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지역할당제’와 학벌주의

[열린세상] ‘지역할당제’와 학벌주의

홍두승 기자 기자
입력 2002-08-26 00:00
수정 2002-08-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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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대학이 2학기 수시전형요강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2003학년도 대학입시시즌에 들어서고 있다.대학에 있어 입시란 단지 학생을 선발하는 과정에 불과하고 대학이 수행하고 있는 보다 중요한 사회적 기능에 비추어 본다면 지엽적인 일일 수도 있지만,사회적으로 미치는 파급효과는 그 어느 것보다도 크기 때문에 대학이나 교육정책당국은 이 문제에 관한 한 모두가 노심초사하고 있다.

학생선발의 기준으로 우리는 두 가지 잣대를 가지고 있다.하나는 지적 수월성이요,또 다른 하나는 사회적 형평성이다.이 두 기준은 모두가 선(善)이지만 이 둘의 가치는 종종 상충되고 있다.그동안 교육당국은 학력위주 선발을 지양하고 다양한 전형방법을 활용하도록 대학에 요구해왔고 이에 대부분의 대학들이 부응하였다.그러나 지적으로 우수한 학생을 뽑고자 하는 대학의 희망은 학력 위주 전형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최근에 취임한 서울대 총장은 지역할당제 도입 의지를 표명하였고,지난 20일에는 교육부총리가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이를 지지한 바 있다.

서울대총장이 지향하는 목표는 우리나라 중심적 국립대학의 수장으로서 적절한 것이었다고 생각된다.학교예산의 많은 부분을 국민의 세금으로 이루어진 국가재정에 의존하고 있는 국공립대학이 이와 같이 형평성을 고려하는 것은 사회적 책무일 수 있다.그러나 입시를 앞둔 수험생이나 학부모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와 같은 ‘숭고한’ 이상이 반드시 큰 설득력을 갖는 것만은 아니다.이와 같은 제도의 도입으로 인해 또 다른 선의의 피해자가 생길 수 있음에 유의하여야 한다.

현행 학생선발과정에서도 사회적 형평성은 고려되고 있다.그 일례로 학교간 학력격차가 크게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교 등급제를 인정하고 있지 않은 점을 들 수 있다.학습여건이 좋은 대도시 고교나 여건이 열악한 낙후지역 고교를 구분하지 않고 학교생활부 교과영역은 동등하게 간주되고 있다.따라서 특목고나 비평준화지역 고교,그리고 평준화지역에서도 상대적으로 우수한 학생들이 많이 몰려 있는 고교의 경우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고 있는셈이다.여기에 더하여 대학간 다소 차이는있지만 외국근무자 자녀,재외국민,농·어촌 학생,장애인,소년소녀가장 등등 특수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은 바로 그 배경 때문에 정원 외로 입학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1998년도부터 서울대가 몇 년간 시행한 바 있는 학교장 추천제는 바로 소외지역 고등학교에 대한 배려에서부터 출발한 것이었다.최초의 구상은 전국의 모든 고등학교에서 1명씩을 추천받아 이들이 최저학력 기준에만 도달하면 합격시킴으로써 낙후지역 학생들도 입학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한 제도였지만 시행과정에서 변질되어 그 본래의 목적을 충실히 달성할 수 없었던 아쉬움이 남아 있다.학생선발에 있어 전형기준을 다양화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그러나 학생선발은 기본적으로 학력이 기준이 되어야 하고 그 과정이 공정해야 함은 분명하다.현재 각 대학이 가지고 있는 인적,물적 자원으로 과연 그 평가를어느 정도 공정하게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면접에 큰 비중을 두어 학생을 선발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는 점을 많은 대학교수들이 지적하고 있다.

우리나라 입시과열이 소위 ‘명문대’ 선호 때문이라고 비난하고 있지만 이것이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지는 못한다.서울대에 입학허가를 받고서도 등록을 포기하고 ‘인기’ 전공을 찾아 다른 대학으로 진학하는 학생들이 매년적지 않다.대학간 격차 못지않게 전공영역간 격차도 크게 벌어지고 있다.의·치·한의 계열에 우수 학생들이 몰리고 이·공계를 기피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공학계열에 합격한 학생이 의학계열 학과로 진학하기 위해 입학을 포기하거나 입학하였다 하더라도 ‘반수생’이라 불리는 상태로 입시에 재도전하고 있음을 본다.고시촌의 문제는 새삼 지적할 필요조차 없다.

1997년 후반에 우리사회에 들이닥친 경제위기 이후 자격증을 선호하는 사회적 풍토는 더욱 강화되었다.한창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40∼50대에 직장에서 물러난 수없이 많은 인재들을 우리는 보아 왔다.이와 같은 현상을 경험하였거나 주변에서 목격한 학부모,그리고 학생들이 그리는 미래는 자명하다.

문제의 해결을 입시제도의 개선을 통해서 찾을 수있는 것은 아니다.무엇보다 우리사회의 저변에 깔려 있는 학벌위주의 사회적 분위기가 바뀌어야 하고,나아가 조기 퇴직자 및 고령자 재고용을 포함하여 고용구조개선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한 때이다.

홍두승 서울대 교수 사회학
2002-08-26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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