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월드컵 대회 중 가장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고있는 98 프랑스 월드컵 대회도 옥의 티가 있다.바로 훌리건의 난동이다.마르세유는 경제·문화적인 성공을 거뒀지만 대회 도중 발생한 훌리건 난동은 월드컵 대회의 성공을 깎아내린 ‘절반의 성공’이었다.훌리건 문제는 프랑스 월드컵대회와 마르세유가 던져주는 또 다른 교훈인 셈이다.
<훌리건과 마르세유> 영국과 튀니지가 맞붙은 마르세유의 벨로드롬 경기장.훌리건 난동사건으로 무려 50여명이 중경상을 입는 사건이 벌어졌다.“축구를 사랑하는 사람이 프랑스에오는 것은 환영이지만 나머지는 떠나라”고 한 미셸 플라티니 프랑스월드컵조직위 공동위원장의 경고가 무색해졌던 것이다.
이듬해인 99년 유럽축구연맹(UEFA)컵 결승전을 앞두고는 아예 마르세유시(市) 전체에 금주령이 내려졌다.마르세유의 지역 연고팀인 올림픽 마르세유(OM)팀과 이탈리아의 파르마 경기를 앞두고 마르세유 경찰당국은 레스토랑과 바가 아닌 곳에서 술을 팔지 못하도록 했던 것이다.
<정열과 축구의 도시> 프랑스 월드컵 경기가 열렸던 10개 도시 가운데 마르세유에서 훌리건 난동이 심했던 것은 마르세유의 축구열기가 지중해의 따가운 햇살만큼이나 뜨거웠기 때문이다.
마르세유의 중심지인 구항(舊港) 바로 앞 벨쥬거리에 있는OM(올림픽 마르세유) 카페.축구단과는 무관하지만 카페 OM의 내부는 축구팀 OM의 각종 우승컵과 선수들이 입던 유니폼이 전시돼 있다.벽에 장식된 빛바랜 신문 스크랩들은 마치 축구팀 OM의 홍보전시장에 온 것같은 착각을 느끼게 한다.
종업원들이 축구 유니폼 차림으로 찻잔을 나르는 모습도 인상적이다.석양이 지고 손님이 뜸해지는 저녁무렵부터는 대형 TV화면에서 OM팀의 축구경기를 녹화방영해 주면서 손님을끈다.축구에 대한 열정적인 지역성과 상업성의 조화다.카페OM 외에도 축구경기를 방영해주는 카페는 아일랜드 맥주를파는 오브라디 등 시내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부정적 이미지 탈피에 성공> 마르세유는 훌리건 사건으로오점을 남겼지만 경제·문화적으로는 상당한 변모를 했다.우선 마르세유하면 떠올리던 부정적인 이미지를 어느 정도 불식시켰다는 평가다.마르세유의 나쁜 이미지는 마피아가 들끓을 정도로 치안이 좋지 않고,경제난이 심각하며,예술이 없다는 세가지.
예술의 나라 프랑스에서 ‘예술이 없다’는 얘기는 죽음의도시에 다름아니다.마르세유시는 월드컵을 계기로 재도약을다짐하면서 부정적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세 가지 연속 이벤트를 만들었다.98년 월드컵 대회,99년 정도(定都) 2,600년행사,2000년 새 천년 행사였다.
월드컵 대회 당시에 612만 유로(약 72억원)를 한달내내 시내 거리와 해변 곳곳의 문화축제행사 등에 투입했다.월드컵경기가 열렸던 벨로드롬 경기장을 비롯해 주변 도시환경도개선됐다.마르세유 시측은 중앙정부와 프랑스월드컵조직위원회의 지원과 시의 예산으로 메워나갔다.월드컵 대회에서 40만명의 관광객이 몰려 들었고 99년 도시건립 2,600년 기념행사에는 30만명,2000년 새 천년 행사때는 40만명의 관광객이몰린 것으로 마르세유 시청은 추정했다.
마르세유 시청의 기 필립 대외담당총국장은 “마르세유는원래 관광도시는 아니었는데 이미지가 완전히바뀌었다”고자랑을 늘어놓는다.번듯한 기업이 없던 마르세유에 요즘 첨단 정보기술(IT) 기업들이 몰려들고 있다는 것이다.게다가영화 촬영지로도 활용되고 있을 정도로 마르세유는 문화적인이미지를 갖춰나가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부정적인 이미지에서 탈피하려는 마르세유시의 노력은 적어도 시민들에게는 상당히 먹혀든 것으로 나타났다.마르세유시청이 월드컵 대회가 끝난 직후 15세 이상 시민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 마르세유 월드컵이 다른 도시보다 성공적이었다는 응답은 93%였다.대중 교통시설이 나아졌다는 응답이 76%,관광문화 행사가 성공적이었다는 응답이 74%였다.
특히 좋은 이미지를 심어 줬다는 응답이 91%였다는 사실에기 필립 국장은 상당히 고무돼 있다.
마르세유(프랑스) 박정현기자 jhpark@
■지중해의 관문 '마르세유'는 어떤 곳.
‘엄청나게 좋아하든지,아니면 아예 싫어하든지…’ 프랑스에서 파리 다음인 제2의 도시이자 제1의 항구도시인마르세유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평가다.사람에 따라 호불호(好不好)가극단적으로 엇갈리는 곳이 바로 마르세유다.태양과 정열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마르세유를 좋아하게 되지만그렇지 않은 사람은 혐오하기 쉽다는 얘기다.
파리에서 살다가 마르세유로 이사와 3년째 택시운전을 하고있다는 40대 후반의 롤랑씨는 태양이 좋아서 마르세유를 찾은 사람이다.일을 끝내고 구항(舊港)에 즐비한 카페 한 곳을찾아 테라스에서 일광욕을 쬐는 일이 즐겁기만 하다. 그는“테라스에 앉아 진한 에스프레소 커피나 시원한 생맥주 한잔을 마시는 것보다 더 큰 즐거움이 없다”며 흐뭇해 했다.
복잡한 파리생활에 비길 바가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강하게 부는 바닷바람,거리 곳곳에 마구 날아다니는휴지조각, 아랍인들의 모습 외에도 이웃 상점주인이 대낮에권총강도를 당했다는 뉴스는 아마도 금방 도착한 관광객들의어깨를 잔뜩 움츠리게 하거나 곧바로 도시를 떠나고 싶게 만든다.
▲2,600여년의 고도(古都)=로마 사람들이 이곳에 도시를 만든 것은 2,600여년전이다.마르세유는 99년에 정도(定都) 2,600년 기념행사를 성대하게 치렀다.마르세유의 옛 이름은 ‘마살리아’다.그러나 누가 왜 그렇게 지었는 지는 분명하지않다.프랑스 대혁명 당시에는 마르세유가 연방주의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도시이름을 박탈당해 ’이름없는 도시’로 남기도 했다.
마르세예즈(Maeseillais)는 ‘마르세유 사람’과 동시에 ‘프랑스 국가’를 뜻한다.1792년 프랑스 혁명군 장교 클로드조제프 루제 드 릴이 애초 ‘라인군의 전가’라는 제목으로작사했던 노래다.하지만 라인군에 복무했던 마르세유의 의용군(마르세예즈)들이 부르면서 파리에 입성해 ‘라 마르세예즈’로 불리면서 널리 보급됐다.
▲가볼만한 곳=마르세유의 사크르 쾨르(성심성당)인 노트르담 드 라 가르드사원에 올라보면 도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푸른 지중해에 보이는 것은 이프 섬.
사원에서 내려와 벨쥬 부두거리에서 페리호 표를 사서 이프섬으로 떠난다.배로 15분 가량 걸리는 이프섬은 바로 뒤마의소설인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무대. 소설에서 몽테크리스토 백작이 갇혀 있던 곳이고,실제로도 많은 정치범들이 갇혔던 감옥이다.
마르세유 시내에서는 구항의 거리를 걸으면서 주변의 카페·레스토랑 등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맨발의 북아프리카인들이 특유의 토속인형을 갖고 관광객 주변을 맴도는 모습은 흥미롭다.
마르세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리는 부야베스.옛날 선원들이 먹던 생선수프와 모듬 냄비식 생선요리는 프랑스 내에서도 마르세유의 명물로 꼽힌다.얼큰하고 구수한 맛이 우리에게 낯설지는 않지만 약간 비린내가 난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한 사람당 우리 돈으로 3만5,000원 안팎으로 비싼 편이다.
▲인내심이 필요한 곳=두 개 노선이 있는 지하철이 가장 편한 교통수단이다.마르세유에서의 운전은 프랑스에서도 평판이 좋지 않다.길거리를 몰라 머뭇거리면 영락없이 뒤에서는욕설과 경적소리가 날아오는 것이 파리지앵들과 다를 바 없다.
마르세유는 최근들어 문화시설을 크게 보강해 각종 공연과박물·미술관들이 적지 않다.구 마르세유 박물관,로마부두박물관에는 1세기경 사용되던 대형 항아리 등이 전시돼 있다.
하지만 마르세유의 박물관들은 걸핏하면 사전예고없이 문을닫기 때문에 미리 확인하고 가는 것이 좋다.
▲가장 로마적인 곳=파리에서 마르세유로 내려오는 고속도로는 ‘태양의 도로’라고 불린다.푸른 나무보다는 바위가 많이 나타나는데 이곳이 프로방스 지역이다.프로방스는 마르세유와 함께 가장 로마적인 유적이 남아 있는 곳인 동시에 북아프리카인들이 많은 곳이다.외국인을 가장 혐오하는 극우보수주의자인 스킨헤드족들이 많다.오랑쥬는 2,000년전 고대극장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다.케사르가 이 지역에서 승리를기념해 만든 개선문이 볼거리다.
마르세유 박정현기자
<훌리건과 마르세유> 영국과 튀니지가 맞붙은 마르세유의 벨로드롬 경기장.훌리건 난동사건으로 무려 50여명이 중경상을 입는 사건이 벌어졌다.“축구를 사랑하는 사람이 프랑스에오는 것은 환영이지만 나머지는 떠나라”고 한 미셸 플라티니 프랑스월드컵조직위 공동위원장의 경고가 무색해졌던 것이다.
이듬해인 99년 유럽축구연맹(UEFA)컵 결승전을 앞두고는 아예 마르세유시(市) 전체에 금주령이 내려졌다.마르세유의 지역 연고팀인 올림픽 마르세유(OM)팀과 이탈리아의 파르마 경기를 앞두고 마르세유 경찰당국은 레스토랑과 바가 아닌 곳에서 술을 팔지 못하도록 했던 것이다.
<정열과 축구의 도시> 프랑스 월드컵 경기가 열렸던 10개 도시 가운데 마르세유에서 훌리건 난동이 심했던 것은 마르세유의 축구열기가 지중해의 따가운 햇살만큼이나 뜨거웠기 때문이다.
마르세유의 중심지인 구항(舊港) 바로 앞 벨쥬거리에 있는OM(올림픽 마르세유) 카페.축구단과는 무관하지만 카페 OM의 내부는 축구팀 OM의 각종 우승컵과 선수들이 입던 유니폼이 전시돼 있다.벽에 장식된 빛바랜 신문 스크랩들은 마치 축구팀 OM의 홍보전시장에 온 것같은 착각을 느끼게 한다.
종업원들이 축구 유니폼 차림으로 찻잔을 나르는 모습도 인상적이다.석양이 지고 손님이 뜸해지는 저녁무렵부터는 대형 TV화면에서 OM팀의 축구경기를 녹화방영해 주면서 손님을끈다.축구에 대한 열정적인 지역성과 상업성의 조화다.카페OM 외에도 축구경기를 방영해주는 카페는 아일랜드 맥주를파는 오브라디 등 시내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부정적 이미지 탈피에 성공> 마르세유는 훌리건 사건으로오점을 남겼지만 경제·문화적으로는 상당한 변모를 했다.우선 마르세유하면 떠올리던 부정적인 이미지를 어느 정도 불식시켰다는 평가다.마르세유의 나쁜 이미지는 마피아가 들끓을 정도로 치안이 좋지 않고,경제난이 심각하며,예술이 없다는 세가지.
예술의 나라 프랑스에서 ‘예술이 없다’는 얘기는 죽음의도시에 다름아니다.마르세유시는 월드컵을 계기로 재도약을다짐하면서 부정적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세 가지 연속 이벤트를 만들었다.98년 월드컵 대회,99년 정도(定都) 2,600년행사,2000년 새 천년 행사였다.
월드컵 대회 당시에 612만 유로(약 72억원)를 한달내내 시내 거리와 해변 곳곳의 문화축제행사 등에 투입했다.월드컵경기가 열렸던 벨로드롬 경기장을 비롯해 주변 도시환경도개선됐다.마르세유 시측은 중앙정부와 프랑스월드컵조직위원회의 지원과 시의 예산으로 메워나갔다.월드컵 대회에서 40만명의 관광객이 몰려 들었고 99년 도시건립 2,600년 기념행사에는 30만명,2000년 새 천년 행사때는 40만명의 관광객이몰린 것으로 마르세유 시청은 추정했다.
마르세유 시청의 기 필립 대외담당총국장은 “마르세유는원래 관광도시는 아니었는데 이미지가 완전히바뀌었다”고자랑을 늘어놓는다.번듯한 기업이 없던 마르세유에 요즘 첨단 정보기술(IT) 기업들이 몰려들고 있다는 것이다.게다가영화 촬영지로도 활용되고 있을 정도로 마르세유는 문화적인이미지를 갖춰나가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부정적인 이미지에서 탈피하려는 마르세유시의 노력은 적어도 시민들에게는 상당히 먹혀든 것으로 나타났다.마르세유시청이 월드컵 대회가 끝난 직후 15세 이상 시민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 마르세유 월드컵이 다른 도시보다 성공적이었다는 응답은 93%였다.대중 교통시설이 나아졌다는 응답이 76%,관광문화 행사가 성공적이었다는 응답이 74%였다.
특히 좋은 이미지를 심어 줬다는 응답이 91%였다는 사실에기 필립 국장은 상당히 고무돼 있다.
마르세유(프랑스) 박정현기자 jhpark@
■지중해의 관문 '마르세유'는 어떤 곳.
‘엄청나게 좋아하든지,아니면 아예 싫어하든지…’ 프랑스에서 파리 다음인 제2의 도시이자 제1의 항구도시인마르세유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평가다.사람에 따라 호불호(好不好)가극단적으로 엇갈리는 곳이 바로 마르세유다.태양과 정열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마르세유를 좋아하게 되지만그렇지 않은 사람은 혐오하기 쉽다는 얘기다.
파리에서 살다가 마르세유로 이사와 3년째 택시운전을 하고있다는 40대 후반의 롤랑씨는 태양이 좋아서 마르세유를 찾은 사람이다.일을 끝내고 구항(舊港)에 즐비한 카페 한 곳을찾아 테라스에서 일광욕을 쬐는 일이 즐겁기만 하다. 그는“테라스에 앉아 진한 에스프레소 커피나 시원한 생맥주 한잔을 마시는 것보다 더 큰 즐거움이 없다”며 흐뭇해 했다.
복잡한 파리생활에 비길 바가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강하게 부는 바닷바람,거리 곳곳에 마구 날아다니는휴지조각, 아랍인들의 모습 외에도 이웃 상점주인이 대낮에권총강도를 당했다는 뉴스는 아마도 금방 도착한 관광객들의어깨를 잔뜩 움츠리게 하거나 곧바로 도시를 떠나고 싶게 만든다.
▲2,600여년의 고도(古都)=로마 사람들이 이곳에 도시를 만든 것은 2,600여년전이다.마르세유는 99년에 정도(定都) 2,600년 기념행사를 성대하게 치렀다.마르세유의 옛 이름은 ‘마살리아’다.그러나 누가 왜 그렇게 지었는 지는 분명하지않다.프랑스 대혁명 당시에는 마르세유가 연방주의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도시이름을 박탈당해 ’이름없는 도시’로 남기도 했다.
마르세예즈(Maeseillais)는 ‘마르세유 사람’과 동시에 ‘프랑스 국가’를 뜻한다.1792년 프랑스 혁명군 장교 클로드조제프 루제 드 릴이 애초 ‘라인군의 전가’라는 제목으로작사했던 노래다.하지만 라인군에 복무했던 마르세유의 의용군(마르세예즈)들이 부르면서 파리에 입성해 ‘라 마르세예즈’로 불리면서 널리 보급됐다.
▲가볼만한 곳=마르세유의 사크르 쾨르(성심성당)인 노트르담 드 라 가르드사원에 올라보면 도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푸른 지중해에 보이는 것은 이프 섬.
사원에서 내려와 벨쥬 부두거리에서 페리호 표를 사서 이프섬으로 떠난다.배로 15분 가량 걸리는 이프섬은 바로 뒤마의소설인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무대. 소설에서 몽테크리스토 백작이 갇혀 있던 곳이고,실제로도 많은 정치범들이 갇혔던 감옥이다.
마르세유 시내에서는 구항의 거리를 걸으면서 주변의 카페·레스토랑 등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맨발의 북아프리카인들이 특유의 토속인형을 갖고 관광객 주변을 맴도는 모습은 흥미롭다.
마르세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리는 부야베스.옛날 선원들이 먹던 생선수프와 모듬 냄비식 생선요리는 프랑스 내에서도 마르세유의 명물로 꼽힌다.얼큰하고 구수한 맛이 우리에게 낯설지는 않지만 약간 비린내가 난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한 사람당 우리 돈으로 3만5,000원 안팎으로 비싼 편이다.
▲인내심이 필요한 곳=두 개 노선이 있는 지하철이 가장 편한 교통수단이다.마르세유에서의 운전은 프랑스에서도 평판이 좋지 않다.길거리를 몰라 머뭇거리면 영락없이 뒤에서는욕설과 경적소리가 날아오는 것이 파리지앵들과 다를 바 없다.
마르세유는 최근들어 문화시설을 크게 보강해 각종 공연과박물·미술관들이 적지 않다.구 마르세유 박물관,로마부두박물관에는 1세기경 사용되던 대형 항아리 등이 전시돼 있다.
하지만 마르세유의 박물관들은 걸핏하면 사전예고없이 문을닫기 때문에 미리 확인하고 가는 것이 좋다.
▲가장 로마적인 곳=파리에서 마르세유로 내려오는 고속도로는 ‘태양의 도로’라고 불린다.푸른 나무보다는 바위가 많이 나타나는데 이곳이 프로방스 지역이다.프로방스는 마르세유와 함께 가장 로마적인 유적이 남아 있는 곳인 동시에 북아프리카인들이 많은 곳이다.외국인을 가장 혐오하는 극우보수주의자인 스킨헤드족들이 많다.오랑쥬는 2,000년전 고대극장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다.케사르가 이 지역에서 승리를기념해 만든 개선문이 볼거리다.
마르세유 박정현기자
2002-01-0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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