이태수 서울대 인문대학장은 “60년대 문리대생이 음악을 들으며 토론하던 ‘학림다방’과 중국음식점 ‘진아춘’을 모르면 간첩”이라면서 “진아춘의 주인이 지금은 교수나 장관이 된 학생들이 음식값 대신 맡긴 시계를 전시했다는 얘기도 있다.”고 전했다.

대학로에는 소극장 50여곳과 카페 500여곳이 밀집돼 있다.낭만적 분위기보다는 다소 상업적인 모습을 갖춘 지 오래다.서점 자리를 단란주점이 꿰차는 등 지성인의 거리라는 의미는 많이 퇴색했다.하지만 마로니에공원과 동숭아트센터 앞에선 지금도 주말마다 각종 공연과 뮤지컬,마임,코미디 등이 펼쳐져 맥을 이어가고 있다.

연극배우 박시윤(30)씨는 “80년대 젊은이들의 풍류마당과 막걸리 문화로 상징되던 대학로에 90년대에는 폭주족의 굉음과 힙합댄스 열풍이 불기도 했다.”면서 “이제 대학로는 여러 문화가 뒤엉킨 서울의 대표적인 문화 공간”이라고 말했다.

대학로 뒤편 산등성이로 올라가면 젊은 신학도들의 요람인 가톨릭대와 혜화동성당이 눈에 들어온다.성스럽고 차분한 분위기라 도시의 번잡스러움을 잠시 잊고 산책하기에 일품이다.중세 수도사들의 옷을 입은 젊은 수사들도 더러 눈에 띈다.김수환 추기경은 여기서 ‘혜화동 할아버지’로 불린다.민속자료로 지정된 김상협 전 국무총리의 고택과 하비에르 국제학교도 자리하고 있다.

이유종기자 bell@˝
2004-04-0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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