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승선까지 2㎞-.아무도 뒤를 쫓는 사람이 없었다.그러나이봉주(李鳳柱)는 앞만 보고 묵묵히 내달렸다.곧이어 보스턴 하늘을 뒤흔드는 함성과 함께 태극기 물결이 눈에 어른거리는 순간 이봉주는 비로소 우승을 확신했다.장장 2시간9분여를 앞만 보고 달려오는 동안에는 우승의 영광도,관중들의 갈채도 염두에 없었다.오로지 자신과의 싸움이 있을 뿐이었다.마침내 골인.이봉주는 몰려든 기자들에게 “나 자신과의 싸움에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그밖에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국인으로서 51년 만에 이룩한 이봉주의 보스턴마라톤 우승은 집념과 자신감,그리고 작전의 승리였다.
우승을 가른 최대 승부처는 32∼37㎞ 지점.굴곡이 심한 30㎞ 지점 이후부터 승부를 건다는 작전으로 나선 이봉주는이 때까지는 무리하지 않고 10여명의 선두그룹에 끼어 안정적인 레이스를 펼쳤다.30㎞ 지점에 이르자 이봉주는 서서히가속을 붙이기 시작했다. 곧이어 ‘심장파열 언덕(하트브레이크 힐)’으로 불리는 32㎞ 지점에 이르렀으나 실피오 구에라(에콰도르)를포함한 4명의 선수가 여전히 거머리처럼그를 따라 붙었다.
‘백전노장’ 이봉주의 진가는 여기서 한층 빛을 발했다.
난코스가 이어지는 32㎞ 지점부터 페이스를 올렸다 내렸다하면서 상대 선수들의 진을 빼기 시작했다.37㎞ 지점.이제승부수를 던질 때가 됐다고 판단한 이봉주가 앞으로 치고나갔지만 99보스턴마라톤 준우승자 구에라는 끈질기게 이봉주를 따라 붙었다.
하지만 여기까지뿐이었다.지난해 후쿠오카마라톤에서 막판스퍼트로 준우승을 차지,실력에 자신감까지 더한 이봉주는40㎞ 지점에서 마지막 스퍼트에 나섰고 이봉주의 페이스에말려 진이 빠진 구에라는 선두로부터 멀어져갔다.
마지막 2㎞는 환호성만을 남겨둔 이봉주의 독주.이봉주는2개월 전 타계한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리며 결승선을 통과했고 도로 주변에 꽉 들어찬 관중들은 힘찬 박수로 월계관의 주인공을 환영했다.
박해옥기자 hop@
한국인으로서 51년 만에 이룩한 이봉주의 보스턴마라톤 우승은 집념과 자신감,그리고 작전의 승리였다.
우승을 가른 최대 승부처는 32∼37㎞ 지점.굴곡이 심한 30㎞ 지점 이후부터 승부를 건다는 작전으로 나선 이봉주는이 때까지는 무리하지 않고 10여명의 선두그룹에 끼어 안정적인 레이스를 펼쳤다.30㎞ 지점에 이르자 이봉주는 서서히가속을 붙이기 시작했다. 곧이어 ‘심장파열 언덕(하트브레이크 힐)’으로 불리는 32㎞ 지점에 이르렀으나 실피오 구에라(에콰도르)를포함한 4명의 선수가 여전히 거머리처럼그를 따라 붙었다.
‘백전노장’ 이봉주의 진가는 여기서 한층 빛을 발했다.
난코스가 이어지는 32㎞ 지점부터 페이스를 올렸다 내렸다하면서 상대 선수들의 진을 빼기 시작했다.37㎞ 지점.이제승부수를 던질 때가 됐다고 판단한 이봉주가 앞으로 치고나갔지만 99보스턴마라톤 준우승자 구에라는 끈질기게 이봉주를 따라 붙었다.
하지만 여기까지뿐이었다.지난해 후쿠오카마라톤에서 막판스퍼트로 준우승을 차지,실력에 자신감까지 더한 이봉주는40㎞ 지점에서 마지막 스퍼트에 나섰고 이봉주의 페이스에말려 진이 빠진 구에라는 선두로부터 멀어져갔다.
마지막 2㎞는 환호성만을 남겨둔 이봉주의 독주.이봉주는2개월 전 타계한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리며 결승선을 통과했고 도로 주변에 꽉 들어찬 관중들은 힘찬 박수로 월계관의 주인공을 환영했다.
박해옥기자 hop@
2001-04-18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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