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 신화’는 지난해 1월 거스 히딩크라는 네덜란드 출신 감독이 한국민의 월드컵 16강 염원을 한몸에 받으며 한국땅을 밟으면서 시작됐다.
직전 대회인 98프랑스월드컵에서 우리에게 0-5의 참패를 안겨준 장본인이었던 만큼 한국민들이 그에게 거는 기대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창조적 토털사커의 신봉자’‘생각하는 지도자’등 온갖 수사가 그의 이름 앞에 따라붙었다. 그러나 히딩크호의 지난 17개월은 영과 욕,희와 비의 연속이었다. ‘한국축구 부수기’와 ‘새틀 짜기’로 출발한 히딩크호의 시련은 출범과 동시에 찾아들었다.첫 시험무대는 지난해 1월의 홍콩칼스버그컵대회.노르웨이·파라과이·홍콩프로선발 등 4개팀이 참가한 대회에서 히딩크호가 거둔 성적은 예상 외로 저조한 3위였다.
이때 히딩크가 선보인 것은 당시로서는 생소한 소위 4-4-2 토털사커.‘처진 스트라이커’니 ‘새도 스트라이커’니 하는 생소한 용어들이 자주 매스컴에 등장한 것도 이 무렵이다.다음달 열린 두바이4개국대회에서도 히딩크호는 졸전을 거듭했다.특히 한달전 노르웨이에 2-3으로 패한 데 이어 이 대회에서 덴마크에 0-2로 무너짐으로써 서서히 불만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히딩크호의 시련은 갈수록 정도가 심해졌다.5∼6월에 걸쳐 치러진 컨페더레이션스컵대회 첫 경기에서 프랑스에 0-5로 대패했고 8월엔 체코와의 원정평가전에서 또 0-5로 참패했다.즉각 히딩크에게는 ‘오대영’이라는 새 별명이 붙여졌다.
때맞춰 토종 감독을 다시 임명하자는 여론이 빗발쳤고 국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히딩크식 축구스타일에 대한 비난이 들끓었다.
그러나 히딩크는 이같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했다.대표팀에젊은 선수들을 끝없이 불러들이고 내보내면서 기술보다는 체력,포지션별 전문화보다는 ‘멀티 플레이어’육성을 부르짖었다.
비로소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말부터였다.11월 유럽의 강호 크로아티아와의 두 차례 평가전에서 1승1무(각각 2-0,1-1)의 성적을 거뒀는가 하면 12월엔 한수 위로 평가되는 미국을 1-0으로 물리치는 전과를 올렸다.선수들이 히딩크의 전술을 어느 정도 이해하기 시작한 데다 히딩크 역시 포백을 버리고 스리백을 새로 도입하는 등 한국팀에 대한 이해도를 높인 데 따른 결과였다.
하지만 상승세를 타는 듯하던 히딩크호는 2월 미주원정을 통해 다시 한번 혹독한 비난에 직면했다.히딩크호는 북중미골드컵대회 첫 경기부터 미국에 1-2로 무너졌고 연이어 코스타리카에 1-3으로 대패하는 등 불안감을 안겨준 데 따른 것이다. 자연히 “월드컵은 코앞에 왔는데 끝없이 시험만 거듭하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나 히딩크는 그럴 때마다 무응답으로 일관하거나 자신의 논리를 펼치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한국 선수들은 신기할 만큼 양발을 잘 쓰고 생각했던 것보다 기술이 좋다.문제는 체력이다.”라는 게 그의 평소 주장이었다. 히딩크의 고집이 본격적으로 결실을 맺기 시작한 무대는 지난 3월 유럽전지훈련이었다.히딩크호는 핀란드 터키 등 넘을 수 없는 벽으로만 여겨진 유럽축구와 정면으로 거듭 맞서 무실점을 기록하며 1승1무(각각 2-0,0-0)의 성적을 얻었다.
유럽팀에 대한 도전은 이후에도 계속돼코스타리카를 2-0,스코틀랜드를 4-1로 완파하더니 지난달엔 세계 정상급의 잉글랜드 프랑스와 대등한 경기를 펼쳐 16강에 대한 자신감과 희망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이 모두가 출범 이후 17개월 동안 다양한 팀을 상대로 무려 32차례의 평가전(11승11무10패)을 치르면서 실력을 갈고 닦은 결과였다.
박해옥기자 hop@
직전 대회인 98프랑스월드컵에서 우리에게 0-5의 참패를 안겨준 장본인이었던 만큼 한국민들이 그에게 거는 기대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창조적 토털사커의 신봉자’‘생각하는 지도자’등 온갖 수사가 그의 이름 앞에 따라붙었다. 그러나 히딩크호의 지난 17개월은 영과 욕,희와 비의 연속이었다. ‘한국축구 부수기’와 ‘새틀 짜기’로 출발한 히딩크호의 시련은 출범과 동시에 찾아들었다.첫 시험무대는 지난해 1월의 홍콩칼스버그컵대회.노르웨이·파라과이·홍콩프로선발 등 4개팀이 참가한 대회에서 히딩크호가 거둔 성적은 예상 외로 저조한 3위였다.
이때 히딩크가 선보인 것은 당시로서는 생소한 소위 4-4-2 토털사커.‘처진 스트라이커’니 ‘새도 스트라이커’니 하는 생소한 용어들이 자주 매스컴에 등장한 것도 이 무렵이다.다음달 열린 두바이4개국대회에서도 히딩크호는 졸전을 거듭했다.특히 한달전 노르웨이에 2-3으로 패한 데 이어 이 대회에서 덴마크에 0-2로 무너짐으로써 서서히 불만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히딩크호의 시련은 갈수록 정도가 심해졌다.5∼6월에 걸쳐 치러진 컨페더레이션스컵대회 첫 경기에서 프랑스에 0-5로 대패했고 8월엔 체코와의 원정평가전에서 또 0-5로 참패했다.즉각 히딩크에게는 ‘오대영’이라는 새 별명이 붙여졌다.
때맞춰 토종 감독을 다시 임명하자는 여론이 빗발쳤고 국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히딩크식 축구스타일에 대한 비난이 들끓었다.
그러나 히딩크는 이같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했다.대표팀에젊은 선수들을 끝없이 불러들이고 내보내면서 기술보다는 체력,포지션별 전문화보다는 ‘멀티 플레이어’육성을 부르짖었다.
비로소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말부터였다.11월 유럽의 강호 크로아티아와의 두 차례 평가전에서 1승1무(각각 2-0,1-1)의 성적을 거뒀는가 하면 12월엔 한수 위로 평가되는 미국을 1-0으로 물리치는 전과를 올렸다.선수들이 히딩크의 전술을 어느 정도 이해하기 시작한 데다 히딩크 역시 포백을 버리고 스리백을 새로 도입하는 등 한국팀에 대한 이해도를 높인 데 따른 결과였다.
하지만 상승세를 타는 듯하던 히딩크호는 2월 미주원정을 통해 다시 한번 혹독한 비난에 직면했다.히딩크호는 북중미골드컵대회 첫 경기부터 미국에 1-2로 무너졌고 연이어 코스타리카에 1-3으로 대패하는 등 불안감을 안겨준 데 따른 것이다. 자연히 “월드컵은 코앞에 왔는데 끝없이 시험만 거듭하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나 히딩크는 그럴 때마다 무응답으로 일관하거나 자신의 논리를 펼치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한국 선수들은 신기할 만큼 양발을 잘 쓰고 생각했던 것보다 기술이 좋다.문제는 체력이다.”라는 게 그의 평소 주장이었다. 히딩크의 고집이 본격적으로 결실을 맺기 시작한 무대는 지난 3월 유럽전지훈련이었다.히딩크호는 핀란드 터키 등 넘을 수 없는 벽으로만 여겨진 유럽축구와 정면으로 거듭 맞서 무실점을 기록하며 1승1무(각각 2-0,0-0)의 성적을 얻었다.
유럽팀에 대한 도전은 이후에도 계속돼코스타리카를 2-0,스코틀랜드를 4-1로 완파하더니 지난달엔 세계 정상급의 잉글랜드 프랑스와 대등한 경기를 펼쳐 16강에 대한 자신감과 희망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이 모두가 출범 이후 17개월 동안 다양한 팀을 상대로 무려 32차례의 평가전(11승11무10패)을 치르면서 실력을 갈고 닦은 결과였다.
박해옥기자 hop@
2002-06-05 4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