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세계를 지배하는 이념은 경제주의다.시장과 돈의 논리로 모든 것을 잰다.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라고 한다.정부도,교육도 시장의 논리에 맡겨야 한다고까지 말한다.경제 타산이 맞고 효율성이 더 난다는 것이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경제만 잘 되면 만사가 형통한다고 믿는다.정권의 지지도가 경제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경제 형편이 나빠지면 당장 정권을 바꾸고자 한다.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기업인의 처벌 수위도 조절한다.경제 논리의 힘을 견제하고 통제할 장사란 없다.경제의 값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오늘의 의식 세계를 송두리째 삼켜버리고 있는 경제주의다.동서가 따로 없고 남북이 따로 없다.이 시대의 새로운 지배 이데올로기이다.
경제주의의 밑바탕에는 ‘경제 인간’이 있다.이른바 ‘호모 이코노미쿠스’이다.인간의 본성 자체가 이해타산에 따라 움직이는 경제 동물이라는 것이다.자기 이익을 좇아 행동하는 것은 타고난 본성이며 이익을 챙기기 위해 서로 다투며 경쟁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한다.
‘경제인간’은 매우 억세다.이익을 둘러싸고 한 줄로 선다.서로 먼저 가지려고 뜀박질한다.광란한 이리떼처럼 서로 발길질도 한다.경쟁에서 이기는 강자가 되어야 한다.자기 이익을 위해서는 사회에 반하는 행동도 서슴지 않고 공동체의 선도 짓밟는다.사회 약자는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르지 않으며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아래로 밀려난다.자연 생태계는 약탈의 대상이다.겸허와 절제는 따돌림받는 삶의 태도다.
경제주의에 도전하는 광야의 목소리가 있다.생태주의이다.기승을 부리며 오늘의 세계를 다스리고 있는 의식 세계와 삶의 방식이 과연 온당하며 유일한 것인가? 생태주의는 깊은 물음을 던진다.
산업화와 성장주의에 앞장서서 달음박질해온 우리의 삶은 삭막하다.기름기가 줄줄 흐르는 그 몸통 안에는 지친 영혼이 도사리고 있다.발전의 깃발을 치켜들고 어떤 의심도 없이 ‘잘 살아보자’며 목청 높이 구호를 내지르고 있는 동안 삶의 깊은 가치를 잃어버린 것이다.눈앞의 이익을 위하여 우리가 함께 오르던 산을 허물고 함께 발을 담그던 냇물을 막아버렸다.노을지던 바다를 잘라내 없애고 조개 잡던 갯벌을 뭉개버리기도 하였다.이웃한 사람과 함께 어울려 사는 재미와 아름다움이 경제의 이해 타산 앞에 온데간데없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무엇을 잃어버렸는가? 이웃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어울려 서로 도우며 사는 ‘보살핌의 뜻’을 잃어버리고,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삶의 멋스러움’도 잃어버렸다.물질의 부만 획득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어온 경제주의의 독선에 갇혀 그 너머 삶의 넓은 지평을 볼 수 없게 된 것이다.남을 제치고 나만이라도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탐욕에 사로잡혀 모두가 질긴 이기주의자로 변질했다.
삶의 터전이란 각각 떨어져 서로 싸우는 경쟁의 전쟁터가 아니다.그 터는 모든 것이 뗄 수 없게 서로 연결되어 있는 공동체이다.생태주의는 ‘생태 인간’을 전제한다.강자와 약자가 한데 어울리고 누구도 탈락시키지 않고 서로 돌보는 기쁨을 함께 나눈다.사회 약자를 공동체가 함께 돌보고 보살피는 삶의 참 맛,인간 본성의 깊은 차원을 귀히 여긴다.
생태주의는내동댕이친 공동체의 미덕을 되살리고자 한다.
박 영 신 연세대 명예교수 녹색연합 상임대표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경제만 잘 되면 만사가 형통한다고 믿는다.정권의 지지도가 경제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경제 형편이 나빠지면 당장 정권을 바꾸고자 한다.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기업인의 처벌 수위도 조절한다.경제 논리의 힘을 견제하고 통제할 장사란 없다.경제의 값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오늘의 의식 세계를 송두리째 삼켜버리고 있는 경제주의다.동서가 따로 없고 남북이 따로 없다.이 시대의 새로운 지배 이데올로기이다.
경제주의의 밑바탕에는 ‘경제 인간’이 있다.이른바 ‘호모 이코노미쿠스’이다.인간의 본성 자체가 이해타산에 따라 움직이는 경제 동물이라는 것이다.자기 이익을 좇아 행동하는 것은 타고난 본성이며 이익을 챙기기 위해 서로 다투며 경쟁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한다.
‘경제인간’은 매우 억세다.이익을 둘러싸고 한 줄로 선다.서로 먼저 가지려고 뜀박질한다.광란한 이리떼처럼 서로 발길질도 한다.경쟁에서 이기는 강자가 되어야 한다.자기 이익을 위해서는 사회에 반하는 행동도 서슴지 않고 공동체의 선도 짓밟는다.사회 약자는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르지 않으며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아래로 밀려난다.자연 생태계는 약탈의 대상이다.겸허와 절제는 따돌림받는 삶의 태도다.
경제주의에 도전하는 광야의 목소리가 있다.생태주의이다.기승을 부리며 오늘의 세계를 다스리고 있는 의식 세계와 삶의 방식이 과연 온당하며 유일한 것인가? 생태주의는 깊은 물음을 던진다.
산업화와 성장주의에 앞장서서 달음박질해온 우리의 삶은 삭막하다.기름기가 줄줄 흐르는 그 몸통 안에는 지친 영혼이 도사리고 있다.발전의 깃발을 치켜들고 어떤 의심도 없이 ‘잘 살아보자’며 목청 높이 구호를 내지르고 있는 동안 삶의 깊은 가치를 잃어버린 것이다.눈앞의 이익을 위하여 우리가 함께 오르던 산을 허물고 함께 발을 담그던 냇물을 막아버렸다.노을지던 바다를 잘라내 없애고 조개 잡던 갯벌을 뭉개버리기도 하였다.이웃한 사람과 함께 어울려 사는 재미와 아름다움이 경제의 이해 타산 앞에 온데간데없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무엇을 잃어버렸는가? 이웃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어울려 서로 도우며 사는 ‘보살핌의 뜻’을 잃어버리고,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삶의 멋스러움’도 잃어버렸다.물질의 부만 획득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어온 경제주의의 독선에 갇혀 그 너머 삶의 넓은 지평을 볼 수 없게 된 것이다.남을 제치고 나만이라도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탐욕에 사로잡혀 모두가 질긴 이기주의자로 변질했다.
삶의 터전이란 각각 떨어져 서로 싸우는 경쟁의 전쟁터가 아니다.그 터는 모든 것이 뗄 수 없게 서로 연결되어 있는 공동체이다.생태주의는 ‘생태 인간’을 전제한다.강자와 약자가 한데 어울리고 누구도 탈락시키지 않고 서로 돌보는 기쁨을 함께 나눈다.사회 약자를 공동체가 함께 돌보고 보살피는 삶의 참 맛,인간 본성의 깊은 차원을 귀히 여긴다.
생태주의는내동댕이친 공동체의 미덕을 되살리고자 한다.
박 영 신 연세대 명예교수 녹색연합 상임대표
2003-07-21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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