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기간 중 향우회,종친회,동창회 모임을 개최할 수 없도록 한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제103조를 싸고 찬·반 논란이 일고 있다.이 규정에 따라 대통령선거운동기간인 오는 11월27일부터 12월19일까지 23일간은 동창회 등을 열 수 없게 된다.
사실 이 조항은 2000년 2월16일에 개정된 것으로,16대 국회의원선거(2000년 4월13일)와 지난번 6·13지방선거에서도 이미 적용되었다.다만 당시에는 계절적으로 향우회,동창회 등이 많지 않아 별다른 문제점이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이 조항은 해석하기에 따라 위헌적 요소가 있을 수 있다.선거와 무관한 동창들의 친목모임까지 포괄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행복추구권과 집회결사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전혀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크게 설득력이 있는 것 같지 않다.동창회 등을 선거운동기간이 아닌 11월26일 이전이나 12월20일 이후에 개최한다고 해서 행복 추구가 봉쇄되고,집회의 자유가 본질적으로 박탈된다고 할 수는 없다.또 선관위도 동창,고향 사람들 몇명이 모여 간단하게 송년 모임을 하는 것까지 법률 위반으로 보지 않는다는 유권해석도 이미 내린 바 있다.
이 법의 구 조항은 선거운동 목적의 동창회 등을 금지했다.하지만 실제는 지켜지지도 않았고,수많은 유사 모임을 일일이 단속할 수도 없는 현실을 감안하여 고육책으로 선거운동기간에 한해 아예 금지토록 한 것이다.정치꾼은 동창회 등을 빌미로 선거운동을 노골적으로 했고,선거브로커들은 유사 모임을 급조해 후보 진영에 금품을 요구하는 사례가 다반사였던 것은 익히 아는 일이다.
차제에 우리 사회에 만연한 지연,학연,혈연 등 전근대적인 연고주의의 고리를 과감하게 끊는 일대 캠페인을 벌이면 어떨까.말로만 투명한 사회,선진 민주주의를 지향한다고 하지 말고 이번 대선 기간에 구체적인 행동으로 실천하면 어떨까.그런 의미에서 대통령선거운동기간에는 자발적으로 향우회나 종친회,동창회를 일절 갖지 말자.
한국 정치,특히 선거문화의 최대 고질은 이러한 연고주의다.대통령선거에 있어 영·호남간 지역감정 부추기기는 말할 것도 없고,시·군·구를 중심으로 한 국회의원선거에서는 읍·면·동별 대결의 소지역주의가 판쳐온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선거 때만 되면 출신 고등학교 중심으로 뭉치는 학연과 성씨(姓氏)·문중으로 단결하는 혈연이 기승을 부리고,이런 것들은 후보들의 정책이나 노선에 우선하는 맹목적인 지지 요소로 작용해왔다.
연고주의는 대의정치를 왜곡시킬 뿐 아니라 권력형 부패의 온상 구실까지 해왔다.대통령 아들들의 구속으로 이어진 각종 게이트의 저변도 따지고 보면 동향과 동창의 연고주의,‘끼리끼리 문화’와 맞닿아 있다.
동창회 등의 개최 금지 규정을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6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선관위는 이미 두 차례의 선거에서 모두 76건의 위반 사례를 적발,이중 2건만 검찰에 고발했다.선관위의 고발 건수가 적발에 비해 현저히 적은 것을 보면,법 운용이 잘못된 관행의 탈법선거운동을 바로잡겠다는 취지에서 이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능률만능주의의 비인간적인 현대 산업사회에서 애향심 등 공동체적인 요소는 때때로 도시생활의 활력소가 될 수 있다.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의 연고주의는 주술에 홀린 것처럼 합리와 이성을 마비시키고 있다.오죽하면 외국 상사원들이 국내 세일즈에 앞서 필독할 자료가 동창회 명부라고 했겠는가.
이제 대통령선거는 100일도 채 남지 않았다.완전공영제 도입을 위한 선거관계법 개정 작업도 제대로 이뤄질지 미지수다.후보간 경쟁구도도 불분명하다.이럴수록 비합리적 연고주의가 선거판을 좌우할 수 있다.선거운동기간인 23일 동안만이라도 동창회 등 연고주의 모임을 참아보자.
이경형/ 논설위원실장 khlee@
사실 이 조항은 2000년 2월16일에 개정된 것으로,16대 국회의원선거(2000년 4월13일)와 지난번 6·13지방선거에서도 이미 적용되었다.다만 당시에는 계절적으로 향우회,동창회 등이 많지 않아 별다른 문제점이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이 조항은 해석하기에 따라 위헌적 요소가 있을 수 있다.선거와 무관한 동창들의 친목모임까지 포괄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행복추구권과 집회결사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전혀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크게 설득력이 있는 것 같지 않다.동창회 등을 선거운동기간이 아닌 11월26일 이전이나 12월20일 이후에 개최한다고 해서 행복 추구가 봉쇄되고,집회의 자유가 본질적으로 박탈된다고 할 수는 없다.또 선관위도 동창,고향 사람들 몇명이 모여 간단하게 송년 모임을 하는 것까지 법률 위반으로 보지 않는다는 유권해석도 이미 내린 바 있다.
이 법의 구 조항은 선거운동 목적의 동창회 등을 금지했다.하지만 실제는 지켜지지도 않았고,수많은 유사 모임을 일일이 단속할 수도 없는 현실을 감안하여 고육책으로 선거운동기간에 한해 아예 금지토록 한 것이다.정치꾼은 동창회 등을 빌미로 선거운동을 노골적으로 했고,선거브로커들은 유사 모임을 급조해 후보 진영에 금품을 요구하는 사례가 다반사였던 것은 익히 아는 일이다.
차제에 우리 사회에 만연한 지연,학연,혈연 등 전근대적인 연고주의의 고리를 과감하게 끊는 일대 캠페인을 벌이면 어떨까.말로만 투명한 사회,선진 민주주의를 지향한다고 하지 말고 이번 대선 기간에 구체적인 행동으로 실천하면 어떨까.그런 의미에서 대통령선거운동기간에는 자발적으로 향우회나 종친회,동창회를 일절 갖지 말자.
한국 정치,특히 선거문화의 최대 고질은 이러한 연고주의다.대통령선거에 있어 영·호남간 지역감정 부추기기는 말할 것도 없고,시·군·구를 중심으로 한 국회의원선거에서는 읍·면·동별 대결의 소지역주의가 판쳐온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선거 때만 되면 출신 고등학교 중심으로 뭉치는 학연과 성씨(姓氏)·문중으로 단결하는 혈연이 기승을 부리고,이런 것들은 후보들의 정책이나 노선에 우선하는 맹목적인 지지 요소로 작용해왔다.
연고주의는 대의정치를 왜곡시킬 뿐 아니라 권력형 부패의 온상 구실까지 해왔다.대통령 아들들의 구속으로 이어진 각종 게이트의 저변도 따지고 보면 동향과 동창의 연고주의,‘끼리끼리 문화’와 맞닿아 있다.
동창회 등의 개최 금지 규정을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6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선관위는 이미 두 차례의 선거에서 모두 76건의 위반 사례를 적발,이중 2건만 검찰에 고발했다.선관위의 고발 건수가 적발에 비해 현저히 적은 것을 보면,법 운용이 잘못된 관행의 탈법선거운동을 바로잡겠다는 취지에서 이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능률만능주의의 비인간적인 현대 산업사회에서 애향심 등 공동체적인 요소는 때때로 도시생활의 활력소가 될 수 있다.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의 연고주의는 주술에 홀린 것처럼 합리와 이성을 마비시키고 있다.오죽하면 외국 상사원들이 국내 세일즈에 앞서 필독할 자료가 동창회 명부라고 했겠는가.
이제 대통령선거는 100일도 채 남지 않았다.완전공영제 도입을 위한 선거관계법 개정 작업도 제대로 이뤄질지 미지수다.후보간 경쟁구도도 불분명하다.이럴수록 비합리적 연고주의가 선거판을 좌우할 수 있다.선거운동기간인 23일 동안만이라도 동창회 등 연고주의 모임을 참아보자.
이경형/ 논설위원실장 khlee@
2002-09-12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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