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행복하다.하지만 자기 일을 신명이 나서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40대 후반,새로운 것을 시작하기엔 늦었다고 생각하기 쉬운 나이에 과감하게 자신의 꿈을 실현한 사람이 있다.미술품 경매 전문회사인 ㈜서울옥션의 김순응(50) 사장이 주인공이다.2년 전만 해도 그는 하나은행의 자금본부장을 맡고 있었다.그러나 김 사장은 지금 23년의 은행원 생활을 접고 새로운 길을 걷고 있다.
미국 남 캘리포니아대(USC)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돈과 관련된 공부를 했고 돈을 다루는 일만 했다.그런 그가 이제는 그림을 사고파는 전문가가 돼 ‘미술소비’ 문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김 사장은 “미술품도 하나의 상품”이라고 강조한다.그가 보기에 우리 미술시장엔 엄밀한 의미의 ‘시장’도 ‘가격’도 없다.같은 그림이 유통경로에 따라 천지차의 가격으로 거래되는 미술품의 이중가격 관행이야말로 우리 미술계의 뿌리깊은 병폐다.이것은 그동안 미술시장이 작가와 화랑에 의해 독점돼온 것과 무관치 않다.우리 미술시장의 또 다른 고질 가운데 하나는 호당가격제.예술작품을 크기에 따라 값을 매긴다는 것 자체가 이미 예술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피카소의 작품은 같은 크기라도 완성도에 따라 100배 이상의 가격 차이가 난다.김 사장은 그런 점에서도 미술품경매제는 보다 활성화돼야 한다고 말한다.“미술품 가격은 자유로운 경쟁과 시장원리에 따른 경매를 통해 끊임없이 검증되고 공개돼야 합니다.선진 외국에선 미술품 거래의 절반 이상이 경매 형식으로 이뤄지고 있어요.경매를 통해야 작품의 ‘기준가격’이 형성되지요.” 그에 따르면 92년 이후 한국 미술시장의 불황은 이같은 미술시장의 구조적 문제 때문이다.
금융과 미술의 만남.김 사장은 앞으로 자신의 장점을 살려 미술시장의 인프라를 갖춰 나가는 데 힘을 쏟을 작정이다.우리 제도금융권에선 미술품 담보대출을 시행하는 곳이 없다.보험회사에서도 미술품을 받아주지 않는다.“선진국에서는 많은 은행들이 개인고객관리 차원에서 미술품 투자 등을 위한 ‘아트 뱅킹’ 부서를 따로 두고 있어요.우리에게 무엇보다 우선적인 과제는 미술품 담보대출과 보험제도를 뿌리내리게 하는 것입니다.” 서울옥션에서 시행하고 있는 미술품 담보대출은 현재 대출잔액이 40억원선에 불과하지만 미술시장에 적잖은 활력소가 되고 있다.
미술사에 이름을 남긴 위대한 작가들 뒤엔 늘 위대한 화상들이 있었다.2차대전 후 뉴욕에서 활약한 레오 카스텔리는 그 대표적인 예다.로버트 라우셴버그·재스퍼 존스·프랭크 스텔라·로이 리히텐슈타인·앤디 워홀·제임스 로젠키스트·도널드 저드·리처드 세라 등 숱한 유명작가들을 무명 시절 발굴한 이가 바로 그다.카스텔리는 이미 이름이 알려진 작가와는 절대로 같이 일을 하지 않았다.우리 화랑들은 얼마나 장기적인 안목에서 투자를 하고 있을까.김 사장은 “화랑들이 젊은 작가들을 발굴하기보다는 당장 돈이 되는 유명작가들의 작품에 매달리고 있는 실정”이라며 “그러면서도 왜 사람들이 박수근이나 김환기 작품만 찾느냐고 불평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라고 말한다.
김 사장은 때로 “경매 때문에 화랑이 망한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하지만 그의 경매관은 확고하다.“경매는 소비자 주권을 가장 확실하게 구현하는 유통혁명입니다.화랑으로선 일시적으로 시장이 잠식되는 측면이 있지만 결국은 미술시장의 볼륨을 키우고 체질을 강화하는 길입니다.” 잘 나가던 엘리트 은행원에서 미술품 경매회사 CEO로 변신한 지 2년 6개월.그는 이제 아웃사이더의 순수한 열정뿐 아니라 전문가의 감식안으로 그림을 사고 판다.그런 만큼 그가 들려주는 작품구입 요령은 참고할 만하다.“주식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 가치주를 사놓고 때를 기다리듯이 미술품 투자도 가능성 있는 젊은 작가의 작품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이미 평가가 끝난 대가들,즉 ‘블루칩 작가들’의 작품은 환금성과 안정성은 있지만 진정한 컬렉션의 묘미는 주지 못해요.” 개인적으로 20년 넘게 그림을 수집해온 김 사장이 가장 좋아하는 소장품은 민중작가 오윤의 판화 ‘춤’.그가 이 작품을 아끼는 것은 자산 가치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림은 고달픈 하루가 끝난 뒤에 쉴 수 있는 편안한 안락의자 같아야 한다.”는 프랑스 화가 마티스의 말을 믿기 때문이다.
김종면기자 jmkim@
미국 남 캘리포니아대(USC)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돈과 관련된 공부를 했고 돈을 다루는 일만 했다.그런 그가 이제는 그림을 사고파는 전문가가 돼 ‘미술소비’ 문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김 사장은 “미술품도 하나의 상품”이라고 강조한다.그가 보기에 우리 미술시장엔 엄밀한 의미의 ‘시장’도 ‘가격’도 없다.같은 그림이 유통경로에 따라 천지차의 가격으로 거래되는 미술품의 이중가격 관행이야말로 우리 미술계의 뿌리깊은 병폐다.이것은 그동안 미술시장이 작가와 화랑에 의해 독점돼온 것과 무관치 않다.우리 미술시장의 또 다른 고질 가운데 하나는 호당가격제.예술작품을 크기에 따라 값을 매긴다는 것 자체가 이미 예술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피카소의 작품은 같은 크기라도 완성도에 따라 100배 이상의 가격 차이가 난다.김 사장은 그런 점에서도 미술품경매제는 보다 활성화돼야 한다고 말한다.“미술품 가격은 자유로운 경쟁과 시장원리에 따른 경매를 통해 끊임없이 검증되고 공개돼야 합니다.선진 외국에선 미술품 거래의 절반 이상이 경매 형식으로 이뤄지고 있어요.경매를 통해야 작품의 ‘기준가격’이 형성되지요.” 그에 따르면 92년 이후 한국 미술시장의 불황은 이같은 미술시장의 구조적 문제 때문이다.
금융과 미술의 만남.김 사장은 앞으로 자신의 장점을 살려 미술시장의 인프라를 갖춰 나가는 데 힘을 쏟을 작정이다.우리 제도금융권에선 미술품 담보대출을 시행하는 곳이 없다.보험회사에서도 미술품을 받아주지 않는다.“선진국에서는 많은 은행들이 개인고객관리 차원에서 미술품 투자 등을 위한 ‘아트 뱅킹’ 부서를 따로 두고 있어요.우리에게 무엇보다 우선적인 과제는 미술품 담보대출과 보험제도를 뿌리내리게 하는 것입니다.” 서울옥션에서 시행하고 있는 미술품 담보대출은 현재 대출잔액이 40억원선에 불과하지만 미술시장에 적잖은 활력소가 되고 있다.
미술사에 이름을 남긴 위대한 작가들 뒤엔 늘 위대한 화상들이 있었다.2차대전 후 뉴욕에서 활약한 레오 카스텔리는 그 대표적인 예다.로버트 라우셴버그·재스퍼 존스·프랭크 스텔라·로이 리히텐슈타인·앤디 워홀·제임스 로젠키스트·도널드 저드·리처드 세라 등 숱한 유명작가들을 무명 시절 발굴한 이가 바로 그다.카스텔리는 이미 이름이 알려진 작가와는 절대로 같이 일을 하지 않았다.우리 화랑들은 얼마나 장기적인 안목에서 투자를 하고 있을까.김 사장은 “화랑들이 젊은 작가들을 발굴하기보다는 당장 돈이 되는 유명작가들의 작품에 매달리고 있는 실정”이라며 “그러면서도 왜 사람들이 박수근이나 김환기 작품만 찾느냐고 불평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라고 말한다.
김 사장은 때로 “경매 때문에 화랑이 망한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하지만 그의 경매관은 확고하다.“경매는 소비자 주권을 가장 확실하게 구현하는 유통혁명입니다.화랑으로선 일시적으로 시장이 잠식되는 측면이 있지만 결국은 미술시장의 볼륨을 키우고 체질을 강화하는 길입니다.” 잘 나가던 엘리트 은행원에서 미술품 경매회사 CEO로 변신한 지 2년 6개월.그는 이제 아웃사이더의 순수한 열정뿐 아니라 전문가의 감식안으로 그림을 사고 판다.그런 만큼 그가 들려주는 작품구입 요령은 참고할 만하다.“주식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 가치주를 사놓고 때를 기다리듯이 미술품 투자도 가능성 있는 젊은 작가의 작품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이미 평가가 끝난 대가들,즉 ‘블루칩 작가들’의 작품은 환금성과 안정성은 있지만 진정한 컬렉션의 묘미는 주지 못해요.” 개인적으로 20년 넘게 그림을 수집해온 김 사장이 가장 좋아하는 소장품은 민중작가 오윤의 판화 ‘춤’.그가 이 작품을 아끼는 것은 자산 가치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림은 고달픈 하루가 끝난 뒤에 쉴 수 있는 편안한 안락의자 같아야 한다.”는 프랑스 화가 마티스의 말을 믿기 때문이다.
김종면기자 jmkim@
2003-10-01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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