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취재/ 보육원의 이혼고아들

집중취재/ 보육원의 이혼고아들

이창구 기자 기자
입력 2001-11-21 00:00
수정 2001-1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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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함께 살고 싶은데 자꾸 기다리라고 해요.” 두살 터울의 형과 함께 상록보육원에서 지낸 지 4년째 되는 유흥기군(11·가명)은 매주 일요일이면 엄마를 더욱 보고 싶어한다.서울 구로구 고척동에 살던 엄마는 그러나 이미 재혼한 데다 2명의 아이까지 새로 낳았다.

한 보육사는 “택시 운전사인 흥기의 아버지가 가정을 다시 꾸리는 것만이 흥기 형제가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면서 홀로 양달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흥기를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서울 관악구 남현동 상록보육원에 있는 원생 75명 가운데50여명은 이처럼 부모가 이혼한 뒤 재혼하면서 더이상 찾아오지 않는 아이들이다.

김찬이군(12·가명) 역시 부모가 이혼해 초등학교 1학년때보육원에 왔다. 은행원으로 일하다 스무살에 결혼한 찬이의어머니는 남편과 헤어진 뒤 혼자 찬이를 길렀다. 남편이 한달에 10만원씩 보내주던 양육비는 석달만에 이렇다 저렇다말도 없이 끊어졌다.어머니는 구조조정으로 졸지에 은행을그만두게 되자 고민 끝에 찬이를 보육원에 맡겼다.초기에는한달에 2∼3차례씩 찾아와 찬이를 붙잡고 눈물짓곤 했지만얼마 뒤 재혼했다는 말을 전하고는 몇년째 발길을 끊고 있다.

상록보육원 부청하(夫淸河·58) 원장은 “80년대후반부터부모가 죽거나 경제능력이 없어 버린 아이를 뜻하는 전통적인 의미의 고아는 줄어들고 대신 재혼에 걸림돌이 되자 양육을 포기한 이혼고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면서 “이혼고아는 IMF때 급증한 뒤 지난 99년 잠시 주춤하다 요즘 다시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그는 또 “몇년째 보육원에서 지낸 ‘이혼 고아’들은 다른 원생들에 비해 적응력이 더디고 걸핏하면 싸움을 벌이는 등 말썽을 잘일으킨다”고 걱정했다.

상록보육원의 후원회원 500여명 가운에는 초등학생들도 많다.서울 사당초등학교 6학년 정아름양(13)은 틈만 나면 보육원을 찾아 6살 난 근상군을 데리고 논다.근상이도 아름이를 누나라고 부르며 따른다.아름이는 한달에 5,000원씩을근상이 후원금으로 낸다.이혼했다고 자식을 외면하는 어른들을 부끄럽게 하는 모습이다.

부 원장은 “쉽게 만나고 헤어지는 세태라지만 아무것도모르고 마음에 상처를 입는 아이들은 누가 책임을 져야 합니까”라고 되물은 뒤 “목이 빠져라 엄마 아빠를 기다리는아이들을 기억해 달라”고 말했다.

윤창수기자 geo@.

■외국은 어떻게.

‘이혼고아’문제의 해결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이혼부모’들이 아이와 인연의 끈을 맺도록 유도하는 일이다.아이들에게 새 가정을 찾아주는 것도 절실하다.이런 시스템은일본과 미국에서 잘 발달돼 있다.우리나라는 아직 미흡한편이다.

우선 일본의 경우 이혼고아 문제가 세계적으로 가장 심각한 만큼,이혼부모들이 주기적으로 보육시설의 아이를 찾도록 강제하고 있다.또 이혼부모의 경제 수준을 5등급으로 나눠 양육비를 의무적으로 내도록 하고 있다.우리나라는 그러나 이혼고아문제가 최근 나타난 탓에 일본처럼 부모와 아이를 연결시켜주는 쪽으로는 그다지 정책이 개발돼 있지 않다.오히려 미국처럼 아이들에게 새가정을 찾아주는 데 치중하고 있다.

미국은 두가지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하나는 그룹 홈(Group Home)제도로 정상적인 가정이 아이 6∼7명을 양육하도록하는 것이다.국내에도 이 제도가 도입됐지만 아직 일반화되지 못하고 있다.현재 서울 4곳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13곳의그룹 홈이 운영되고 있다.

다음으로는 ‘가정위탁(Host Care)’제도가 있다.고아 한두명을 입양해 돌보는 방법이다.우리정부도 가정에서 아이를 입양하면 한명당 월 6만5,000원의 양육보조비를 지원해준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보육원 입소 심사를개선하고,경제적인 이유로 아이를 포기하는 경우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유지시키는 다양한 보육시설 개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창구 윤창수기자 window2@.
2001-11-21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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