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미숙함이 부른 죽음들

[시론] 미숙함이 부른 죽음들

김정란 기자 기자
입력 2003-02-21 00:00
수정 2003-02-21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죽음은 도둑처럼 들이닥친다.현대인은 죽음 앞에서 무방비상태이다.사방을 떠다니는 화려한 이미지들은 종교의 차원으로 격상된 자본과 욕망의 절대권력을 표상하는 현대의 아이콘들이다.그 아이콘들은 마치,이제 더이상 죽음은 없다고,자본과 욕망의 종교의 신도로 남아있는 한,당신들은 영원히 젊고 영원히 행복할 것이라고 속삭이는 것처럼 느껴진다.사방에는 신처럼 젊고 아름다운 아이콘들이 즐비하다.

문득 돌아보면,생은 한 겹뿐인 거짓 위안으로 가득 차 있다.그리고 그 화려한 이미지들의 가면을 뚫고 무시무시한 죽음이 어느 순간 불쑥 얼굴을 들이민다.죽음은 가차없다.그것은 설명하지도 설득하지도 않는다.그것은 도둑처럼 들이닥쳐 우리의 머리끄덩이를 잡아채어 잔인하게 패대기친다.온갖 상품으로 감싸놓은 우리의 육체는 단 한순간에 잔인하게 으깨어진다.

한 정신나간 사람의 방화로 인해 수백명의 시민들이 목숨을 잃었다.이 어이없는 사건에 대해 대체 무엇이라고 말해야 하나? 어떤 병든 광기가 자신의 박탈감과 증오를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 위에 집어던졌을까? 이렇게 느닷없이 엄청난 규모로 번져나간 어이없는 사건을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사건의 시발은 현대사회 안에서 채워지지 않은 형태로 떠돌아다니는 억압된 심리가 내장하고 있는 음산한 에너지이다.그것은 음울하게 숨어있다가 어느 순간 겉으로 터져나온다.그러나 한 미성숙한 개인의 잘못을 사회적 구조 탓만으로 돌릴 수는 없다.어떤 상황에서도 그런 일은 일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이 사건은 정말이지 근대의 형성과정에서 이미 제어당한 것으로 여겨졌던 죽음이 어떤 개인의 손을 빌려 복수를 감행한 것이라고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그러나 사건 초동 단계에서 재난에 대처하는 지하철 공사 당국의 서투름이 희생의 규모를 턱없이 늘려 놓았다는 점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정작 방화가 저질러진 칸보다도,방화 사실에 대해 아무 정보도 듣지 못한 채 역구내로 진입했던 다른 열차에서 더 큰 희생이 일어났다는 사실,게다가 사고 당시에 열차 문이 열리지 않아 승객들이 꼼짝없이 당했다는 사실 앞에서는 뭐라고얘기해야 할지 기가 턱 막힌다.철없는 어린아이의 불장난에 그만큼 철없는 어린아이가 허둥대면서 일만 더 키워놓은 꼴이라는 생각이 든다.자신의 개인적 한을 무차별적인 복수로 풀어내려고 하는 미숙한 개인과 그것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미숙한 공무원들.미숙함의 자가증식.평소에 얼만큼 보신주의에 찌들어 있었으면,이러한 비상한 사태에서 상황 판단 능력이 이토록 형편이 없었다는 말인가.

죽음은 들이닥친다.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그러나 인간이 사회와 국가를 만들고,세금을 걷어 국가의 행정부처에 보내는 것은,인간에게 닥치는 터무니없는 죽음의 확률을 가능한 한 줄이기 위해서이다.그런데 우리 사회는 도대체 마냥 겉모양만 번지르르하게 갖추어놓았을 뿐,모든 것이 달랑 홑겹이다.언제 어디에서 어떤 사건이 터질지 모르는 잠재적 사고뭉치이다.그토록 많은 사고를 겪고도 잠시 시간이 지나가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탱자탱자’ 흔들거린다.사방에 팽배한 나몰라라주의.

그것은 우리 사회 특유의 빠른 망각증상이라는 바이러스를 통해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간다.역사로부터 이토록 배우지 못하는 사회도 드물 것 같다.제발,이제는 한번의 소동으로 끝나지 말자.사건의 경위를 철저하게 파헤쳐서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벌어지는 사건 앞에서 능동적으로 대처하도록 하자.



유명을 달리한 희생자들과 그 희생자들의 가족에게 한없는 위로의 마음을 보낸다.이렇게 말하는 것조차 민망스러울 정도로 이번 사건의 어처구니없음은 충격적이다.유가족의 가슴속에는 깊고 큰 구멍이 파여있을 것이다.당국은 있는 힘을 다해 그 구멍을 메우도록 노력해주기 바란다.그리고 국민 전체가 이 사건의 수습에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한다.죽음을 이기는 것은 사랑뿐이다.
2003-02-21 6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불장인 국내증시에서 여러분의 투자성적은 어떤가요?
코스피가 사상 최고치를 거듭 경신하며 5000선에 바짝 다가섰다. 연초 이후 상승률은 15% 안팎으로, 글로벌 주요 증시 가운데 가장 가파르다. 하지만 개인투자자 수익률은 외국인의 절반에 그치고 있다. 여러분의 수익률은 어떤가요?
1. 수익을 봤다.
2. 손해를 봤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