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의 아버지가 남로당 간부를 역임했던 좌익이었다.’는 네티즌의 글이 인터넷에 올라 언론사 게시판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문제의 글은 S일보의 C기자가 1993년 9월7일자로 내보낸 기사인데,당시 소설가로 문단의 주목을 받던 이 장관의 삶과 작품세계를 조명하고 있다.
기사에는 “대구에서 태어난 이씨는 대구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한 번도 공납금을 제때에 내 본 적이 없다.
어머니가 삯바느질해서 만든 돈으로 겨우 다음번 납기가 돼서야 턱걸이를 했다.
부친은 깨어있는 날보다 술에 취한 날이 더 많았고 모친까지 괴롭히기 일쑤였다.
그는 해방공간에서 남로당 간부를 역임했던 좌익이었다.체제를 부정하다 보니 자기 파괴적으로 흘렀고 생활력도 없었다.”고 적혀 있다.
기사는 또 이창동 장관이 “아버지는 그런 사실을 숨기는 분이 아닙니다.이승만 시절에는 이승만욕,박정희 시절에는 박정희 욕….어릴 때는 그런 아버지가 부끄럽고 이해가 안 갔습니다.철이 들면서 왜 그분이 좌절해야만 했는지 그 꿈과 이상에 대해 이해를하게 됐지만,아무리 공동선을 추구하는 인간이라 할지라도 인간이기 때문에 갖는 복합성과 한계를 느끼게 된 거지요.”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종수기자 vielee@
문제의 글은 S일보의 C기자가 1993년 9월7일자로 내보낸 기사인데,당시 소설가로 문단의 주목을 받던 이 장관의 삶과 작품세계를 조명하고 있다.
기사에는 “대구에서 태어난 이씨는 대구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한 번도 공납금을 제때에 내 본 적이 없다.
어머니가 삯바느질해서 만든 돈으로 겨우 다음번 납기가 돼서야 턱걸이를 했다.
부친은 깨어있는 날보다 술에 취한 날이 더 많았고 모친까지 괴롭히기 일쑤였다.
그는 해방공간에서 남로당 간부를 역임했던 좌익이었다.체제를 부정하다 보니 자기 파괴적으로 흘렀고 생활력도 없었다.”고 적혀 있다.
기사는 또 이창동 장관이 “아버지는 그런 사실을 숨기는 분이 아닙니다.이승만 시절에는 이승만욕,박정희 시절에는 박정희 욕….어릴 때는 그런 아버지가 부끄럽고 이해가 안 갔습니다.철이 들면서 왜 그분이 좌절해야만 했는지 그 꿈과 이상에 대해 이해를하게 됐지만,아무리 공동선을 추구하는 인간이라 할지라도 인간이기 때문에 갖는 복합성과 한계를 느끼게 된 거지요.”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종수기자 vielee@
2003-03-07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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