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분노 사랑 죽음…. 그 안에 숨어있는 수만가지 표정을 오로지 몸짓만으로 표현하는 광대들. 광대극의 전통을 이으며 실험적이고 환상적인 무대로 전유럽을 열광시킨 러시아의 비언어 신체극 두 편이 잇따라 LG아트센터를 찾는다. 러시아 아방가르드 연극의 선두주자 안톤 아다진스키가 이끄는 데레보의 ‘신곡'과, 세기의 광대 슬라바 폴루닌의 ‘스노우쇼'. 전자가 그로테스크하게 죽음을 형상화했다면, 후자는 눈이 부실 만큼 아름답게 원색의 꿈을 펼쳐보이고 있다.
빨간 코에 진한 화장을 한 채 커다랗게 부풀린 샛노란 옷 속에서 엉거주춤 걷는 광대.그가 바로 막스 밀러,찰리 채플린,마르셀 마루소의 뒤를 잇는 21세기의 광대 슬라바 폴루닌이다.그의 대표작의 주요 장면을 모아 만든 ‘스노우쇼’는 93년 ‘옐로’란 이름으로 초연된 작품으로 국내 무대는 2001년에 이어 두번째.
작품은 일정한 줄거리가 없다.마치 그림동화책의 장면 장면들이 튀어나온 듯한 환상적인 세계가 에피소드로 연결된다.힘겹게 끌고 나온 침대는 어느새 보트로 변해 항해하고,무대는 한순간 까만 밤하늘이 되어 달님이 은빛가루를 뿌리며,광대의 빗자루에 걸린 거미줄은 서서히 관객석을 뒤덮는다.
하지만 가슴 벅차는 환희와 웃음만 전달하는 공연은 아니다.그 웃음에는 슬픔이 아스라이 새겨져 있다.공연의 절정은 무대에서 관객석으로 몰아치는 눈보라.사랑하는 이와 이별하며 흘리는 폴루닌의 눈물이 눈송이로 변하고 어느덧 거대한 폭설이 되어 소복이 쌓인다.슬픔마저 익살로 표현해야 했던 광대의 눈물이 세상에 희망으로 내리는 순간을 표현한 것.폴루닌은 79년 극단 리체데이를 창단,연극적 구성과 마임을 가미한 새로운 장르의 광대극을 개척했다.당시 러시아는 개방의 물결과 함께 실험적인 극단의 설립이 봇물을 이루던 때.하지만 리얼리즘 연극의 전통이 강하던 러시아에서 이들은 환영받지 못했다.
폴루닌을 주목한 건 유럽쪽.88년 영국 런던에서 첫 공연을 가진 뒤 90년대 후반까지 바르셀로나 골든노즈상,에든버러 페스티벌 비평가상,로렌스 올리비에상 등을 휩쓸었다.현재도 영국에서 활동하며,러시아의 국제행사 때마다 단골손님으로 불려간다.2001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세계 연극 올림피아드’에서 ‘거리축제’의 총예술감독을 맡았다.새달 12∼23일 평일 오후8시,토 오후 3시·7시,일 오후 2시·6시(월 쉼).2만∼6만원.
폴루닌이 전세계적으로 이미 유명세를 확보했다면,‘신곡’의 안톤 아다진스키는 최근에야 주목받기 시작한 신예.폴루닌의 제자로,리체데이에서 활동하기도 한 그는 곧 연극적 취향이 다름을 깨닫고 88년 자신의 극단 데레보를 만들어 독립했다.
새달 5∼9일 무대에 오를 ‘신곡’은 지난해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소개된 신작.당시 프린지 퍼스트상,헤럴드 에인절상,토털 시어터 상을 휩쓸었다.중앙의 회전식 원형무대가 큰 특징으로,LG아트센터 역시 객석의 390석만 남기고 원형무대를 설치했다.원형무대는 시작과 끝,안과 밖의 경계가 없는 세계를 상징한다.
줄거리도,특정 등장인물도 없다.배우들은 날고 춤추고 뛰고 비틀며 사랑·고통·희망·공포 같은 개념을 다양한 육체언어로 보여줄 뿐.하지만 그 어떤 언어보다 때로는 강렬하고 그로테스크하게,때로는 섬세하고 부드럽게 영적인 감성을 자극한다.산양의 뿔과 턱수염을 가진 나체의 남자가 남근에 큰 종을 단 채 나오고,무대 위로 불길이 타오르며,악마가 익살을 떨며 대장간에서 뭔가를 만들기도 한다.‘스노우쇼’가 모든 연령층이 좋아할 만한 동화 같은 연극이라면,‘신곡’은 보다 지적인 성인 관객을 위한 작품.
연극평론가 이진아씨는 “기괴함,가면,악마성,죽음과 생성 등 르네상스적인 모티브로 추상적 개념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것이 ‘신곡’의 특징”이라면서 “최근 2∼3년간 에든버러 페스티벌의 스타로 떠오른 데레보는 이제 막 정상급으로 올라섰다.”고 평가했다.아울러 “폴루닌,데레보 모두 러시아보다는 유럽에서 각광을 받고 러시아로 역수입된 경우”라고 덧붙였다.5∼7일 오후 8시,8·9일 오후 4시.4만 5000원.(02)2005-0114.
김소연기자 purple@
빨간 코에 진한 화장을 한 채 커다랗게 부풀린 샛노란 옷 속에서 엉거주춤 걷는 광대.그가 바로 막스 밀러,찰리 채플린,마르셀 마루소의 뒤를 잇는 21세기의 광대 슬라바 폴루닌이다.그의 대표작의 주요 장면을 모아 만든 ‘스노우쇼’는 93년 ‘옐로’란 이름으로 초연된 작품으로 국내 무대는 2001년에 이어 두번째.
작품은 일정한 줄거리가 없다.마치 그림동화책의 장면 장면들이 튀어나온 듯한 환상적인 세계가 에피소드로 연결된다.힘겹게 끌고 나온 침대는 어느새 보트로 변해 항해하고,무대는 한순간 까만 밤하늘이 되어 달님이 은빛가루를 뿌리며,광대의 빗자루에 걸린 거미줄은 서서히 관객석을 뒤덮는다.
하지만 가슴 벅차는 환희와 웃음만 전달하는 공연은 아니다.그 웃음에는 슬픔이 아스라이 새겨져 있다.공연의 절정은 무대에서 관객석으로 몰아치는 눈보라.사랑하는 이와 이별하며 흘리는 폴루닌의 눈물이 눈송이로 변하고 어느덧 거대한 폭설이 되어 소복이 쌓인다.슬픔마저 익살로 표현해야 했던 광대의 눈물이 세상에 희망으로 내리는 순간을 표현한 것.폴루닌은 79년 극단 리체데이를 창단,연극적 구성과 마임을 가미한 새로운 장르의 광대극을 개척했다.당시 러시아는 개방의 물결과 함께 실험적인 극단의 설립이 봇물을 이루던 때.하지만 리얼리즘 연극의 전통이 강하던 러시아에서 이들은 환영받지 못했다.
폴루닌을 주목한 건 유럽쪽.88년 영국 런던에서 첫 공연을 가진 뒤 90년대 후반까지 바르셀로나 골든노즈상,에든버러 페스티벌 비평가상,로렌스 올리비에상 등을 휩쓸었다.현재도 영국에서 활동하며,러시아의 국제행사 때마다 단골손님으로 불려간다.2001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세계 연극 올림피아드’에서 ‘거리축제’의 총예술감독을 맡았다.새달 12∼23일 평일 오후8시,토 오후 3시·7시,일 오후 2시·6시(월 쉼).2만∼6만원.
폴루닌이 전세계적으로 이미 유명세를 확보했다면,‘신곡’의 안톤 아다진스키는 최근에야 주목받기 시작한 신예.폴루닌의 제자로,리체데이에서 활동하기도 한 그는 곧 연극적 취향이 다름을 깨닫고 88년 자신의 극단 데레보를 만들어 독립했다.
새달 5∼9일 무대에 오를 ‘신곡’은 지난해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소개된 신작.당시 프린지 퍼스트상,헤럴드 에인절상,토털 시어터 상을 휩쓸었다.중앙의 회전식 원형무대가 큰 특징으로,LG아트센터 역시 객석의 390석만 남기고 원형무대를 설치했다.원형무대는 시작과 끝,안과 밖의 경계가 없는 세계를 상징한다.
줄거리도,특정 등장인물도 없다.배우들은 날고 춤추고 뛰고 비틀며 사랑·고통·희망·공포 같은 개념을 다양한 육체언어로 보여줄 뿐.하지만 그 어떤 언어보다 때로는 강렬하고 그로테스크하게,때로는 섬세하고 부드럽게 영적인 감성을 자극한다.산양의 뿔과 턱수염을 가진 나체의 남자가 남근에 큰 종을 단 채 나오고,무대 위로 불길이 타오르며,악마가 익살을 떨며 대장간에서 뭔가를 만들기도 한다.‘스노우쇼’가 모든 연령층이 좋아할 만한 동화 같은 연극이라면,‘신곡’은 보다 지적인 성인 관객을 위한 작품.
연극평론가 이진아씨는 “기괴함,가면,악마성,죽음과 생성 등 르네상스적인 모티브로 추상적 개념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것이 ‘신곡’의 특징”이라면서 “최근 2∼3년간 에든버러 페스티벌의 스타로 떠오른 데레보는 이제 막 정상급으로 올라섰다.”고 평가했다.아울러 “폴루닌,데레보 모두 러시아보다는 유럽에서 각광을 받고 러시아로 역수입된 경우”라고 덧붙였다.5∼7일 오후 8시,8·9일 오후 4시.4만 5000원.(02)2005-0114.
김소연기자 purple@
2003-01-21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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