儒林(58)-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儒林(58)-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입력 2004-03-26 00:00
수정 2004-03-26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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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일개 갖바치에 불과한 피장에게 ‘학문에 관해 묻거나 같이 자면서 시국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다.’는 기록은 이긍익(李肯翊)이 편찬한 사서 ‘연려신기술(燃藜室記述)’에도 나오고 있는데,어쨌든 뛰어난 인물이면 상민이건 천민이건 첩의 자식인 서얼이건 가리지 않고 과감하게 발탁하여 등용하자는 조광조의 신분철폐사상으로 인해 그런 파격적인 일화가 싹틀 수 있었던 것이다.

조광조가 그 수수께끼의 피장에 관한 소문을 들은 것은 1년 전인 중종 13년 봄이었다.이 무렵 조광조는 부제학이었는데,과거제도를 시험으로 뽑지 않고 추천으로 하는 천거과(薦擧科)로 뽑자고 공식적으로 발의하고 있었던 것이다.조광조는 이 혁신적인 제도를 발의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땅이 작아 본래 인물이 적은 데다 여기에 또 서얼과 사천(私賤)을 분별하여 그들을 쓰지 않습니다.중국에서는 귀천을 가리지 않고 오직 고루 쓰지 못함을 걱정하고 있는데,어찌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시행조차 못하고 있나이까.”

결국 조광조는 현실의 벽이 너무 두꺼웠으므로 어쩔 수 없이 천거의 대상을 양반계층에만 국한시킬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조광조와 일개 갖바치와의 이러한 파격적인 우정은 조광조가 얼마나 신분보다는 인물위주로 사람을 평가하는가를 여실히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도성 안 수표교 근처에 남다른 인격을 지닌 피장 하나가 있다는 말을 들은 조광조는 하인을 데리지 않고 홑몸으로 그 피전을 방문하였다.작은 점방 안에는 기골이 장대한 사람이 가죽으로 물건을 만들고 있었다.그 갖바치가 문리까지 틔어 사물의 조리를 깨달아 모르는 것이 없다는 소문이어서 조광조는 일부러 변복을 하고 점방을 찾았던 것이었다.

“어인 일로 오셨나이까.”

짐승의 가죽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있던 갖바치가 조광조를 보고 물어 말하였다.이에 조광조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그대가 가죽을 잘 다룬다고 하니 가죽 다루는 솜씨를 보러왔네.”

난데없는 조광조의 대답에 힐끗 조광조를 일별하고 나서 갖바치는 한참을 말없이 가죽을 다뤄 물건을 만들 뿐이었다.한참동안 묵묵히 일만 하던 갖바치가 오랜 후 다시 입을 열어 물었다.

“하오면 가죽의 겉을 다루는 솜씨를 보러 오셨습니까,아니면 가죽의 속을 다루는 솜씨를 보러 오셨습니까.”

갖바치의 질문에 조광조는 뜨끔하였다.속마음을 들킨 때문이었다.피전 안에는 갖바치가 용도에 따라 쓰는 가죽들이 매달려 있었다.쇠가죽과 돼지가죽,거북이가죽과 뱀가죽. 그뿐인가. 염소가죽과 두꺼비가죽도 걸려 있었다.갖바치의 말은 단순한 것 같지만 깊은 뜻을 담고 있었다.이를테면 쇠가죽은 겉으로만 보면 소의 가죽에 지나지 않는다.그러나 쇠가죽의 속을 보면 그것은 소의 가죽이 아니라 소의 마음이 되는 것이다.마찬가지로 뱀가죽은 겉으로 보면 뱀의 가죽에 지나지 않지만 뱀가죽의 속을 보면 그것은 뱀의 마음이 되는 것이다.그러므로 ‘가죽의 겉을 다루는 솜씨를 보러 오셨는가, 아니면 가죽의 속을 다루는 솜씨를 보러 오셨는가.’라는 갖바치의 질문은 조광조가 이곳에 다만 자신을 미천한 갖바치로서 가죽을 다루는 솜씨를 보러온 것이냐,아니면 겉은 갖바치이지만 속마음,즉 자신의 진면(眞面)을 보러온 것이냐고 묻는 일종의 준엄한 선문이었던 것이었다.이에 조광조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내가 그대를 찾아온 것은 피리를 보기 위함이오.”

피리(皮裏).이는 가죽의 내부,즉 심중을 가리키는 말로 내가 찾아온 것은 가죽 다루는 솜씨가 아니라 그대의 마음이라는 선답이었던 것이다.

그러자 갖바치는 껄껄 소리내어 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하오면 나으리께오서는 양추(陽秋)를 보러 오셨소이다 그려.”
2004-03-26 4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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