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잔인한 달 6월이여

기고 / 잔인한 달 6월이여

김윤호 기자 기자
입력 2003-06-19 00:00
수정 2003-06-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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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시인 T S 엘리어트는 시 ‘황무지’에서 메마른 땅을 뚫고 솟아나오는 여린 새싹들을 보고 생명의 역동성에 경탄한 나머지,역설적으로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노래했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우리나라에서도 채 피어나지 못한 청년학도들이 독재에 항거하다가 쓰러져간 4·19학생혁명이 있었으니,4월은 잔인한 달임에 틀림없다.들풀 같은 민중이 군사독재의 폭압에 맞서 싸운 5·18광주민중항쟁을 생각하면 5월 역시 잔인한 달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우리 역사에서 ‘가장 잔인한 달은 6월’이라고 주장하고 싶다.전 국토가 초토화한 민족상잔의 6·25 하나만으로도 가장 잔인한 달이 되기에 충분하다.또 최루탄과 페퍼포그,돌멩이와 화염병이 거리에서 캠퍼스에서 난무한 6월시민항쟁이 일어났던 달이기도 하다.

작년 6월에는 월드컵 축구로 온 나라가 들끓는 중에,여중생 신효순·심미선양이 미군 장갑차에 의해 희생된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다.

월드컵 4강 신화의 키워드는 꿈과 감동이었다.서로가 서로에게 꿈과 감동이 되고,그것이 거대한 파도가 되어 전 국민과 해외교포들의 마음까지 동시에 휩쓸면서 모두를 하나로 만들었다.6월은 그 감동의 드라마를 연출했던,월드컵 개최 1주년을 맞는 달이다.

며칠 전에는 신효순·심미선양 사망 1주기를 맞아 서울시청 앞 등 전국 곳곳에서 그들을 추모하는 촛불행진이 벌어지기도 했다.그만큼 6월은 겹치는 희비와 다양한 사건들로 뜨겁게 달궈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정치·경제·사회 모든 분야에서 잠재되어 있던 갈등이 표출되면서 나라 안이 온통 들끓고 있다.민주당은 신주류와 구주류의 신당을 둘러싼 기싸움으로,거대야당 한나라당은 새로운 당대표 선출과정에서의 당권 경쟁으로 뜨겁다.IMF 때보다 더 어렵다는 말까지 나오는 경제상황과,파업으로 치닫는 노사 문제 역시 뜨거운 현안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에 대해 너무 걱정하고 자포자기만 할 것은 아니다.우리는 어떠한 고난도 너끈히 이겨낼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부지런하면서도 뜨거운 민족성,쉽게 무너지지 않는 끈기,그리고 다이내믹한 신바람의 무서운 저력을 가진 민족이다.이념과 지역,연령과 성별을 뛰어넘어 월드컵 4강 신화를 쟁취한 우리가 아닌가.그렇기 때문에 곳곳에서 돌출하는 이런 불협화음들을 아우르면서 우리의 염원인 자주평화 통일을 성취해 낼 능력과 지혜를 갖고 있다고 확신한다.

한적한 시골 산길에서 미군 장갑차에 치여 안타깝게 희생된 두 여중생은 우리의 잠든 의식을 일깨운 아름다운 들꽃이 되었다.반전 평화,민족자주의 수천만 개의 촛불로 찬란하게 부활했다.그만큼 우리는 슬픔까지도 에너지로 승화시킬 수 있는 성숙한 의식을 지닌 민족이다.슬픔과 분노를 적절히 조절하고 함께 살 수 있는 길과 마당을 만들어낼 수 있는 놀라운 힘을 길러왔다.

다양한 의견의 스펙트럼과 첨예한 계층적 이익의 대립을 중화시키고 조절할 수 있는 성숙한 의식을 키워왔다.

위기와 국난의 고비마다 어김없이 일어나 나라와 공동체를 앞으로 밀어 나아가게 한 위대한 우리 민중의 저력을 믿자.약한 듯 하지만 강하고,보이지 않는 듯 하지만 생생히 나타나는 지혜로운 우리 국민의 힘을 믿자.

1년 전 우리는 국민의 하나된무서운 모습과 힘,붉은악마의 힘을 보지 않았던가.열정과 꿈과 감동의 붉은악마 정신으로 오늘의 이 고난과 갈등을 이겨내자.상생과 화합과 감동의 새로운 세계를 활짝 열어젖히는 계기로 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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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호 백두산문인협회 회장 명예논설위원
2003-06-19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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