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리뷰/ ‘검은 수사’-재미와 실험정신 돋보인 심리극

연극 리뷰/ ‘검은 수사’-재미와 실험정신 돋보인 심리극

김소연 기자 기자
입력 2002-09-03 00:00
수정 2002-09-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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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란 신의 선물인가,아니면 인간이 지어낸 욕망인가.

1100석 규모의 LG아트센터가 2층의 단 200석만을 객석으로 제한해 화제를 모은 러시아 카마 긴카스 연출의 ‘검은 수사’(Black Monk).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무대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후원인인 페소츠키의 영지로 찾아온 학자 코브린은,어느날 전설 속의 검은 수사를 만난다.검은 수사와 세상의 진리를 논하며 자신이 천재임을 확신하고,페소츠키의 딸 타냐와 결혼하면서 모든 게 완벽해진 코브린.하지만 그가 미쳤다고 생각한 타냐는 평범한 삶을 요구한다.코브린은 더이상 검은 수사가 나타나지 않자 광기에 휩싸인다.

천재와 범인의 경계에 선 인간을 조명하는 무대는 독특하다.2층 앞쪽에 가설무대를 만들고 배우들은 무대 앞의 관객석 좌우로 등장·퇴장한다.암흑에 묻힌 1층 공간은 알 수 없는 인간의 깊은 심연을 은유하는 듯하다.또 2층 무대를 허공 속에 뜬 신기루처럼 보이게 만든다.

1층 앞쪽의 무대는 공중에 떠 있는 검은 수사를 묘사하는 데 쓰인다.멀지만,어둠 속에서 선명하게 코브린의격렬한 몸짓을 그대로 따라하는 검은 수사는,코브린의 또다른 모습이자 모든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분열된 자아를 상징한다.욕망이거나 유혹이거나 잠재력일 수 있는.

무대 못지 않게 희곡도 실험적이다.안톤 체호프의 단편소설을 각색한 이 작품은 소설 문체를 그대로 살렸다.배우들은 등장인물의 대사와 서술체 문장을 섞어 연기한다.등장인물이자 자신을 설명하는 해설자가 되는 것.브레히트의 ‘거리두기’와 비슷한 듯하면서 또 다르다.단순히 몰입을 막는 차원을 넘어 분열된 인간을 상징한다.

본래 체호프의 희곡은 외부의 상황보다는 고통에 찬 인간의 심리를 전달하는 데 중점을 뒀다.긴카스는 체호프의 소설을 연극으로 만들어 더한 파격을 이뤘다.외부 상황을 묘사하는 서술체 대사는 관객의 이성을 깨우고,고통에 찬 절규는 감성을 뒤흔든다.

조명도 극의 주제에 맞게 사용했다.무대 아래에서 비추는 노란 불빛은 등장인물의 실루엣을 도드라지게 하고,무대의 명암을 살려 빛과 어둠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간을 포착해낸다.또 검은 수사가 등장하는장면에서는 무대 왼쪽 벽면에 큰 그림자가 나타나 관객의 내면을 스멀스멀 파고든다.

그렇다고 시종일관 심각한 것은 아니다.재미있어서 2시간여의 시간이 언제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미치기 전 코브린의 표정 연기는 익살맞다.코브린이 담배연기를 손으로 잡으며 “연기처럼 사라졌다.”고 말하는 장면 등에서는 웃음이 터진다.5일까지 오후8시.동시통역.(02)2005-0114.

김소연기자 purple@
2002-09-03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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