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일이 힘겹고 뭔가 잘 풀리지 않을 때면 자주 생각나는 곳이 있다.내 젊음의 한때를 고스란히 묻어둔 육군 제 21사단 66연대.지금도 눈 감으면 아련히 떠오르는 마음의 고향이자 정신의 요람과 같은 곳이다.
지난 추석 무렵 그곳에 다녀왔다.나로서는 실로 33년만의 귀향인 셈이다.“언젠가는 꼭 한번 다녀와야지.” 하는 마음만 간절했을 뿐 좀체 실행을 못했는데,병무청장이 되어 다시 그곳을 찾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9월5일 아침 6시30분 대전을 출발,5시간여 동안 차를 달려 도착한 강원도 양구군 동면 사태리에 위치한 육군 제21사단 백두산부대.66연대 수색중대로 향하는 도로부터 격세지감을 느끼게 했다.
너무 험해서 한번 면회왔던 가족들이 두번 다시 찾아올 엄두도 못 냈던 그 길이 이제는 잘 닦여진 포장도로로 변해 있었다.
부대 시설도 많이 달라져 있었다.특히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들과 화상을 통해서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는 ‘영상면회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으며,내무반 역시 군기와 명령으로 일관된 경직된 분위기가아니라 자유롭고 발랄한 가운데 지킬 것은 지키는 성숙함이 느껴졌다.
최근 들어 군내 성추행,구타,자살 문제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그것은 일부의 문제일 뿐 대부분의 장병들은 건강했으며 그들의 사기는 충천해 있었다.
철책선을 둘러보자니 33년 전,낮에는 각개전투 등 고된 훈련을 받고 밤에는 철책선에서 뜬눈으로 경계근무를 서던 일,30도를 오르내리는 폭염 속에서 완전 군장을 하고 산악지대를 행군하며 극기훈련을 감내해야 했던 그 시절이 생각났다.
그 힘들고 혹독한 시련을 거치면서 수줍음 많고 나약했던 나는 강인한 투지와 인내력을 갖춘 또 하나의 나로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비록 고단하고 긴장된 생활이었지만,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 보니 거기에 내가 가야 할 길이 보였다.피해갈 수 없다면 차라리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인생역전의 기회로 삼아보자는 오기도 발동했다.이후 나는 내 인생을 새롭게 설계하고 실천해 나가기로 다짐했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남북을 가로지르는 철책선은 예전과 다름없고 인생의 황금기라고 하는 꽃다운 나이의 후배 장병들이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늠름한 모습으로 경계근무를 서고 있었다.
황금같은 젊은 시절을 희생하고 국민의 안전을 지키고 있는 이들의 노고에 보답하는 길은 병역의무를 억울한 희생이 아닌 ‘자랑스러운 의무이자 권리’로 받아들이고 긍지와 보람을 갖고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필코 병역의무를 투명하고 공정하게 수행하여야 하는 것,이것이 33년 전 나를 새롭게 태어나도록 만든 이곳에서 또 한 번의 인생역전을 준비하는 병무청장으로서의 다짐과 각오이다.
김두성 병무청장
지난 추석 무렵 그곳에 다녀왔다.나로서는 실로 33년만의 귀향인 셈이다.“언젠가는 꼭 한번 다녀와야지.” 하는 마음만 간절했을 뿐 좀체 실행을 못했는데,병무청장이 되어 다시 그곳을 찾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9월5일 아침 6시30분 대전을 출발,5시간여 동안 차를 달려 도착한 강원도 양구군 동면 사태리에 위치한 육군 제21사단 백두산부대.66연대 수색중대로 향하는 도로부터 격세지감을 느끼게 했다.
너무 험해서 한번 면회왔던 가족들이 두번 다시 찾아올 엄두도 못 냈던 그 길이 이제는 잘 닦여진 포장도로로 변해 있었다.
부대 시설도 많이 달라져 있었다.특히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들과 화상을 통해서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는 ‘영상면회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으며,내무반 역시 군기와 명령으로 일관된 경직된 분위기가아니라 자유롭고 발랄한 가운데 지킬 것은 지키는 성숙함이 느껴졌다.
최근 들어 군내 성추행,구타,자살 문제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그것은 일부의 문제일 뿐 대부분의 장병들은 건강했으며 그들의 사기는 충천해 있었다.
철책선을 둘러보자니 33년 전,낮에는 각개전투 등 고된 훈련을 받고 밤에는 철책선에서 뜬눈으로 경계근무를 서던 일,30도를 오르내리는 폭염 속에서 완전 군장을 하고 산악지대를 행군하며 극기훈련을 감내해야 했던 그 시절이 생각났다.
그 힘들고 혹독한 시련을 거치면서 수줍음 많고 나약했던 나는 강인한 투지와 인내력을 갖춘 또 하나의 나로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비록 고단하고 긴장된 생활이었지만,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 보니 거기에 내가 가야 할 길이 보였다.피해갈 수 없다면 차라리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인생역전의 기회로 삼아보자는 오기도 발동했다.이후 나는 내 인생을 새롭게 설계하고 실천해 나가기로 다짐했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남북을 가로지르는 철책선은 예전과 다름없고 인생의 황금기라고 하는 꽃다운 나이의 후배 장병들이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늠름한 모습으로 경계근무를 서고 있었다.
황금같은 젊은 시절을 희생하고 국민의 안전을 지키고 있는 이들의 노고에 보답하는 길은 병역의무를 억울한 희생이 아닌 ‘자랑스러운 의무이자 권리’로 받아들이고 긍지와 보람을 갖고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필코 병역의무를 투명하고 공정하게 수행하여야 하는 것,이것이 33년 전 나를 새롭게 태어나도록 만든 이곳에서 또 한 번의 인생역전을 준비하는 병무청장으로서의 다짐과 각오이다.
김두성 병무청장
2003-09-3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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