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 국악현대화 선구자 이성천 선생

부고/ 국악현대화 선구자 이성천 선생

입력 2003-09-27 00:00
수정 2003-09-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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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천(李成千) 전 국립국악원장이 26일 오전 6시 서울 여의도성모병원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67세.

고인은 국악의 현대화에 선구적 역할을 한 대표적인 1세대 창작음악 작곡가이다.1936년 함경북도 길주에서 태어나 가톨릭대 의학부에 다니다 음악인으로 삶의 행로를 바꿨다.서울대 국악과와 대학원을 다녔고,이후 창작 국악에 평생을 매달렸다.

고인은 200편이 넘는 작품을 남겼다.가야금 창작곡의 효시 ‘독주곡 제1번’(1962년)을 비롯하여 ‘놀이터’(1966년),‘청소년을 위한 관현악 입문’(1974년),‘나의 조국’(1981∼1985년),‘타령에 의한 전주곡’(1986),‘초혼’(1990년) 등이 대표작이다.그는 또 국악기의 연주능력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아 1987년에는 21현금을 고안하고,이를 위한 곡을 발표하여 가야금이 다채롭게 변신하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서울대 국악과 교수로 재직하며 국립국악원장과 한국국악교육학회장을 역임한 고인은 예술원 회원과 문화재위원회 무형문화재분과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었다.한국문화대상과 KBS국악대상작곡상,세종문화상을 수상하고 2001년에는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최영숙(崔榮淑)씨와 아들 정헌(正憲)씨와 딸 경애(景愛)씨 등 1남3녀가 있다.빈소는 서울 강남성모병원,발인은 29일 오전 9시.(02)590-2697.

2003-09-27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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