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웅 칼럼] 화해시대의 냉전수구 지식인

[김삼웅 칼럼] 화해시대의 냉전수구 지식인

김삼웅 기자 기자
입력 2000-09-14 00:00
수정 2000-09-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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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이 지식인을 미네르바의 부엉이에 비유하여 역할의 ‘추종성’을 강조하였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론을 이끌고 시대조류를 형성하는 것은 역시 지식인의 역할이다.

국가의 흥륭을 결정하는 요인은 건전한 정치세력과 올곧은 지식인그룹의 역할을 들 수 있다. 건전한 정치세력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올곧은 지식인그룹이 존재해야 하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시대정신에 투철한 지식인그룹이 존재하는 사회치고 낙후되거나 멸망한 국가는 없다.

불행히도 우리 근현대사는 올곧은 지식인이 소외되고 사악한 지식인집단이 주류가 되어 역사의 물굽이를 역류시키고 시대정신을 오염시켰다.

왜정시대 친일지식인의 반민족성이나 독재시대 어용지식인들의 반민주성 그리고 요즘 냉전의식에 중독된 반통일적 지식인집단의 행태를보면 사악한 지식인의 존재가 얼마만큼 역사발전에 저해하는가를 알게 된다.

2차대전후 프랑스와 독일이 파시즘지식인을 청산한데 비해 한국과일본은 그대로 유지되면서 거대한 극우파워를 형성했다. 일본의 극우세력이나 한국의 수구집단은 ‘동조동근(同祖同根)’의 유사성을 갖고 있다.

독초가 번창한 땅에 약초가 살아남기란 쉽지 않다. 원래 독초는 번식력이 강한데다 꽃도 아름답고 열매 또한 탐스러워 사람을 유혹한다. 양귀비꽃을 상기하면 된다. 해방과 혁명,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져도 ‘양귀비’로 상징되는 수구세력은 약화되지 않았다. 실로 우리의 비극은 여기서 기원한다.만악의 근원이다.

왜정시대 ‘내선일체론’이나 5공시대 ‘광주폭도론’그리고 요즘‘북한불변론’으로 이어지는 수구지식인의 ‘붓장난’은 민족의 이성에 칼질하는 망나니 짓이다. 한 시대가 지나면 이들의 ‘칼춤’이지탄의 대상이 되지만 ‘지탄(指彈)’은 말 그대로 손가락질일 뿐,악의 존재는 멀쩡하다. 악초가 ‘손가락질’로 제거되는 일은 없다.

‘양귀비꽃의 마력’처럼 수구지식인일수록 미사여구·교언영색으로무장하고 허구의 논리로 민중을 매혹한다. 강고한 집단주의로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어’준다.

왜정시대 ‘아시아 해방과 미·영귀축론’에는 친일파의 독초가 숨겨 있었고, 5공시대 ‘광주폭도론’의 배경에는 유신잔재가,요즘 내세우는 ‘상호주의원칙’에는 냉전회귀의 분단주의 비수가 꽂혀 있다.

기득권도 챙기고 논리성도 세우려는 냉전수구지식인의 이중성은 박쥐의 생태와 닮는다. 음습한 곳에서만 생존이 가능한 박쥐처럼 기득권과 논리성의 가면을 바꿔쓰면서 기회주의적 줄타기를 거듭한다. 왜정시대가 행세에 편하고 독재시대가 치부에 적합하며 분단시대가 기득권 지키기에 유리한 때문이다. 그래서 한사코 해방을 기피하고 민주화를 거부하고 통일을 방해한다.

수구세력은 김대중대통령의 집권으로 한때 겁을 먹었다. 개혁·민주·통일이라는 수구세력이 가장 기피하는 조건을 두루 갖춘 권력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DJ정부는 곧 지역성에 바탕한 거대야당과 수구지식인집단에 포위된 소수정권의 한계를 드러냈다. IMF 극복이라는과제가 개혁을 이완시켰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시대상황도‘물리적 개혁’을 막는 금줄(禁線)이 되었다. 권력핵심의 인적 구성도 개혁성보다 현상유지쪽에 치우쳤다.

이를 놓칠세라 ‘정권의 한계’를 간파한 수구세력은 지역주의와 반공정서를 바탕으로 개혁의 발목을 잡고 남북화해협력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다. 심지어 진보적 시민단체나 언론사 내부에서도 개혁을지지하면 ‘친여’로 몰려 비판된다. 독재시대에는 친여와 친야의 흑백론이 필요했다. 군정 대 반군정의 경계선이 확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개혁과 수구,통일과 반통일의 잣대가 비판의 기준이 돼야 한다.

길은 없는가.깨어 있는 지식인그룹이 수구세력의 본질을 밝히고 그들의 반시대적 논법을 깨뜨려야 한다. 여야 개혁정치인들도 시대적과제에 힘을 모아야 한다. 더이상 수구지식인의 반시대적 ‘여론’이국민의 뜻으로 둔갑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북한 김용순총비서의 방남(訪南)에서 보듯이 남북관계는 지난 반세기보다 올 3개월동안 훨씬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민족사의 큰 경사다.

이런 시점에서 냉전의식에 절은 수구지식인들도 인식의 변화를 보였으면 한다. 마침 추석명절을 보내고 업무를 새로 시작하면서 이 기회에 한번쯤 민족과 역사를 생각하면 어떨까.수구지식인의 정체성회복이 시급하다.

김삼웅 주필 kimsu@
2000-09-14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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