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기자가 본 종교 만화경] 테레사 수녀와 신유박해

[김성호기자가 본 종교 만화경] 테레사 수녀와 신유박해

김성호 기자 기자
입력 2002-05-30 00:00
수정 2002-05-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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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커타의 성녀’ ‘가난한 이들의 성녀’ ‘살아있는성자’….지난 97년 87세를 일기로 삶을 마감한 테레사 수녀가 회자될 때마다 으레 따라붙는 수식어다.수식어 그대로,테레사 수녀가 생전에 변함없이 일관한 삶의 모토는 ‘낮은 데로 임하기’였다.고교 교사시절 “한가하게 가르칠 수만은 없다.”는 말과 함께 인도 캘커타의 빈민구제에뛰어든 그는 죽음에 임박해서도 “나를 가난한 사람들처럼 죽어가게 내버려 둬 달라.”고 호소하며 치료를 거부했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서만 ‘다른 이에 대한 섬김의 모범’으로 받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희생’과 ‘무소유’의 전범이었다.가진 것이라곤청색띠를 두른 수녀복과 낡은 헝겁가방 속에 든 성경 한권이 전부인 테레사 수녀였다.“내가 하는 일이란 거대한바다 속의 작은 물방울”이라는 말과는 달리, 1950년 캘커타 빈민가에 창설해 그의 분신격이 된 ‘사랑의 선교회’는,이제 100여 국가에서 500개 단체로 늘어나 테레사식 사랑을 실천하고 있으며 소속된 수녀만도4000명에 달한다.

로마 교황청이 내년 봄 테레사 수녀를 시복(諡福·사망후 복자로 인정함)키로 결정했다는 소식에 때맞춰 국내 가톨릭도 226명을 시복·시성(諡聖) 추진 대상자로 확정했다고 한다.관례로 볼 때 테레사 수녀의 시복·시성은 가톨릭사상 최단 시일 내에 이루어지는 것이다.이에 비해 우리가톨릭이 시복·시성 대상자로 확정한 이는 1801년 신유박해 때의 순교자가 대종을 이룬다.사후 5년도 채 안돼 복자와 성인의 반열에 오르는 테레사 수녀에 비하면 우리 순교자들은 200년 만에 인정받을 기회를 얻은 셈이다.

가톨릭에서 사후 교황청으로부터 복자와 성인의 품위를받는 것은 최고의 명예다.국내에선 지금까지 103명이 성인 품위를 받았고 대부분은 각종 박해 때 목숨을 잃은 순교자들이다.교황청은 시복·시성의 조건으로 기적과 순교의증거를 들지만, 이번 대상자들은 탄압과 박해의 악조건 속에서 민중과 부대끼며 ‘낮은 데로 임하다 목숨을 버린’순교자들인 만큼 어렵지 않게 반열에 오를 것이란 전망이다.

지난 95년 영국과 독일에서 동시에 출간된 뒤 한국에도번역소개된 수상집 ‘단순한 길’에서 테레사 수녀는 자신을 가장 낮은 곳에 두기로 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선한 인간이 가난에 허덕이고 타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죄악이자 질병이다.이기적으로 살기엔 우리에게 주어진 날들이 너무나도 짧다.”

종교적 양심을 지키느라 죽음을 택한 순교자들의 시복·시성이 가톨릭계만의 관심사가 아닌 까닭을 설명하는 말이다.



김성호기자kimus@
2002-05-3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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