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계가 들끓고 있다.손을 맞잡아도 시원치 않은 판에현안마다 서로 엇갈린 의견으로 극단적인 대립으로 치닫고 있다.학교 선생님들이 주장의 관철을 요구하며 무단 조퇴를 서슴지 않는가 하면 스승의 길을 가겠다는 전국의 교육대 학생들이 동맹 휴업을 하겠다고 나서고 있다.지극히 교육적이어야 할 교육현장이 지극히 반교육적인 행태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파행적으로나마 이어지고 있는 공교육을아예 황폐화시키려 작정을 했다는 우려를 떨칠 수 없다.
총체적인 교육문화 수준이기도 하겠지만 반복된 교육정책 실패가 불러온 병리현상이라는 생각이다.커다란 현안인초등학교 교사 부족만 해도 그렇다.1999년 무리한 교원정년 단축에 때맞춰 연금법 개정에 착수한 게 화근이었다.고령의 교사들은 무능하다는 예단을 근저에 깔고 있었음은물론이다.1999년 한해에 무려 1만6,130명의 교사들이 정년과 명예퇴직으로 교단을 떠났다.1998년의 4,871명의 무려3.3배에 해당하는 것으로 초등학교는 그대로 수업 불능에빠졌다.당국은 급기야 바로 ‘무능한 선생님’ 3,440여명을 다시 모셔 오는 해프닝을 연출해야 했다.
제7차 교육과정 역시 교육 현실의 코앞도 못 내다본 정책의 하나로 볼 수 있다.내년부터 중·고교 도입에 앞서 이미 시행하고 있는 초등학교의 현실을 보자.학생 활동 위주의 학습이라 해서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에게 가족신문을만들어 오라,현장학습 계획안을 만들어 오라는 것이다.이게 학부모 숙제지 어디 어린이 참여를 유도하는 것인가.5,6학년 학생들이 날마다 망치 들고 판자에 못이나 박는다고 창의력이 생겨난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일선 교사들조차 ‘학부모의 교사화 과정’이라고 코웃음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당국은 학생활동 위주의 학습이 이뤄져야 한다는 원론만을 반복하며 시행도 해보지 않고 반대해서는 안된다고 억지를 부린다.이같은 권위적인 행태는 바람직한정책조차 교원단체 등에 반대할 수 있는 명분을 주고,교육계 자체의 위기 극복 노력을 가로막는 벽이 되기 십상이다.그렇다고 당국이 내놓은 다른 정책도 싸잡아 반대할 명분은 못된다.과거의 잘못된 정책이라면 이제라도 보완하고시정하는 작업에 나서야 한다.당국의 정책 실패라는 이유로 교육을 외면한다면 역시 반교육적이라는 비판을 면치못할 것이다.
교육계의 쟁점인 교원 성과상여금제를 들여다 보자.교원단체들은 교사들 사이에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강한 거부감을 보인다.그렇다면 기존의 근무평정은 어떻게 설명할 것이며 교육계만은 사회의 경쟁구도에서 언제까지 비켜서 있겠다는 것인가.교육의 발전보다는 조직원들의 신분보장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무단조퇴까지 서슴지 않았던 전국교직원노조의 경우 태동되던 당시의 암울했던 교육계 시대상을 반추해 보며 초심으로 돌아가기 바란다.
비슷한 맥락에서 중등교사 자격증 소지자를 초등교사로활용하는 ‘교대학점 운영제’도 반대만 할 일이 아니다.
교육대학교 학생회 등은 초등교육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전문성이 저하된다고 문제를 제기한다.
또 2004학년도까지 연차적으로 추진토록 되어 있는 ‘교육여건 개선계획’을 연기하라는 것이다.도식화하면 한해 5,200여명씩배출되는 교육대학 졸업생들이 남아 돌 때까지지금처럼 콩나물 교실 수업을 계속하라는 얘기가 아닌가.
당국의 정책 허물을 인질 삼아 왜곡된 교육현실을 외면하라는 얘기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전문성 저하와 콩나물교실의 학습부실 문제를 비교 계량해 볼 일이다.검증되지도 않은 전문성을 이유로 우리 어린이들에게 부실한 교육여건을 감내하라는 요구는 반교육적인 억지다.교육계는 냉정을 되찾아야 한다.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 아태지역 사무소가 최근 이 지역 17개국 청소년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우리나라 경우 선생님이 ‘존경하는 사람’의 최하위였다는 사실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교육 현안은교육적인 방법으로 풀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고 싶다.
정인학 논설위원 chung@
총체적인 교육문화 수준이기도 하겠지만 반복된 교육정책 실패가 불러온 병리현상이라는 생각이다.커다란 현안인초등학교 교사 부족만 해도 그렇다.1999년 무리한 교원정년 단축에 때맞춰 연금법 개정에 착수한 게 화근이었다.고령의 교사들은 무능하다는 예단을 근저에 깔고 있었음은물론이다.1999년 한해에 무려 1만6,130명의 교사들이 정년과 명예퇴직으로 교단을 떠났다.1998년의 4,871명의 무려3.3배에 해당하는 것으로 초등학교는 그대로 수업 불능에빠졌다.당국은 급기야 바로 ‘무능한 선생님’ 3,440여명을 다시 모셔 오는 해프닝을 연출해야 했다.
제7차 교육과정 역시 교육 현실의 코앞도 못 내다본 정책의 하나로 볼 수 있다.내년부터 중·고교 도입에 앞서 이미 시행하고 있는 초등학교의 현실을 보자.학생 활동 위주의 학습이라 해서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에게 가족신문을만들어 오라,현장학습 계획안을 만들어 오라는 것이다.이게 학부모 숙제지 어디 어린이 참여를 유도하는 것인가.5,6학년 학생들이 날마다 망치 들고 판자에 못이나 박는다고 창의력이 생겨난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일선 교사들조차 ‘학부모의 교사화 과정’이라고 코웃음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당국은 학생활동 위주의 학습이 이뤄져야 한다는 원론만을 반복하며 시행도 해보지 않고 반대해서는 안된다고 억지를 부린다.이같은 권위적인 행태는 바람직한정책조차 교원단체 등에 반대할 수 있는 명분을 주고,교육계 자체의 위기 극복 노력을 가로막는 벽이 되기 십상이다.그렇다고 당국이 내놓은 다른 정책도 싸잡아 반대할 명분은 못된다.과거의 잘못된 정책이라면 이제라도 보완하고시정하는 작업에 나서야 한다.당국의 정책 실패라는 이유로 교육을 외면한다면 역시 반교육적이라는 비판을 면치못할 것이다.
교육계의 쟁점인 교원 성과상여금제를 들여다 보자.교원단체들은 교사들 사이에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강한 거부감을 보인다.그렇다면 기존의 근무평정은 어떻게 설명할 것이며 교육계만은 사회의 경쟁구도에서 언제까지 비켜서 있겠다는 것인가.교육의 발전보다는 조직원들의 신분보장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무단조퇴까지 서슴지 않았던 전국교직원노조의 경우 태동되던 당시의 암울했던 교육계 시대상을 반추해 보며 초심으로 돌아가기 바란다.
비슷한 맥락에서 중등교사 자격증 소지자를 초등교사로활용하는 ‘교대학점 운영제’도 반대만 할 일이 아니다.
교육대학교 학생회 등은 초등교육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전문성이 저하된다고 문제를 제기한다.
또 2004학년도까지 연차적으로 추진토록 되어 있는 ‘교육여건 개선계획’을 연기하라는 것이다.도식화하면 한해 5,200여명씩배출되는 교육대학 졸업생들이 남아 돌 때까지지금처럼 콩나물 교실 수업을 계속하라는 얘기가 아닌가.
당국의 정책 허물을 인질 삼아 왜곡된 교육현실을 외면하라는 얘기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전문성 저하와 콩나물교실의 학습부실 문제를 비교 계량해 볼 일이다.검증되지도 않은 전문성을 이유로 우리 어린이들에게 부실한 교육여건을 감내하라는 요구는 반교육적인 억지다.교육계는 냉정을 되찾아야 한다.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 아태지역 사무소가 최근 이 지역 17개국 청소년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우리나라 경우 선생님이 ‘존경하는 사람’의 최하위였다는 사실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교육 현안은교육적인 방법으로 풀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고 싶다.
정인학 논설위원 chung@
2001-10-12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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