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직이 함양에다 관영차밭을 만든 것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진귀한 사건이었다.그 이후로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수롭지 않게 보아 넘긴 우리들의 천박한 역사의식이 저지른 우리들의 수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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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예림서원
밀양 예림서원
경남 밀양시 부북면 후사포리에 있는 예림서원(禮林書院). 영남 유림의 종장(宗匠) 점필재 김종직을 인격 양성과 학문의 본으로 삼은 후학들의 교육기관이다. 경남 밀양 이종원 기자 jong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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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예림서원
밀양 예림서원
경남 밀양시 부북면 후사포리에 있는 예림서원(禮林書院). 영남 유림의 종장(宗匠) 점필재 김종직을 인격 양성과 학문의 본으로 삼은 후학들의 교육기관이다. 경남 밀양 이종원 기자 jongwon@
김종직 군수가 관영차밭을 조성할 수 있었던 것은 도학사상이 내뿜은 빛이었다.현실세계의 부정과 불의를 질타하고 대안을 내놓아 잘못을 바로잡는 일에 몸과 마음을 던져 넣는 도학정치의 실천이었다.
●개인 소유 땅 보상해주고 차밭 조성
엄천사 북쪽 대밭 근처에다 함양현에서 직접 관리하는 차밭을 만들려고 하는 땅은 개인소유였다.당연히 적정 가격으로 보상해 주고 사들이거나 아니면 크게 모순되지 않는 조건으로 땅을 바꾸어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김종직 군수는 함양현에서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 땅과 엄천사 옆의 개인 소유 땅을 바꾸어 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땅을 보상해 주는 이 과정에서 그의 도학사상이 추구하는 세계가 어떤 모습이어야 한다고 믿고 있었는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만약 국가의 법령과 제도에 따라서 관영차밭을 만들어야 했다면 문제될 일은 처음부터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법에 정해진 대로 토지를 장만하고 농민들에게 부역을 시키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김종직 군수가 만든 차밭은 법령이나 제도하고는 아무 관련이 없는,군수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서 생겨난 일이었다.따라서 함양군수가 나서서 굳이 관영차밭을 조성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차밭을 만들지 않는다 해서 군수가 처벌받을 일이 결코 아니었다.
또한 관영차밭에서 차를 생산하지 않았기 때문에 함양 농민들이 차 공물의 부담에 시달리다 못해 모두 도망을 쳐버리거나 자살하는 일이 발생하더라도 군수에게 책임을 물을 일은 아니라고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다만 공물을 바치도록 지도하고 계몽하지 않았다는 행정적 책임 정도는 물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함양 농민들한테서 차 공물을 거두지 못한 나라에서는 함양현에서 책임져야 할 양만큼을 다른 지역 농민들에게 떠안겨버리면 그만이었다.
예사 군수들이라면 김종직의 일을 두고 부질없는 일을 자초하여 괜스레 군수의 일거리만 잔뜩 벌여 놓았다며 불평했을 것이다.김종직 군수의 생각은 달랐다.
만일 그쯤에서 관영차밭을 만들고 차를 생산하여 이것으로 농민들의 차 공물을 대신 해결해주지 않으면 장차 함양 농민들이 얼마나 혹독한 고통을 겪게 될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이제껏 함양 땅에서 차가 생산되지 않는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전임 군수들은 하나같이 아무 대책도 세워주지 않았다.관영차밭 조성을 생각하지 못했다면 정부에다 함양 농민들이 겪는 고충과 차 공물 제도의 모순을 바로잡아 달라는 상소라도 올렸어야 옳았다.
그런 일은 고사하고 도리어 기일 안에 차 공물을 바치지 못하면 군수에게 돌아올 행정적인 책임을 면하기 위해 아전들로 하여금 농민들을 독려하도록 엄하게 명령을 내리고 호통쳤을 뿐이었다.
이런 내력을 소상하게 헤아린 김종직 군수는 사뭇 남다른 생각을 했다.
차 공물 제도는 함양군수 따위가 폐지를 건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국가를 유지하기 위한 중요 제도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함양 농민들에게 매겨진 차 공물에 대한 의무를 성실하게 이행하지 않게 되면 그 폐해는 매우 커진다는 것을 안 것이다.함양 농민들이 져야 할 책임을 다른 지역 농민들이 떠안게 되면 그 지역 농민들이 겪어야 할 고통은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가혹할 것임을 생각했다.
농민들의 부담은 너무 무거웠고,벗어날 방도도 없었다.그렇다고 모든 공직자가 방임해버린다면 가련한 농민들의 삶은 누가 보호해 줄 것인지를 아프게 생각했다.백성이 불행하면 나라 또한 불행해진다는 것이 김종직의 철학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함양 농민들에게 해마다 부과되는 차 공물이 매우 중요한 국가의 외교 업무에 사용되고 있어서,공물의 납부에 차질이 생기게 되면 국가의 위신에 큰 손상이 생기게 된다는 점을 깊이 고려했다.
즉 차 공물은 서울의 왕이나 사대부들이 애용하는 기호품이 아니라 중국과의 외교에 긴요하게 사용되는 조공물(朝貢物)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국 황제와 귀족들의 기호품이었다.
●차 조공은 중국황실 요구 따른 것
조선왕조의 조공사행(朝貢使行)에는 동지사(冬至使: 동지 때 파견하는 사절로서 한 해를 보내게 된 데 대한 인사),정조사(正朝使: 새해맞이 인사를 위해 보내는 사절),성절사(聖節使: 왕,왕후의 생신을 축하하러 가는 사절),천추사(千秋使: 황태자 생일을 축하하러 가는 사절)의 정기적인 사행(使行)과 임시사행이 있었다.이때 반드시 가져가야 하는 조공물 중에서 매년 시월에 보내는 세폐(歲幣)의 품목에는 차(茶)가 들어 있었다.
조선왕조는 불교를 억압하는 차별정책을 국가이념으로 삼았고 이는 고려왕조와의 차별화를 위한 것이어서 고려왕조의 문화적 특성이었던 차 마시는 문화를 단절시켰다.
다만 도학사상의 의리파에 속한 정몽주,길재,김숙자,김종직과 그의 학맥은 차 마시는 문화를 이어내렸다. 결국 조선왕조에서 차 공물제도를 유지시킨 궁극적 목적은 중국과의 조공에 필요했기 때문이었다.또한 조공품목에 차를 포함시킨 것은 조선왕조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중국의 요구에 따른 것이었음이 중요하다.
차 문화는 중국이 더 화려했지만 정작 차의 품질면에서는 조선의 차가 더 우수했던 것으로 보인다.중국의 황실이나 귀족들이 조선에서 생산되는 차를 높이 평가했고 이를 구하기 위해 외교적 방법까지 이용했던 사실이 그 증거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지리산 일대에서 자라는 찻잎은 맛과 향기,색깔 모든 면에서 중국 차보다 우수했으며,차 외에도 지리산에서 자라는 약초들의 효험이 빼어났기 때문에 역대 중국의 귀족들이 특별한 관심을 가졌던 점은 오늘날에도 중요한 일이다.
이와 같은 차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는 김종직은 그 자신 차 문화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었던 인물이었다.
그래서 함양 농민들에게 지워진 차 공물 부담을 어떻게든 줄여주어야 한다는 것과 차가 지니고 있는 정치적 문제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책임감으로 고뇌했던 것 같다.
대답은 관영차밭을 조성하는 것,찻잎을 따고 가공하는 일은 함양 농민들이 협동하여 해냄으로써 부담을 줄이고 차 공물이 지닌 국가적 중요성도 지켜나갈 수 있도록 했던 것이다.
높은 학문과 깊은 경륜으로 백성들의 고단한 삶 구석구석을 챙겨주고 보살펴줌으로써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로부터 칭송받아온 어진 사람의 덕망은 시대를 뛰어넘는 아름다움이다.
●백성의 고통 어루만진 도학정치
김종직 군수는 그의 도학사상을 강론이나 책 속의 이론으로서만이 아니라 모순에 찬 현실을 개혁하고 불의의 근원을 척결하여 백성들의 삶에서 정치의 꿈이 실현되는 현실 속의 이상을 실천하려 했던 사람이었다.
유학자로서 도학정치의 완성을 꿈꾸었던 그는 조선 차의 역사와 성품을 만들면서 고통스럽게 생을 이어온 백성들의 마음을 절절하게 느꼈던 정치가이자 학자였다.
백성의 존재가 나라의 근본이라는 그의 생각은 오늘날 우리 시대에 가장 깊은 화근이자 폐해가 다름 아닌 정치인들이며 가진 자들의 그릇된 생각임을 아프게 꾸짖는 말씀으로 새겨진다.
한편 함양을 두고 “좌강(左江) 안동(安東)이나 우강(友江) 함양” 이라고들 한다.낙동강 동쪽에서는 안동이 훌륭한 유학자를 많이 낳은 땅이고,낙동강 서쪽에는 함양이 그런 땅이라는 말인데,이는 함양을 자랑할 때 사용하는 대표적인 말이다.
그 함양 유학의 기틀이 된 이는 김종직의 문하이면서 안의현감을 지낸 정여창이다.그는 세종 때 함양 지곡에서 나서 큰 학자이자 정치가로서의 생을 살았다.연산군 때 그의 스승인 김종직과 더불어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죽었는데,그 스승과 제자를 죽인 사람들의 이름보다 죽은 이들의 이름이 오늘까지 한국인의 가슴에 향기롭게 살아남아 있다.정녕 문화의 새벽을 여는 민족 정신의 종소리다.
2004-02-09 3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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