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연역법적 화법’ 독특

盧 ‘연역법적 화법’ 독특

입력 2003-02-17 00:00
수정 2003-0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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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인천에서 열린 ‘동북아 경제 중심국가 건설을 위한 국정토론회’에 참석한 인천·경기지역 대표들은 노무현 당선자의 독특한 화법에 적잖이 당황하는 표정이었다.

지역 대표들은 이날 “경기도를 전폭 지원해달라.”는 등의 ‘예상된’ 민원들을 쏟아냈다.그러나 노 당선자는 즉답을 미루고 “동북아 중심국가는 경제적 측면 이상의 개념이 있을 수 있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느닷없이 “지난 수백년간 중국에서 정변이 일어나면 우리나라도 정변이 따랐는데,이런 변방의 역사를 극복해야 한다.”고 장황한 설명을 펼쳤다.이어 “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남북관계도 개선시켜야 동북아시대를 말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결론적으로 ‘돈벌이만 생각하지 말고 역사적 소명의식을 가져달라.’는 취지였다.각종 민원에 대해 ‘예’나 ‘아니오’ 같은 답변만 잔뜩 기다렸던 참석자들로서는,반박할 겨를도 없이 일격을 당한 셈이다.

최근 민감한 사안들을 받아넘기는 노 당선자의 ‘연역법(演繹法)적’ 화법이 화제다.‘귀납법(歸納法)’이 ‘특수한 사실을 전제로 일반적 원리로서의 결론을 내리는 방법’인데 반해,연역법은 ‘일반적 원리를 근거로 구체적 문제에 대한 결론을 끌어내는 논법’이다.초기에는 ‘큰 원리’를 제시하고 끝에 각론이 나오는 셈이다.보통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추상적 원칙보다 각론이므로 끝까지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는 화법이다.

이런 화법은 11일 전주 토론회에서 명확히 드러난다.역시 각종 민원성 질의를 들은 뒤 노 당선자는 “세상은 변해간다.”라는 말로 입을 열었다.그는 “농경사회가 산업사회로 변해갈 때 그것을 거역하는 어떠한 시도도 성공하지 못했다.개방이라는 대세도 마찬가지다.”고 역설한 뒤 “우리 경제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대가를 지불하면서까지 농업을 유지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노 당선자는 ‘세상은 변한다.’→‘개방은 거스를 수 없다.’→‘농업개방은 불가피하다.’는 논리로 민감한 문제를 돌파한 셈이다.현장에 있던 기자들은 “만일 노 당선자가 직접적으로 ‘농업개방은 불가피하니 감수하라.’고 했다면 농민들에게 반감을 심어줬을 텐데,절묘한 화법으로 할 말을 다한 셈”이라고 평가했다.

노 당선자의 화법은 그의 변호사 경력에서 체득한 것이란 분석이 있다.변호사는 미리 결론을 내려놓고 법정을 설득해야 하는 만큼 치밀한 논리전개가 필수적이다.노 당선자는 변호사시절 승소율이 아주 높았다.

이와 함께 오랜 세월 가까이 지낸 ‘386’ 운동권 출신들로부터 토론 습성을 습득했다는 해석도 있다.실제 그의 발언중에는 ‘전선’(戰線)이나 ‘계급’(階級) 등 운동권 학생들이 자주 쓰는 용어가 간간이 등장한다.

그러나 노 당선자만의 독특한 성격에서 나온 화법이란 지적도 많다.한 측근은 “청중을 최대한 이해시키려는 욕심이자,애정의 발로”라고 말했다.반면 인수위의 다른 관계자는 “노 당선자는 ‘논리’에 대한 자신감이 남달리 강한 것 같다.”면서 “그러나 특수한 증거를 전제로 하는 귀납법이 절대적이지 않은 데 반해,연역법적 화법은 일반적 원리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융통성이 없는 측면도 있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김상연기자 carlos@
2003-02-17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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