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었습니다] 정양모 前 국립중앙박물관장

[만나고 싶었습니다] 정양모 前 국립중앙박물관장

입력 2001-11-27 00:00
수정 2001-1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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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조금 숨을 돌릴 것 같습니다.박물관장 재임 때보다 더 바쁜 나날을 보냈어요.퇴임후 하고 싶었던 일들을 뒷전에 미루어둔 채 말입니다.” 26일 저녁 늦게 정동극장 옆 한국미술발전연구소 사무실에서 정양모(鄭良謨·67)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을 만났다.‘도자기 박사’라는 별명에 걸맞게 그의 사무실에는 도자기며각종 미술자료들이 빼곡했다.지난 99년 12월 퇴임후 곧바로이곳에 연구소를 차렸지만 이천 도자기축제 일을 거드느라사무실을 줄곧 비워왔단다.

“박물관장을 그만두면 한가할 줄 알았는데 여기저기서 학술대회 자문이며 강의 요청이 몰려 오히려 더 바빴습니다.강의는 경기대 명예교수로 주 1강좌만 맡았지만 도자기축제 공동운영위원장과 동양 전시 큐레이터를 맡아달라는 주문을 거절할 수 없어 달려들었는데 여간 어려운 게 아니더군요.” “도자기축제가 성공적인 행사로 끝나 흐뭇하다“고 말하면서도 그간의 마음고생이 적지 않았음을 내비친다.전시장이마련되기도 전에 중국의 베이징 고궁박물관이며 일본의 도쿄박물관 오사카 동양도자미술관 등 양국의 박물관을 일일이다니며 물건들을 섭외했고 전시며 계약서 작성,축제후 반환까지 모두 도맡았다.

“도자기축제를 치르면서도 거듭 확인했지만 우리 것을 살려야 합니다.우리 전통문화의 우수성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으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중국이나 일본에 밀리고 있는 형편입니다.” 도자기만 하더라도 그동안 선조들의 기술과 형태를 베끼기에 급급했지 우리만이 갖고 있는 특장을 현대적으로 되살려내는 노력이 사실상 미흡했다는 것이다.93년 3월부터 99년퇴임까지 6년9개월간 관장직을 맡아 적지 않은 일을 했지만항상 뇌리를 떠나지 않는 과제가 우리 것의 ‘창조적 재생산’이었다고.그래서 퇴임과 동시에 이 한국미술발전연구소를마련했단다.

도자기야말로 우리를 알리고 인정받을 수 있는 특장의 유산임에도 국내에서조차 홀대받는 실정이 여간 안타까운 게 아니었다.박물관장 초기부터 요로를 통해 국립 도자기연구소를 만들 것을 꾸준히 건의해왔지만 번번이 무산된 채 지금까지 왔단다.

요즘 자신의 전문 영역인 도자기와 전통공예를 배우려는 문하생 5명이 어김없이 연구소를 찾아주는 게 여간 고맙지 않다.모두 수준급 실력을 갖춘 장인들이지만 정 전관장의 호된 교육엔 영락없이 고양이 앞에 쥐 모습이다.

“언제까지 활동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힘닿는 대로 우리의 소중한 것들을 전수하는 데 힘쓰겠습니다.우선 그동안 모아온 자료를 엮어 한국미술 개설서와 도자 자료집을 낼 계획입니다.지금은 자료 정리중입니다.지금도 국립 도자문화연구소가 세워지는 게 제일 큰 꿈입니다.”김성호기자 kimus@
2001-11-27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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