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고대로부터의 통신

책/고대로부터의 통신

입력 2004-01-10 00:00
수정 2004-0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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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대사를 연구하는 기본자료인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는 이미 오랜 시간이 흐른 고려시대에 전승자료를 모아 편찬한 것이다.반면 글씨나 그림을 쓰거나 새긴 금석문(金石文)은 뒷사람의 손길이 타지않은 생생한 자료다.문헌에서는 찾을 수 없는 사실을 전해주고,잘못도 바로잡아준다.

‘고대로부터의 통신’(한국역사연구회 고대사 분과 지음,푸른역사 펴냄)은 ‘금석문으로 한국 고대사 읽기’라는 부제처럼 금석문을 어떻게 읽고 해석하여 한국 고대사를 복원해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역사가 소설과는 또 다른,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상상력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한다.

머리에 실린 ‘신라왕족의 로맨스’부터가 그렇다.각석(刻石)이란 글씨나 그림이 새겨진 돌이다.울산 울주의 천전리 각석에는 청동기시대 이후 갖가지 명문과 그림이 새겨져 있다.바위 중간 아래쪽에는 상당한 길이의 명문이 있다.먼저 새겨진 원명(原銘)과 나중에 덧붙여진 추명(追銘)을 재구성하면 신라사의 상당부분이 규명되고,더하여 한 편의 사랑이야기가 탄생한다.원명을 정리하면 ‘을사년 어느 날 신라 사훼부(沙喙部)에 소속된 갈문왕이 골짜기에 놀러왔다 갔으며,함께 온 누이는 어사추였다.’는 내용이다.을사년은 법흥왕 12년(525년)이다.갈문왕은 왕에 버금가는 최상급 신분으로,법흥왕대의 갈문왕은 왕의 친동생인 사부지(徙夫知)였다.

어사추는 ‘갈문왕의 우매(友妹)’라고 했다.손아래 누이라면 매(妹)만으로 족하지만,우매라고 한 것은 신라 왕실에서 근친혼이 성행한 것과 관련이 있다.혼인을 하기 이전의 예비 커플이 서로 ‘벗으로 사귀는 오라비(友兄)’나,‘벗으로 사귀는 누이(友妹)’로 부르며 가까이 지내는 것은 지극히 흔한 현상이었다는 것이다.

추명은 두 사람이 천전리 계곡을 찾은지 14년이 지난 기미년(539년)에 사부지의 부인 지몰시혜비가 다시 이 곳을 찾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불행하게도 사부지와 어사추는 세상을 떠난 뒤다.삼국유사에 따르면 지몰시혜는 법흥왕의 딸이자 진흥왕의 어머니로 알려진 지소부인(只召夫人)이다.사부지가 법흥왕의 아우이니 사부지와 지몰시혜는 삼촌과 친조카사이이다.

연인 사이이던 사부지와 어사추가 결혼에 이르렀는지는 알 수 없다.사부지가 지몰시혜와 결혼한 것도 어사추가 먼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인지,사이가 멀어졌기 때문인지도 알 수 없다.그러나 어사추가 사랑하던 사람과 인연을 지속하지 못한 비운의 여인이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는 것이다.

‘고대로부터…’은 금석문이 과거를 밝히는 열쇠라는 사실을 일러주지만,일본 나라(奈良)현 텐리(天理)시 아소노카미(石上)신궁에 있는 칠지도(七支刀)처럼 왜곡된 역사를 증거하는 수단으로 잘못쓰일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1892년 발견된 뒤 현재까지 칠지도에 대한 일본사학계의 해석은 임나일본부설의 전개상황에 맞추어 뒤바꾸는 불합리한 욕망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대표적인 소장파 고대사학자가 대거 참여하여 집필한 ‘고대…’은 이밖에 ▲동수묘지 ▲광개토대왕릉비 ▲모두루묘지석 ▲중원고구려비 ▲무령왕릉 지석 ▲영일 냉수리비와 울진 봉평비 ▲진흥왕순수비 ▲계유명아미타삼존불비상 ▲사택지적비 등 금석문 18가지를 다루고 있다.1만4000원.서동철기자 dcsuh@
2004-01-1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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