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필과 칠판] 수능에 발 묶인 과학 영재들

[분필과 칠판] 수능에 발 묶인 과학 영재들

김창동 기자 기자
입력 2002-01-17 00:00
수정 2002-0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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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말했다.‘천하의 영재를 얻어 가르치는 것이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 중 하나’라고.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도시 서울의 천재,영재들이 모였다는 서울과학고에서 수학을가르치는 나는 이 말을 실감할 때가 많다.

우리 학교 학생 400여명 가운데 대부분이 중학교에서 전교1등을 했거나 수학,과학의 독보적인 존재로 타학생들의 추종을 불허했던 아이들이었다.하나를 가르치면 셋 이상을 깨우치는 수재들이다.

지난 몇년간 기억에 남는 학생들이 많다.도형에 특히 뛰어난 A는 거의 모든 수학문제를 그림만 딱 하나 그려놓고서해결했다.또 컴퓨터에 능한 B는 수능 문제 30개를 30분만에 풀어치웠다.하도 신기해 “암산만으로는 어려운 문제인데어떻게 풀었는지 칠판에 적어 보라.”고 했더니 칠판에 컴퓨터 프로그램을 적는 것이 아닌가.

하루는 천재로 불리는 C의 어머니가 학교에 찾아와 눈물을 떨궜다.“그렇게 똑똑한 자식을 둔 어머니께서 왜 우시느냐.”고 했더니 “얘는 내 자식 같지가 않다.주말에 학교기숙사에서 돌아온 애가 하루종일 방에만 틀어박혀책만 보고 있다.”고 털어놓았다.TV를 같이 보자고 하면 ‘저런 걸 왜 봐요.’하고,간식을 갖다 줘도 손도 안댄 채 앉아있는일이 다반사라고 했다.C의 어머니는 “항상 무슨 생각을 골똘히 해 가족들과 대화도 못 나눌 정도로 다른 틈이 전혀없는 거 같다.”고 슬픈 표정을 지었다.우수한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 재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나보다 훨씬 똑똑한 애들을 가르치자니 한 시간의 수업을 준비하는 데도 적게는 3∼4시간,많게는 하루 이틀이 걸린다.일본,미국 서적은 물론 중국 수학 문제까지 뒤져도 아이들에게 가르칠 것을 찾지못할 때가 있다.

내가 못푸는 문제를 아이들이 가져올 때도 있지만,내가 풀기를 기다리기보다는 함께 머리를 맞대고 풀어나가려고 애를 쓴다.수업 시간에도 아이들은 내가 풀어주기를 원하지않는다.자신들이 먼저 푼 후라야 설명을 듣길 원한다.창의력과 도전 의식,깊은 사고는 나를 무척 즐겁게 해준다.

하지만 비교내신이 폐지된 후로 영재들이 모인 과학고라고 해서 입시과열의 현실을 빗겨갈 수는 없다.1,2학년까지는과학 인재육성이라는 취지에 맞게 선진국보다도 앞선 교육체제가 운영되다가 고3 1년간은 수능 공부 쪽으로 학과가운영될 수 밖에 없다.

‘지식과 정보,과학적 사고가 중요시되는 현실에서 대학과의 연계 등 정책적 지원이 뒷받침 된다면 국가적 두뇌의 낭비를 줄일 수 있을텐데’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김창동 서울과학고 교무부장·수학교사
2002-01-1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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