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羅漢)은 아라한(阿羅漢·Arhat)을 줄인 말이라고 한다.부처의 제자로 수행끝에 깨달음을 얻은 존재이다.중생의 고통을 덜어준다는 점에서는 보살과 다르지 않지만,신의 모습보다 인간의 모습에 훨씬 가깝다.
통일신라 말기부터 우리나라에 알려지기 시작한 나한은 고려와 조선에 걸쳐 중요한 불교 신앙의 하나로 자리잡았다.그림이나 조각으로 만들어진 나한은 나한전 혹은 응진전이라는 독립된 전각에 모셔져 예배의 대상이 됐다.
그럼에도 나한은 그동안 다른 불화나 불상에 비하여 주목받지 못했다.국립춘천박물관이 9일부터 여는 ‘구도의 깨달음의 성자,나한’특별전이 나한을 미술사적으로 다룬 최초의 종합적인 전시회라는 사실이 놀라울 지경이다.
춘천박물관 기획전시실은 마지막 손질을 하느라 어수선했다.그러나 깨달음의 경지를 보여주면서도 순박하고 친근한 150여점의 나한 그림과 조각은 망치소리며 드릴의 기계음이 신경쓰이지 않을 만큼 하나하나가 흥미로웠다.
나한이 주목받는 것은 2001년 영월 창녕사터에서 16세기 ‘오백나한상’이 나온 것이 계기가 됐다.높이 30㎝ 정도에 화강암으로 만든 나한상은 동글납작한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일품이다.춘천박물관은 지난해 개관하면서 이 나한상을 위하여 급작스럽게 전시실을 개조하기도 했다.이번에는 당시 수습한 290점 가운데 37점이 나왔다.이 앞에 서면 발걸음을 쉽게 다른 곳으로 옮기기 어렵다.
특별전은 나한 신앙의 역사로 시작한다.김제에서 출토된 백제시대 승려상과 석굴암의 십대제자상은 아직 나한 신앙이 체계화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그러나 ‘최사위 묘지명’(1075년)에 이르면 ‘나한전’을 언급하기 시작하고,이후 청자나한상이 만들어지는 등 본격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본 지은원(知恩院)에서 빌려온 고려시대 오백나한도는 안견의 ‘몽유도원도’(일본 천리대 소장)에 비견할 수 있는 특별전의 하이라이트.석가삼존좌상을 중심으로 가늘고 탄력있게 묘사한 오백나한이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다.고려시대 산수화 기법을 추정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이기도 하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오백나한도는 우리 문화재가 불행한 역사를 거치며 어떻게 제자리를 떠났는지를 보여준다.중앙박물관의 진보장존자 말고는 일본 도쿄국립박물관·미국 클리블랜드미술관 등에 흩어져 있는 것을 사진으로 볼 수밖에 없다.
조선시대로 넘어가면 우리 나한 신앙의 진면목이 드러난다.선암사 목조건칠나한상을 비롯한 일련의 ‘사람의 모습’을 한 나한상에서는 조선시대 민중불교의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콧물을 흘리면서 졸고 있는 석조나한좌상(동아대박물관 소장)은 나한이 갖고 있는 인간적 면모의 극치일 것이다.그런가 하면 분홍빛 테두리가 있는 부드러운 겉옷을 살포시 머리에 둘러감은 조선 후기 목조나한좌상은 성모마리아로 착각할 가능성도 없지 않을 것 같다.
특별전은 주목받지 못했던 나한을 한국인의 심성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상징적 존재이자,미술사를 풍요롭게 하는 뛰어난 예술품으로 새롭게 부각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자체 소장 유물이 거의 없는 지역박물관의 어려운 여건에서도 국립박물관의 역할에 걸맞은 전시회가 이루어진 것이 반갑다.(033)260-1524.
춘천 서동철기자 dcsuh@
통일신라 말기부터 우리나라에 알려지기 시작한 나한은 고려와 조선에 걸쳐 중요한 불교 신앙의 하나로 자리잡았다.그림이나 조각으로 만들어진 나한은 나한전 혹은 응진전이라는 독립된 전각에 모셔져 예배의 대상이 됐다.
그럼에도 나한은 그동안 다른 불화나 불상에 비하여 주목받지 못했다.국립춘천박물관이 9일부터 여는 ‘구도의 깨달음의 성자,나한’특별전이 나한을 미술사적으로 다룬 최초의 종합적인 전시회라는 사실이 놀라울 지경이다.
춘천박물관 기획전시실은 마지막 손질을 하느라 어수선했다.그러나 깨달음의 경지를 보여주면서도 순박하고 친근한 150여점의 나한 그림과 조각은 망치소리며 드릴의 기계음이 신경쓰이지 않을 만큼 하나하나가 흥미로웠다.
나한이 주목받는 것은 2001년 영월 창녕사터에서 16세기 ‘오백나한상’이 나온 것이 계기가 됐다.높이 30㎝ 정도에 화강암으로 만든 나한상은 동글납작한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일품이다.춘천박물관은 지난해 개관하면서 이 나한상을 위하여 급작스럽게 전시실을 개조하기도 했다.이번에는 당시 수습한 290점 가운데 37점이 나왔다.이 앞에 서면 발걸음을 쉽게 다른 곳으로 옮기기 어렵다.
특별전은 나한 신앙의 역사로 시작한다.김제에서 출토된 백제시대 승려상과 석굴암의 십대제자상은 아직 나한 신앙이 체계화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그러나 ‘최사위 묘지명’(1075년)에 이르면 ‘나한전’을 언급하기 시작하고,이후 청자나한상이 만들어지는 등 본격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본 지은원(知恩院)에서 빌려온 고려시대 오백나한도는 안견의 ‘몽유도원도’(일본 천리대 소장)에 비견할 수 있는 특별전의 하이라이트.석가삼존좌상을 중심으로 가늘고 탄력있게 묘사한 오백나한이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다.고려시대 산수화 기법을 추정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이기도 하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오백나한도는 우리 문화재가 불행한 역사를 거치며 어떻게 제자리를 떠났는지를 보여준다.중앙박물관의 진보장존자 말고는 일본 도쿄국립박물관·미국 클리블랜드미술관 등에 흩어져 있는 것을 사진으로 볼 수밖에 없다.
조선시대로 넘어가면 우리 나한 신앙의 진면목이 드러난다.선암사 목조건칠나한상을 비롯한 일련의 ‘사람의 모습’을 한 나한상에서는 조선시대 민중불교의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콧물을 흘리면서 졸고 있는 석조나한좌상(동아대박물관 소장)은 나한이 갖고 있는 인간적 면모의 극치일 것이다.그런가 하면 분홍빛 테두리가 있는 부드러운 겉옷을 살포시 머리에 둘러감은 조선 후기 목조나한좌상은 성모마리아로 착각할 가능성도 없지 않을 것 같다.
특별전은 주목받지 못했던 나한을 한국인의 심성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상징적 존재이자,미술사를 풍요롭게 하는 뛰어난 예술품으로 새롭게 부각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자체 소장 유물이 거의 없는 지역박물관의 어려운 여건에서도 국립박물관의 역할에 걸맞은 전시회가 이루어진 것이 반갑다.(033)260-1524.
춘천 서동철기자 dcsuh@
2003-09-08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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