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개’ 남의 이름으로 10년

‘번개’ 남의 이름으로 10년

입력 2003-07-21 00:00
수정 2003-07-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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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개 배달원 조태훈 강사’로 전국 각지를 돌며 성공담을 강의해온 중국집 배달원 출신 ‘번개’가 10년간 남의 이름으로 이중생활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번개’는 지난 18일 오후에도 기업연수생들을 대상으로 강의하기 위해 경기도 안성시청을 찾았다가 공문서 변조 등 혐의로 경찰에 붙잡히면서 정체가 밝혀졌다.

‘조태훈’으로 알려진 번개의 본명은 김모(38·서울시 강서구 화곡동)씨.번개는 지난 94년 4월 중국집 계산대에서 훔친 동료 배달원 조태훈(37·광주 서구 상무동)씨의 주민등록증에 자기 사진을 붙이면서 엉겁결에 조씨로 행세하게 됐다.예비군훈련 불참으로 기소중지자가 되고 잦은 이사로 전입신고마저 하지 못하면서 주민등록증이 말소됐기 때문.

‘번개’의 성공담은 널리 알려진 대로다.광주에서 태어난 그는 할머니 손에서 자라다 중학교 1학년 때 중퇴하고 지난 86년 무작정 상경했다.검정고시 출신 중졸학력이 전부인 번개는 지난 97년 서울 안암동 고려대 앞 중국 음식점 S반점에서 배달원으로 일하면서 뜨기 시작했다.“주문 전화를 끊는 순간 오토바이 소리가 들린다.”는 신속함과 남학생에겐 소주를,여학생에겐 스타킹을 선물하는 등 톡톡튀는 아이디어로 매스컴에 이름을 올리면서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밑바닥 인생에서 일약 ‘명강사’로 이름을 날리면서 이후 ‘번개 배달원 조태훈 강사’의 질주는 거침이 없었다.

방송사들이 앞다퉈 그를 초빙했고 IMF체제에서 ‘21세기 신지식인’으로 선정됐다.초청강연 횟수만 2000차례를 넘었다.강연료도 한달에 1000만원을 웃돌았다.‘번개반점’ 체인망을 거느린 사장이자 ‘번개외식경영컨설팅연구소장’이라는 길다란 직함까지 얻게 된다.

하지만 조태훈이 된 번개는 이후 친구들을 만나지 못할 정도로 불안한 생활이 이어진다.자신의 처지를 너무나 잘 아는 친구를 속일 수는 없었다.자동차운전면허도 따지 못했다.

아무리 멀어도 기차나 버스로 이동했다.멀찌감치 경찰 복장만 보여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아무리 바빠도 무단횡단만은 하지 않았다.더욱이 초등학교 갈 때가 된 큰아들(7)은 물론 둘째(2)도 혼인신고조차 못한 부인의 호적에 올렸다.

지난 98년 을지로에 ‘번개’라는 중국집을 냈다가 쫄딱 망하지만 않았어도 어쩌면 번개의 명성은 이어졌을지 모른다.

큰 손해를 보고 중국집 문을 닫고 지금도 빚을 갚고 있다.

문제는 진짜 조태훈씨에게 엄청난 소득세와 의료보험료 미납 독촉장이 수년째 날아들었고 소명자료 제출에 지쳐 견디다 못한 조씨가 경찰에 신고하면서 번개는 덜미가 잡혔다.

김씨는 경찰에서 “떳떳한 아빠로 살아가게 돼 오히려 시원하고 홀가분하다.”고 털어놨다.광주 서부경찰서는 20일 김씨에 대해 공문서 위·변조와 조세포탈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그러나 검찰은 고의성이 없고 그동안의 사회적 봉사활동을 고려해 불구속 수사토록 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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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남기창기자 kcnam@
2003-07-21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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