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공산당 허용 발언과 헌법논쟁

기고 / 공산당 허용 발언과 헌법논쟁

이경주 기자 기자
입력 2003-06-16 00:00
수정 2003-06-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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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때 아닌 헌법논쟁이 불붙었다.가속도가 붙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까지 언급되는 상황에 이르렀다.탄핵 대상으로 논의되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은 지난 9일 일본 정계 지도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일 공산당 시이 가즈오 위원장에게 “나는 한국에서도 공산당 활동이 허용될 때라야 비로소 완전한 민주주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한 말이다.

한나라당은 이를 국체와 국기문란으로 보고 탄핵소추 검토라는 초강경카드로 으름장을 놓고 있다.일부 언론은 대통령의 경솔함을 조소하며 헌법수호 의무가 있는 대통령의 직무유기로 몰아치고 있다.

이들의 헌법 짝사랑에 대한 출발점은 우리 헌법에서 명기하고 있는 ‘민주적 기본질서’이다.이들의 논리는 정도의 차가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 헌법의 근본이념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이고,그 핵심은 사유재산과 시장경제이다.공산당은 이를 부정하는 대표선수이고 일본 공산당도 공산당의 명칭을 쓰고 있는 이상 똑같은 집단이다.’라는 것으로 축약된다.

하기야 우리 헌법재판소도폭력적 지배를 배제하는 것,사유재산제와 시장경제질서를 지키는 것이 민주적 기본질서의 핵심 내용이라고 한 바 있다.민주적 기본질서의 해석에 관한 한 그 원조격인 독일의 경우 사유 재산제와 시장경제질서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핵심이라고 하는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다.오히려 폭력적 지배의 배제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핵심이다.폭력적 지배가 나치시대와 같은 인권유린시대를 초래하여 인권보장이라는 근대헌법의 근본이념을 송두리째 흔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 헌법을 들먹이면서 과거와 같은 색깔논쟁을 재탕하고 있는 으름장파의 헌법짝사랑에도 불구하고 우리 헌법의 근본이념은 사상의 자유를 비롯한 국민의 인권보장에 있다.인권보장을 위하여 여러 가지 원리 중의 하나로서 민주적 기본질서가 존재한다고 할 것이다.

이왕 말이 나왔으니 일본 공산당의 실체를 보자.폭력적 지배와 자의적 지배를 목적으로 하는 정당일까.이미 전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듯이 일본 공산당은 1973년에 강령에서 세간의 폭력적 지배와 동일시되고 있는 ‘프로레타리아 독재’라는 말을 ‘프로레타리아 집권’이라는 말로 대체했다가 1976년에는 아예 빼버렸다.규약 제2조에서는 노동자계급의 정당임과 동시에 국민정당임을 내거는 대대적인 변신을 감행한 바 있다.

또한 1996년에는 ‘자유와 민주주의 선언’을 통하여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근대부르주아 헌법의 이념을 노동자와 일본 국민의 관점에서 계승발전하여 새로운 이념정당으로 거듭날 것을 다짐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일본공산당의 관료화,특정세력에 의한 당권의 장기집권도 문제이며,본인들의 고군분투에도 불구하고 집권과는 상관없는 ‘맛보기 불임정당’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다.하지만,지방의회에서는 집권 자민당보다 오히려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정부보조금 없이 자립적으로 운영하는 정당이라는 측면에 한정해서는 정치자금 논의가 한창인 우리나라로서도 오히려 한번쯤 연구해 볼 만도 한 대상이다.일본 공산당은 사회민주주의 정당보다도 더 북한의 정권과 인권문제에 대하여 비판적이다.나아가 우리 모두가 분개하고 있는 일본의유사법제에 대하여 일관되게 반대하여 왔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일부 정치권이 헌법의 근본이념을 둘러대면서 일왕의 유일체제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어 왔던 ‘국체’ ‘국기’라는 용어로 과거의 색깔논쟁을 포장,재현하는 것이야말로 헌법상의 ‘민주적 기본질서’에 반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사회가 경제적 열세에도 일본에 비해 행복해질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남북 분단과 압축된 근대화의 우여곡절에도 굴하지 않고 헌법의 근본이념인 인권보장과 이를 위한 평화,그리고 ‘완전한 민주주의’로 역동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기 때문이다.우리 사회가 한국 전쟁이 가져다 준 상처와 그에 따른 ‘레드 콤플렉스’에서 자유롭지 못한 게 현실이라고는 하지만,이처럼 본말이 전도된 헌법논쟁으로 국민을 오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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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주 인하대 교수 헌법학 명예논설위원
2003-06-16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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