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룽지(朱鎔基) 중국 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열리는 한·중정상회담은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 교류협력관계 진전을 위한 중국의 역할을 재확인하고 두나라의 우호협력 관계를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관측된다.
특히 주 총리의 이번 방한은 그로서는 처음인데다,중국을 이끌고 있는 정치국 상무위원 7명 가운데 서열 2위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크다는 지적이다.주 총리의 방한으로 장쩌민(江澤民)국가주석을 포함,상무위원 7명 전원이 방한하는 셈이어서 양국관계가 정상 궤도에 진입했음을 의미한다.
김 대통령은 주 총리와 이번 회담을 갖게되면 5번째 회담이다.무엇보다 양국 최고지도층간 우의와 신뢰를 다지는 자리가 될 것이다. 두 정상은 6월 남북정상회담 이후의 남북관계 진전상황을 평가하고 이과정에서 중국측의 건설적인 역할에 대한 깊이있는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김 대통령은 남북한과 미·중이 참여하는 4자회담을재개, 한반도 평화정착 방안이 본격 논의되어야 한다는 자신의 구상을 전달할 가능성이 높다.
주 총리가 중국경제의 최고 책임자라는 점에서 경제,통상분야의 협력관계를 전면 확대하는 방안도 논의될 전망이다. 특히 한·일정상회담에서 ‘정보기술(IT) 이니셔티브’선언을 채택했듯이 중국과도 지식정보화에 맞춰 정보기술에 대한 교류협력 방안이 도출될 것이다.나아가 최근 경의선 복원 착공식을 계기로 앞으로 전개될 한반도와 유라시아 대륙을 잇는 ‘철의 실크로드’에 관한 의견교환도 이뤄질 전망이다.
양승현기자.
*주룽지 총리는 누구.
[베이징 김규환특파원] 주룽지(朱鎔基) 중국 총리(72)는 중국경제의 조타수.해박한 경제지식과 빠른 두뇌회전,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실물경제에 부합되는 정책을 개발함으로써 중국 경제의 고도성장을진두지휘하고 있는 인물이다.
후난(湖南)성 창사(長沙)에서 태어난 주 총리는 이공계 중국 최고명문인 칭화(淸華)대 총학생회장 출신.1957년 헝가리와 유고연방의실용주의적인 경제개혁을 찬양했다는 이유로 우파분자로 낙인찍혀 5년,문화혁명 때 5년 등 모두 10년간 샤팡(下放)돼 노동 개조를 당하는 수모를 겪으면서도 경제학책을놓지 않았다.
그는 78년 복권된 뒤 자오쯔양(趙紫陽)의 추천으로 87년 상하이시당서기,이듬해 상하이 시장으로 전격 발탁됐다.92년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선출된 주 총리는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장을 거쳐 93년 리펑(李鵬)총리로부터 경제분야를 넘겨받아 중국 경제의 총책임자로 부상했다.
khkim@
특히 주 총리의 이번 방한은 그로서는 처음인데다,중국을 이끌고 있는 정치국 상무위원 7명 가운데 서열 2위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크다는 지적이다.주 총리의 방한으로 장쩌민(江澤民)국가주석을 포함,상무위원 7명 전원이 방한하는 셈이어서 양국관계가 정상 궤도에 진입했음을 의미한다.
김 대통령은 주 총리와 이번 회담을 갖게되면 5번째 회담이다.무엇보다 양국 최고지도층간 우의와 신뢰를 다지는 자리가 될 것이다. 두 정상은 6월 남북정상회담 이후의 남북관계 진전상황을 평가하고 이과정에서 중국측의 건설적인 역할에 대한 깊이있는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김 대통령은 남북한과 미·중이 참여하는 4자회담을재개, 한반도 평화정착 방안이 본격 논의되어야 한다는 자신의 구상을 전달할 가능성이 높다.
주 총리가 중국경제의 최고 책임자라는 점에서 경제,통상분야의 협력관계를 전면 확대하는 방안도 논의될 전망이다. 특히 한·일정상회담에서 ‘정보기술(IT) 이니셔티브’선언을 채택했듯이 중국과도 지식정보화에 맞춰 정보기술에 대한 교류협력 방안이 도출될 것이다.나아가 최근 경의선 복원 착공식을 계기로 앞으로 전개될 한반도와 유라시아 대륙을 잇는 ‘철의 실크로드’에 관한 의견교환도 이뤄질 전망이다.
양승현기자.
*주룽지 총리는 누구.
[베이징 김규환특파원] 주룽지(朱鎔基) 중국 총리(72)는 중국경제의 조타수.해박한 경제지식과 빠른 두뇌회전,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실물경제에 부합되는 정책을 개발함으로써 중국 경제의 고도성장을진두지휘하고 있는 인물이다.
후난(湖南)성 창사(長沙)에서 태어난 주 총리는 이공계 중국 최고명문인 칭화(淸華)대 총학생회장 출신.1957년 헝가리와 유고연방의실용주의적인 경제개혁을 찬양했다는 이유로 우파분자로 낙인찍혀 5년,문화혁명 때 5년 등 모두 10년간 샤팡(下放)돼 노동 개조를 당하는 수모를 겪으면서도 경제학책을놓지 않았다.
그는 78년 복권된 뒤 자오쯔양(趙紫陽)의 추천으로 87년 상하이시당서기,이듬해 상하이 시장으로 전격 발탁됐다.92년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선출된 주 총리는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장을 거쳐 93년 리펑(李鵬)총리로부터 경제분야를 넘겨받아 중국 경제의 총책임자로 부상했다.
khkim@
2000-09-29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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