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산책/ 한나라 “실적경쟁 비상”

여의도 산책/ 한나라 “실적경쟁 비상”

이지운 기자 기자
입력 2002-11-23 00:00
수정 2002-1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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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지구당위원장들은 얼마전 중앙당으로부터 ‘봉투’ 하나씩을 받았다.이를 선거자금쯤으로 여긴 위원장들도 없지 않았다지만,그 안에는 이번 대선에서 자기 지역에서 거둬야 할 ‘목표 득표율’이 들어있었다.

일부 위원장들은 목표치가 너무 높아 항의도 했다는 후문이나,대부분은 이를 받아들고 순순히 돌아섰다고 한다.“당 자체적으로 지역구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나름의 근거를 제시한 것이어서 반론을 제기하기 어려웠다.”는 게 한 지구당위원장의 전언이다.

◆지역구별 여론조사

위원장들은 “지역구별 득표율로 정확한 논공행상을 하겠다.”는 당 지도부의 말이 귓전에서 맴돈다고들 한다.당은 지금까지 2차례에 걸쳐 전국 227개 지구당에 대해 여론조사를 실시했다.또 이를 권역별로 묶어 순위까지 매기고 위원장들에게 통보했다.

보름전쯤 실시된 첫번째 조사에서 어떤 핵심 당직자는 꼴등을 해 스타일을 구겼다.중하위 당직자 대부분 역시 성적이 대단히 좋지 않았다.그래서 ‘후보 주변에서 얼쩡거리지 말고 지역에 가서 표를 모아라.’라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한나라당에서 여론조사는 이렇게 내부 경쟁을 통해 득표율을 제고하는 장치로 쓰이고 있다.

◆당비 납부 실적 경쟁

경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당비 납부 실적’ 역시 위원장들의 성적표다.그간 미납된 것이건,대선을 위한 특별당비건 당원 1인당 1만원씩 모아오는 게 지구당에 내려진 숙제다.

서울 은평을의 이재오(李在五) 의원은 7000여만원을 납부,당내에서 화제가 됐다.한 당직자는 “상대적으로 당원 숫자가 적고 생활수준도 낮은 강북지역에서 거금을 모은 탓에 강남지역의 위원장들이 고민을 하는 모양”이라고 귀띔했다.부산에 지역구를 둔 모 당직자는 1억원을 훌쩍 넘겨 체면을 크게 세웠다고도 한다.

당은 여기에 ‘인센티브’제도까지 도입,경쟁을 부추기고 있다.얼마전에는 이렇게 모인 당비에 액수별로 10∼30%대의 ‘성과급’을 얹어 지구당 활동비로 내려보낸 것으로 알려진다.이래저래 성적이 좋지 않은 지구당 위원장들은 위축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후원회원 모집경쟁

당은 몇달전부터 ‘이회창(李會昌)후보 후원인’ 모집을 장려했다.후원인은 특별히 돈을 낼 필요도 없어 모으기도 쉽고,본격적인 선거전에서는 조직으로 활용할 수 있어 당원 모집보다 효과적이라는 판단에서였다.

당은 이것 역시 지역구별로 통계를 산출,여기에도 ‘경쟁’을 가미했다.17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준비중인 한 당료는 “공천을 받기 위해서는 어차피 조직도 필요하고 인지도를 높여야 하는데,이것처럼 좋은 기회가 있겠느냐.”면서 “개인적 성취도 그렇지만 당의 인정을 받기 위해 벌써 1000여명 이상을 모았다.”고 자랑했다.

◆‘주마가편(走馬加鞭)’

“지구당위원장들이 뛰지 않은 것이 지난 대선에서의 패인 중 하나다.한나라당은 조직이 잘 갖춰져 있어 제대로만 뛰면 반드시 이긴다.그러기 위해서는 위원장들에게 끊임없이 자극을 줘야 한다.” 한 당직자는 경쟁 체제 구축의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약효는 확실한 것 같다.특히 지구당 여론조사는 당 지지기반이 확고한 서울 강남이나 영남지역 위원장들까지 긴장시킬 수 있는 확실한 방법으로 꼽힌다.“예전처럼 ‘걱정마라.다 잘하고 있다.’는 해당 위원장들의 허풍에 대충 넘어가는 일은 없을 것”이란 얘기다.

‘과당 경쟁’에 따른 후유증도 없지는 않은 것 같다.특히 충청 등 일부지역에서는 영입문제 등으로 지역구 활동이 원활치 못하다는 얘기도 들린다.한 원외지구당 위원장은 “성적이 나쁘면 지구당을 빼앗길 것 같아 나름대로 열심히 하긴 하는데,영입 얘기는 끊임없이 나돌아 힘은 빠지고….”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찌보면 지금 한나라당 지구당위원장들은 생존을 좌우할 수도 있는,치열한 ‘실적 경쟁’에 내몰린 ‘영업맨’과 같은 처지에 놓인 셈이다.

이지운기자
2002-11-23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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