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사회주의를 신봉하고 페이비언협회를 설립했던 아일랜드의 극작가 쇼는 유머와 기지로써 사회의 결함을 날카롭게 꼬집었다. 그는 사회주의를 ‘삶은 게’에 비유했다.
게가 살았을 때는 파란색이지만 삶으면 빨갛게 변하듯이사회주의(공산주의)도 사멸할 때는 빨갛게 제 색깔을 낸다는 것이다. 철없는 색깔논쟁이 한바탕 휩쓸고 갔다. ‘논쟁’이랄 것도 없는 억지가 지면과 화면을 도배한다. 회오리바람 같은 1회성이 아니라 언제 또 닥칠지 모른다. 늘그랬다. 참으로 한가하달지 한심하달지, 이런 정치인들을믿고사는 국민이 한심한지 체념상태인지, 안타깝다.
현실적 공산주의는 이미 죽었다. 지구절반을 지배했던 그붉은 기상은 간데없고 낡은 이데올로기만, 혹은 변방에서겨우 잔명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사실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는 처음부터 모순과 한계를 안고 출발했다. 마르크스와 같은 천재도 미처 중산층의 존재를 예측하지 못했던것이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면 노사대립으로 붕괴되는 것이아니라, 오히려 발전과정에서 중산층이 생겨나고 이들에의해 자본주의가 수정을 거듭하면서 더 발전하게 된다는수정이론을 상상하지 못했다.
이때문에 공산주의는 한세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망신고를마쳤는데, 그 유령이 시도때도 없이 이땅에 나타나 활개치고 사회를 혼란시킨다. 요즘에 나타난 ‘유령’의 존재는한나라당 김만제정책의장이다.
김의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사회주의적 집단이 전교조”“노사정위원회나 주5일근무제는 사회주의적 정책”“언론에서 정기간행물법을 고쳐 특정주주가 30%이상 주식을갖지 못하게 하는 것도 사회주의적 발상”등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닥치는 대로 ‘사회주의’딱지를 붙이고색깔론을 제기한다.
수구세력은 지난 반세기동안 색깔론을 우려먹으면서 기득권을 유지했다.
공산주의가 퍼렇게 살았을 때는 반공의 깃발을 들고 비판세력을 용공으로 몰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퍼렇던 게는 죽고 북쪽이 우리의 도움을 바라는 처지가 되면서 용공의 약발이 별로 먹히지 않게 되었다.
더욱이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우면서 민주주의를 말살해온수구세력의 정체가드러나면서 많은 국민이 등을 돌리게되었다. 그러나 아는 것이 ‘품바’라고 색깔공세 이외에는 달리 방법을 찾지 못한 그들은 약발떨어진 품바를 외쳐대는 것이다.
괴벨스는 히틀러가 행한 선전선동의 특질을 이렇게 요약했다. “끊임없이 반복해서 대중의 심리를 파악한다. 그러면 ‘네모꼴이 실제로는 원’이라고 논증하는 것도 어렵지않다.”히틀러의 주장은 더욱 지능적이었다. “추상적인관념따위는 피하라. 그대신에 감정에 호소하라. 몇마디 정해진 문구를 끊임없이 반복하라. 결코 객관적이지 않아도좋다. 즉 논의의 한 측면만 부각시켜 적을 격렬히 비난하되, 항상 특정한 적을 하나씩 정해서 하라.” 히틀러는 선전선동의 귀재였다. 항상 ‘특정한 적’을 하나씩 정해서 끊임없이 ‘반복’하여 공략하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그는 이런 방법으로 먼저 베르사유조약을 체결했던배신자들을, 다음으로 공산주의자를, 그 다음으로 유태인을 속죄양으로 정해 비난하고 낙인찍어 죽였다. 그리고 자신도 참혹한 전쟁을 일으키고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중세 암흑시절에 정치적 반대자나 종교적 비판세력을 이단자로 몰아 마녀사냥을 할 때나, 20세기초 미국에서 매카시선풍이 불 때 가해자들은 상대를 마녀와 공산주의자로몰았다. 증거를 대라는 사람들에게 마녀가 타고다녔다는낡은 빗자루와 공산주의자가 입었다는 헌 티셔츠를 ‘증거’로 제시했다. 통일정부 수립을 주장하는 김구선생을 암살하고 평화통일론을 제시한 조봉암씨를 공산주의자로 몰아 사법살인한 이래 얼마나 많은 시민·학생과 지식인이 색깔론에 희생되었는가.
공산주의가 망하고 선진 각국이 수정자본주의 정책을 펴고 있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 독일의 슈뢰더총리까지 시장경제와 사회주의 장점을 조화시키는 ‘제3의 길’을 걷고 있다. 이들이 공산주의자란 말인가. 앞을 모르고 모로만 기는 게들의 슬픈 존재여! [주필 kimsu@]
게가 살았을 때는 파란색이지만 삶으면 빨갛게 변하듯이사회주의(공산주의)도 사멸할 때는 빨갛게 제 색깔을 낸다는 것이다. 철없는 색깔논쟁이 한바탕 휩쓸고 갔다. ‘논쟁’이랄 것도 없는 억지가 지면과 화면을 도배한다. 회오리바람 같은 1회성이 아니라 언제 또 닥칠지 모른다. 늘그랬다. 참으로 한가하달지 한심하달지, 이런 정치인들을믿고사는 국민이 한심한지 체념상태인지, 안타깝다.
현실적 공산주의는 이미 죽었다. 지구절반을 지배했던 그붉은 기상은 간데없고 낡은 이데올로기만, 혹은 변방에서겨우 잔명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사실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는 처음부터 모순과 한계를 안고 출발했다. 마르크스와 같은 천재도 미처 중산층의 존재를 예측하지 못했던것이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면 노사대립으로 붕괴되는 것이아니라, 오히려 발전과정에서 중산층이 생겨나고 이들에의해 자본주의가 수정을 거듭하면서 더 발전하게 된다는수정이론을 상상하지 못했다.
이때문에 공산주의는 한세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망신고를마쳤는데, 그 유령이 시도때도 없이 이땅에 나타나 활개치고 사회를 혼란시킨다. 요즘에 나타난 ‘유령’의 존재는한나라당 김만제정책의장이다.
김의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사회주의적 집단이 전교조”“노사정위원회나 주5일근무제는 사회주의적 정책”“언론에서 정기간행물법을 고쳐 특정주주가 30%이상 주식을갖지 못하게 하는 것도 사회주의적 발상”등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닥치는 대로 ‘사회주의’딱지를 붙이고색깔론을 제기한다.
수구세력은 지난 반세기동안 색깔론을 우려먹으면서 기득권을 유지했다.
공산주의가 퍼렇게 살았을 때는 반공의 깃발을 들고 비판세력을 용공으로 몰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퍼렇던 게는 죽고 북쪽이 우리의 도움을 바라는 처지가 되면서 용공의 약발이 별로 먹히지 않게 되었다.
더욱이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우면서 민주주의를 말살해온수구세력의 정체가드러나면서 많은 국민이 등을 돌리게되었다. 그러나 아는 것이 ‘품바’라고 색깔공세 이외에는 달리 방법을 찾지 못한 그들은 약발떨어진 품바를 외쳐대는 것이다.
괴벨스는 히틀러가 행한 선전선동의 특질을 이렇게 요약했다. “끊임없이 반복해서 대중의 심리를 파악한다. 그러면 ‘네모꼴이 실제로는 원’이라고 논증하는 것도 어렵지않다.”히틀러의 주장은 더욱 지능적이었다. “추상적인관념따위는 피하라. 그대신에 감정에 호소하라. 몇마디 정해진 문구를 끊임없이 반복하라. 결코 객관적이지 않아도좋다. 즉 논의의 한 측면만 부각시켜 적을 격렬히 비난하되, 항상 특정한 적을 하나씩 정해서 하라.” 히틀러는 선전선동의 귀재였다. 항상 ‘특정한 적’을 하나씩 정해서 끊임없이 ‘반복’하여 공략하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그는 이런 방법으로 먼저 베르사유조약을 체결했던배신자들을, 다음으로 공산주의자를, 그 다음으로 유태인을 속죄양으로 정해 비난하고 낙인찍어 죽였다. 그리고 자신도 참혹한 전쟁을 일으키고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중세 암흑시절에 정치적 반대자나 종교적 비판세력을 이단자로 몰아 마녀사냥을 할 때나, 20세기초 미국에서 매카시선풍이 불 때 가해자들은 상대를 마녀와 공산주의자로몰았다. 증거를 대라는 사람들에게 마녀가 타고다녔다는낡은 빗자루와 공산주의자가 입었다는 헌 티셔츠를 ‘증거’로 제시했다. 통일정부 수립을 주장하는 김구선생을 암살하고 평화통일론을 제시한 조봉암씨를 공산주의자로 몰아 사법살인한 이래 얼마나 많은 시민·학생과 지식인이 색깔론에 희생되었는가.
공산주의가 망하고 선진 각국이 수정자본주의 정책을 펴고 있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 독일의 슈뢰더총리까지 시장경제와 사회주의 장점을 조화시키는 ‘제3의 길’을 걷고 있다. 이들이 공산주의자란 말인가. 앞을 모르고 모로만 기는 게들의 슬픈 존재여! [주필 kimsu@]
2001-08-07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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