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광장] ‘대권병’ 걸린 한국언론

[대한광장] ‘대권병’ 걸린 한국언론

김창룡 기자 기자
입력 2000-07-28 00:00
수정 2000-07-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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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언론은 ‘대권병’에 걸려 있다.그 정도가 중증이다.뉴스가치가 있건없건 국민이 관심을 보이든 안 보이든 조그만 빌미만 제공하면 시도 때도 없이 ‘메모 수준의 가십거리’를 대권기사로 대서특필한다.

얼마전 주요 일간신문들은 느닷없이 민주당 안팎에서 ‘제3후보론이 거론되고 있다’며 차기 대선후보 기사를 일제히 보도했다.조선일보 7월20일자 5면에 ‘與 차기 大選후보,제3인물론’이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대권 후보군으로 이인제,한화갑,김근태,노무현 등의 이름을 거론했다.

이 신문은 사진과 함께 취재원이 불확실한 ‘동교동계의 한 의원’이라고만출처를 밝힌 뒤 ‘이 사람들로는 어렵고 다른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모호한 이야기를 소개하며 ‘당내 사람이 아니라는 것만 말할 수 있다’고까지소개했다.

중앙일보는 7월22일자 기자의 ‘취재일기’ 코너까지 할애하며 ‘與 제3후보론 소동’을 기사화했다.이 글을 쓴 기자는 ‘여권의 잠재카드로 거론되는 고건 서울시장’을 거론하며 청와대의 반응이 ‘때가 아니다’‘개혁에 도움이 안된다’며 논의를 봉쇄했다고 비판했다.

이 기사는 결론적으로 ‘여권이 적정 수준에서 (대권)논의창구를 열어 숨통을 틔워주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통령 임기 5년에 이제 겨우 절반을 채운 상황에서 ‘대권논의를 하라’는주장은 과연 온당한가.국민이 과연 이 시점에서 누가 차기 대권주자가 되는지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인가.데스크에서 기사 하나 만들라고 하니 타사 신문을 참고하여 짜깁기한 것인가.

동아일보 역시 7월20일자에 대권과 관련해서 장문의 기사를 올려놓고 있다.

마치 차기 대통령 선거가 내년 정도로 다가온 것처럼.이 신문은 ‘민주당 정권재창출 해법찾기’라는 제하에 ‘밖에서 키워보자’‘안에서 키워보자’‘차라리 내각제로’ 등의 방안을 제시하며 훈수를 놓고 있다.역시 취재원을알 수 없는 한 여권 의원의 ‘다음 대선만 생각하면 잠이 안올 정도’라는말을 인용하며 마치 소설을 쓰듯 ‘사실(fact)은 없고 설(說)만’ 분분하다.

한국언론의 ‘대권병’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닐 만큼 고질적이다.대통령선거가 끝나면 주로 이런 정치기사를 작성했거나 작성하도록 유도한 언론사 간부의 일부가 대통령의 ‘언론장학생들’로 드러나면서 청와대로 직행하거나국회의원 공천을 받았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는 대통령 취임 1주년 기념식 기자회견에서 한 중앙일간지 기자가 차기대권 주자와 관련해서 질문하여 그 어이없음에 대통령도 웃고 기자들도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언론을 아끼는 인사들은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결국 그 질문을 던진 정치부 기자는 몇 년 뒤 청와대로 직행했다.대통령을 만드는 언론이라는 과대망상에 사로잡힌 기자나 언론사는 틈만 나면 앞으로도 국민의 관심과는 상관없이 기사를 ‘제조’해낼 것이다.

시기적으로 지금은 차기 대통령 후보를 논할 때가 아니다.뉴스가치 기준으로 보더라도 보도할 만한 가치거리가 되지 않는다.기자수첩 정도에 메모해둘 사안인 ‘말의 유희’에 지나지 않는다.집권당에서 구체적으로 제3후보를거론하지도 않았고 ‘깜짝 놀랄 만한 식’의 언급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유의 기사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 이면에 지난주 미군의 독극물 방류같은 주요 사회이슈는 그저 녹색연합과 같은 환경단체의 몫으로 던져놓고 만다.‘사과한다 안한다’식의 피상적 보도만 있을 뿐 왜 미국의 유사상황에서의 대응이 일본과 한국에 대해 이처럼 다른지 그 이유와 대책에 대해 심층적인 보도가 없다.대권병에 걸린 한국언론,긴급수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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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룡 인제대교수·언론정보학
2000-07-28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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